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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이성진/마지막과 사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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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신작시/이성진/마지막과 사람 외 1편
이성진
마지막과 사람 외 1편
방에서 아이 혼자 자고 있다
비를 맞고 있는 풍경이 사선으로 찢어지고
점점 돌아갈 곳이 없는 아이는
우주 안에서 유일하게 응시하는 사람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아이는 체감할 수 있다
앞으로 흐르는 것이 감각이라면
거꾸로 흐르는 것은 처음이니깐
아이는 밖에 나가지 않는다
밖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
방에서는 꿈을 꿀 수 있지
하얀색으로 된 무중력 춤을 추네
거짓말로 된 손편지를 쓰네
친구들은 이제 단어로만 읽히네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 것들만 기억이 나네
기억을 기억하는 사람 없이도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이는 웃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건 처음이고 체감이다
마지막이 마지막이 되어도
아이와 눈이 뜨지 않을 때
이 세상의 모든 방은 빈 방이 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우주가 당분간 계속 된다
트레블러traveller
여행자는 정직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을 속이면서 여행을 한다
혼자 하는 여행은 사실 그런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나간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목동이 양떼를 부르는 휘파람에서 시작된
약을 먹는다
규칙적으로 약을 먹는다는 것은
불규칙한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다
내가 걷는 길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내가 그리고 있으니깐
크레파스를 다 쓰지 않아도
끝은 있을 것이다
걸으면서 노래를 부른다
목소리가 가는 곳까지 길어졌다가
되돌아 오는게 보인다
목소리와 어둠에 대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사진은 정확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일
시간 같다
시간은 아니다
마음을 잃은 시인의 시집을 두고 온다
시집은 썩지 않고
호텔은 동굴이 되어간다
계단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내가 어디론가 계속 간다
가는 것 같다
*이성진 2012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미래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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