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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특집/한국시의 진단과 전망/조동범/2015년, 시인 공동체와 망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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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205회 작성일 15-07-1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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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조동범

-2015 한국시의 진단과 전망
2015년, 시인 공동체와 망명자들


나는 지금 2015년을 관통하고 있는 시인들의 공동체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공동체가 자리한 지점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런데 2015년의 시인 공동체는 불과 몇 년 전의 상황과 무척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2000년대 중반의 미래파 논쟁처럼 급격한 변화의 형태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쉽게 눈치챌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시인 공동체의 모습은 과거의 연장선상이면서 동시에 새로움이라는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일 터였다. 과연 시인 공동체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 지난 세대의 모습과 유사하거나 다른 것일까.
2015년의 시인 공동체를 이야기하기 위해, 다소 장황하지만(그리고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2000년대 시인 공동체의 모습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는 지난 2000년대 중반, 새롭게 각광받게 된 시인들의 탄생을 지켜본 바 있다. 소위 미래파로 언급된 시인 공동체의 일원들은 화제성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어법을 우리 시의 영역 안에 편입시켰다. 나는 아직도 당시의 신선한 충격을 잊지 못한다. 미래파 논쟁은 미래파 시인들뿐만 아니라 당시에 발표된 다채로운 시적 경향 전반을 우리 시의 주류 질서 안으로 끌어들인 순기능이 있었다. 미래파로 명명된 전위적인 시로부터 서정시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시인 공동체는 드디어(!) 새로운 세대의 어법과 정서 전반을 공동체의 영역 안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이전까지 1970년을 전후에 태어나 2000년을 전후하여 등단한 시인들의 목소리와 정서는 시인 공동체 안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외로웠고 쓸쓸했으며 고통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만 했다.
미래파 논쟁은 그런 외로움을 견디고 있던 젊은 시인들의 목소리를 단박에 시인 공동체의 중심부에 옮겨 놓았는데, 전위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적 발성이 시인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매우 가치있는 논쟁이었다. 그렇게 2000년대 시단은 다채로운 시적 스펙트럼을 갖게 되었으며, 그것은 분명 시인 공동체에 주어진 축복이었다. 이후 2009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 나타난 시적 정치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2000년대 시인 공동체는 그 외연을 한층 더 넓힐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 순간, 시인 공동체의 발성은 얼마만큼의 중량감을 가지고 독자와 시인 자신에게 다가설 수 있는가. 새롭게 시인 공동체의 주요 구성원이 된 80년대생 시인들은 얼마만큼 온전히 평가받고 있는가. 나는 80년대생 시인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세대의 발성과 발랄함과 개성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그들과 그들의 시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지 못한 채 하나의 담론으로 진화하지 않고 있음을 무척이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당연히!) 그들의 탓이 아닐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적 발성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다. 물론 80년대생 시인들을 비롯한 새로운 시인들의 경우, 선배 세대가 어렵게 용인받은 시적 바탕이 있었기에 주류 질서 안의 시인 공동체에 쉽게 편입된 측면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2015년의 80년대생 시인들은 분명 그러한 축복 속에 자신들의 세계를 펼쳐보일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개성과 재능이 부족하다거나 평가절상되었다거나 선배 시인들의 시적 연장선상에서 손쉽게 시적 세계를 용인받았다는 말은 결코 하고 싶지 않다. 자신들의 어법을 외부의 저항없이 용인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두고 그들의 시를 부정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결코 옳은 것이 될 수 없다. 능력을 쉽게 인정받게 된 환경은 그들의 행운이자 축복일 뿐이다. 그것만을 이유로 삼아 그들의 시를 평가절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80년대 시인을 대하는 2015년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하고자 한다. 2015년의 시인 공동체는 2005년을 기점으로 한 논쟁적 상황도 아닐 뿐만 아니라 2009년을 전후로 하여 새로운 시인들을 결집하게 했던 양상과도 다른 상황이다. 물론 당시의 시적 경향이나 현실 응전 의지가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의 그러한 상황들이 만들어냈던, 시적 부흥의 분위기와는 일정을 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2015년을 즈음한 시단은 새로운 시인들의 다채로운 목소리가 나왔고, 그들의 시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들의 시는 군(群)을 이루어 하나의 경향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들의 시는 시인 공동체의 주류 공동체 안에 속한 것이었지만, 확고한 자신들의 시적 세계와 역량을 확고하게 만들고 용인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온전한 목소리를 내기에 시단의 상황은 급속히 냉각되었고, 논쟁적 중심축이 사라진 상황에서 시적 담론은 쉽게 형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러한 상황 하에 놓인 새로운 세대의 시는 중량감 있는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새로운 시와 시인들의 잘못이 아님은 자명하다. 시인들의 공동체가 하나의 담론을 통해 새로운 목소리를 수용하기에, 현재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 측면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성적인 목소리가 다채롭게 발현되는 현재의 상황을 비관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물론 그들의 시적 발성을 오롯이 담아낼 담론이 형성될지 역시 알 수 없기는 하다. 그러나 끊임없이 자기갱신을 하려는 젊은 시인들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기 때문에 2015년에 바라보는 시적 전망은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그들이 설령 하나의 흐름과 담론을 생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희망과 긍정의 시선을 거두고 싶지 않다. 80년대생 시인들을 비롯한 새로운 세대의 시와 시인들은 아직까지는 정처없는, 망명자의 신분과 다를 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망명자인 그들의 시적 언어가 확고한 시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만큼 그들이 새로운 시인 공동체의 영토를 만들어낼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나의 기대가 막연한 희망과 긍정의 소산이 아니냐는 질문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 대한 나의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젊은 시인들의 시적 고민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이다. 그리하여 2015년의 시적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그들 내부의 그 무엇이 아니라, 외부에 있는 그 어떤 체제와 상황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2015년의 망명자들인 그들의 시가 어서 빨리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시인 공동체의 주도적인 혁할을 해내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한다. 


*조동범 : 1970년 경기 안양에서 태어나 200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과 『카니발』이 있으며 산문집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평론집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등을 펴냈다. 현재 《시인동네》, 《시사사》 편집위원과 웹진 《문화 다》 편집동인으로 활동중이다. 제4회 김춘수시문학상과 제8회 미네르바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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