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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단편동화/장순/물 먹는 수영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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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183회 작성일 15-07-10 15:15

본문

단편동화
장순

물 먹는 수영모자


딩동딩동.
“이수 형 있어요?”
“이수는 학원 갔는데.”
“친구들이랑 수영장 가려고 하는데 장미는요?”
밖에서 영수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장미야, 영수가 수영장 같이 가자고 왔다.”
엄마가 말했지만 난 못들은 척 카트라이더를 하고 있었다.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한 시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수영장에 함께 가자고 찾아 온 영수가 얄미웠다. 
“장미야, 영수가 기다리잖아.”
다시금 주방 쪽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금방 나갈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엄마의 재촉에 나는 할 수 없이 뾰로통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에 서 있던 영수가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수영장 같이 가자.”
“싫어.”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수영장이라는 말만 나와도 나는 짜증부터 났다. 그걸 알면서도 수영장에 같이 가자고 찾아온 영수의 웃는 모습이 정말 밉살스러웠다.
“왜?
“알면서 뭘 물어 보는 거야.”
나는 유치원 다닐 때 물놀이를 갔다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발끝에 물이 닿기만 해도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물놀이가 잦은 여름이 싫었다. 수영장 가는 건 더더욱 싫었다. 그건 같은 유치원에 다녔던 영수도 잘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수영장 같이 가자고 찾아온 것을 보면 나를 놀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지선이랑 현수도 같이 갈 거야. 그러니까 같이 가자?”
막 돌아서려는데 영수가 말했다.
“현수도? ……난 가기 싫어. 그러니까 너희끼리 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현수도 함께 간다는 말에 나는 잠시 흔들렸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현수에게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이제 겨우 현수와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 현수는 실망할 것이 뻔했다. 
나는 쌀쌀맞게 돌아섰다. 하지만 현수도 함께 간다는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수영을 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현수도 지선이 보다는 나를 더 좋아하게 될 텐데.’
시무룩해진 나는 배란다로 나가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친구들을 내려다보았다. 현수 옆에 바짝 달라붙어서 걸어가고 있는 지선이가 오늘 따라 너무도 얄미웠다.
“같이 가지 그랬니?”
엄마의 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수영 좀 못하면 어때!”
엄마에게 괜한 투정을 부리고 말았다. 나는 방으로 돌아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지만 수영장에서 재미나게 놀고 있을 친구들 생각에 게임을 할 수가 없었다.
‘한번 가 볼까?’
친구들이 어떻게 놀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컴퓨터를 끄고 곧바로 스포츠센터 수영장으로 향했다.
나는 수영장 앞에서 친구들에게 들킬까봐 잠시 망설였다. 수영장으로는 내려가지도 못하고 수영장 전망대 의자에 앉아서 물놀이를 하고 있을 친구들을 찾기 시작했다.
방학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친구들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영수가 제일 먼저 눈에 뜨였다. 영수는 수영을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 옆에서 놀고 있던 현수와 지선이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현수는 지선이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 샘이 났다. 현수와 지선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웃으면서 물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바보.’
전망대에 숨어서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당장이라도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속상했다.
‘지선이 보다는 현수와 내가 더 잘 어울리는데.’
나는 한동안 재미나게 놀고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침대 위에 발라당 누웠다. 모두 잊고 낮잠이나 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는 꿈을 꾸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꿈속에서 수영을 정말 잘하는 편이다. 인어처럼 물속에서 숨을 쉴 수도 있다. 꿈속에서만큼은 수영을 잘하는 영수도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꿈속의 나는 현수와도 아주 친하다.
“장미야, 아빠 오셨다.”
정말 깨기 싫은 꿈이었다. 엄마가 방해만 하지 않았어도 난 현수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꿈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꼭 중요한 순간에 끝이 나고 만다.
“우리 장미 얼굴이 퉁퉁 부었네? 무슨 일 있었니?”
“저, 그만 먹을래요.”
오랜만에 아빠와 함께하는 저녁식사였지만 나는 입맛이 없었다. 아빠가 걱정스럽게 바라보셨다.
“아빠, 오늘 영수가 수영장 같이 가자고 왔었데요. 그래서 입이 저렇게 많이 나온 거예요.”
“오빠는…….”
나는 심통이 났다. 이수 오빠는 나를 놀리는 게 재미난 모양이다. 나는 오빠의 무릎을 힘껏 꼬집었다. 그러자 오빠가 팔딱 뛰면서 엄살을 부렸다.
“아빠가 우리 장미 줄려고 선물 사왔는데.”
“정말?”
선물이란 말에 내 귀가 번득 뜨였다.
“저녁 먹고 풀어 보자.”
“선물? 내건 없어요?”
“장미는 좋겠다.”
오빠와 엄마도 아빠가 사가지고 온 선물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빠가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주셨다. 나는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선물 상자를 열었다. 선물 상자에서 볼품없는 빨간 수영모자가 나왔다. 내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게 뭐야.”
“어머 예쁘기도 해라.”
엄마가 수영모자를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수영모자는 보면 볼수록 촌스러웠다. 큰 입을 벌린 하마가 수영모자에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빨간색이라니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장미한테 잘 어울리겠는데요.”
“난 싫어요.”
“보기 좋은데 뭘 그래.”
키득거리며 오빠가 겨우 웃음을 참았다. 나는 다시 입을 빼어 물었다. 믿었던 아빠마저 나를 놀리다니 정말 실망이었다. 나는 돌아앉았다.
“이 수영모자가 마법을 부린단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수영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물을 먹어 주는 마법모자야. 순식간에 물을 먹어 치운단다. 그러니까 아빠 말은 우리 장미 이제는 물 먹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 우리 어디 한번 확인해 볼까?”
아빠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물 먹는 하마는 들어 봤어도 물 먹는 수영모자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 보는데. 정말 그런 게 있기나 한 걸까?’
나는 아빠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수영모자를 쳐다보았다. 아빠가 큰 컵에 물을 따라 나에게 확인 시켰다. 그리곤 수영모자에 물을 따랐다. 수영모자의 배가 물로 볼록해졌다.
“아빠는 거짓말쟁이. 그것 봐요. 어떻게 수영모자가 물을 먹어요.”
“참! 그렇지. 아빠가 잊을 뻔했구나! 물을 먹게 하려면 주문을 걸어야 하거든. 우리 장미 따라서 해 볼래?”
“네? 그런 주문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정말이라니까. 자 따라해 봐. ……목마르지? 네가 좋아하는 물이나 실컷 먹어 볼까?”
주문을 외웠는데도 수영모자에 담겨 있던 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풋.”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리고 말았다.
“뭐가 잘못 됐을까?”
“그것 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아, 그렇지. 주문을 외우면서 한 바퀴 빙그르르 돈 후에 엉덩이를 두 번 두드려야 하는 걸 잊었네.”
자리에서 일어난 아빠가 다시 주문을 외우면서 한 바퀴 돌고는 엉덩이를 두 번 두드렸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겼지만 웃을 겨를도 없이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수영모자에 가득 담겨 있던 물이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수영모자를 거꾸로 들었지만 물은 단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신기했다. 수영모자를 유심히 살폈지만 물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신기해 하기는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믿으려 하지 않자 아빠는 다시 한번 시범을 보였다. 역시 물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장미, 이번 주말에 아빠랑 수영장 가서 다시 시험해 볼까?”
나는 얼떨결에 아빠와 수영장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난 여전히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정말 대신해서 물을 먹어 줄까?’
일요일 아침. 부모님과 함께 스포츠센터 수영장을 찾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영수와 친구들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풀 앞에서 머뭇거렸다. 촌스런 빨간 수영모자가 창피하기도 했다.
“자, 이제 주문을 걸어 볼까?”
“여기서? 창피하게?”
“어때? 아빠랑 같이 해보자.”
“목마르지? 네가 좋아하는 물이나 실컷 먹어 볼까?”
나는 아빠와 함께 주문을 외웠다. 그리곤 한 바퀴 돌면서 엉덩이를 두 번 두드렸다.
“물 먹을 걱정은 없을 거야.”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는 겁을 먹었지만 아빠의 말에 나는 다시 용기를 냈다.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왠지 물이 무섭지 않았다. 몸에서 소름도 돋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빠랑 같이 잠수하는 거야. 숨 깊게 들이마시고. 하나 둘 셋!”
나는 마법 수영모자를 믿기 시작했다. 큰 맘 먹고 잠수를 했다. 어찌된 일인지 몸이 가라앉지 않았다. 아빠처럼 풀 바닥에 앉으려 해도 자꾸만 몸이 떠올랐다.
“수영모자가 대신 물을 먹고 있는 중이야. 그래서 몸이 뜨는 거란다.”
아빠가 환하게 웃으셨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물 먹을 걱정 없으니까 이제부터 아빠가 수영 가르쳐 줄게.”
“네, 아빠!”
나는 아빠가 일러주는 대로 발차기를 시작했다. 그러자 몸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더 이상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빠가 다가와 짓궂게 장난을 걸어 왔지만 나는 싫지 않았다. 덩달아 오빠에게 장난을 걸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걸 왜 몰랐을까.’
3시간 동안 정신없이 물놀이를 한 탓에 나는 녹초가 되었다. 이제는 영수와 친구들이 수영장에 가자고 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현수와도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여름이 싫지 않을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온 나는 거실 소파에 앉은 채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우리 장미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네요. 일주일 동안 마술 배우느라 힘들었죠? 그래도 당신이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그런데 수영모자에서 어떻게 물을 없앤 거예요?”
“비밀!”
“우리 장미 오늘 보니까 수영에 재능이 있나 봐요. 진작 신경 좀 쓸 걸 그랬어요.”
“그러게. 나중에 수영선수 시키면 어떨까?”
“그런데 그 빨간 수영모자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촌스러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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