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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천융희/뇌피셜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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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천융희/뇌피셜 외 1편
천융희
뇌피셜 외 1편
집으로 돌아온 시동이 좀처럼 꺼지지 않는
봄밤에 대해
어둠의 가벽에 브레이크를 밟고
차창 밖 먼 하늘을 응시하는 것이 일과가 된 K
길 잃은 자의 눈동자는
밤이 깊어 갈수록 쉬 닫히지 않는 법이다
하여 떠돈 바퀴가 해결방안을 도출하느라
좀처럼 열기를 삭이지 못하고 가르릉거렸다
밤바람에 실린 어린 짐승의 발소리
온기 곁으로 바퀴처럼 옹그릴 때
움켜쥔 사내의 핸들이
불운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세상 밖으로
엑스레다를 밟았다
관찰자 시점만 있을 뿐 엉겨 붙어버린 일촉즉발
화단가 몇몇 꽃망울들
제 몸을 찢어 현장을 표명하는 밤이다
모호해지는 K의 공식 입장에 대해서는
섣불리 어필하지 못한 채
알 듯 모를 듯 누설에 그친다
검은 개
옆집,
검은 털을 가진 깜이를 까미 까뮈라 부르자 낮은 담장 너머 허기진 붉은 혀를 헐떡였다
방문을 닫아 귀를 막았다
감나무를 타오른 환삼덩굴 가까스로 뻗은 손끝에서 감이 익어갈 즈음 쌓인 고지서를 읽고 심드렁해진 바람은 지루한 하품을 해대며 술렁였다 녹슨 체인을 부축인 담벼락 위 선잠에 취한 햇발이 저녁 경계에 닿으면 후드득 몰려온 새의 이마가 곤두박질친 하늘은 오늘도 텅 비었다 몇 달 전에 떠난 주인의 마지막 배려인양 수돗가 긴 호수가 마당을 가로질러 빈 그릇에 표면장력의 방울을 모으고 이를테면 빈집의 수식어다 골목 끝 홀로 남겨진 노모가 짧은 혀를 차며 밥그릇을 밀어주고는 쓸쓸히 돌아간 그 날 밤 두들겨대는 빗소리 온몸으로 맞으며 흩날리는 불빛을 가로등에 붙들고 허공에 난 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옆집 검은 털을 가진 개 한 마리
비폭력의 폭력 속에 갇혀버린
세계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서.
*천융희 2011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스윙바이』. 유등작품상 수상. 현 계간 《시와경계》, 계간 《디카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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