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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집중조명/김인자/고백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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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
김인자
고백
폭설 다녀가고
고요한 어둠 속
길 잃은 짐승처럼
나는 몸을 웅크린다
백야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물결에 쓸려 동그랗게 된
그리움의 자갈들이
어울려 속삭이는
강기슭에 닿는다
자작나무숲 너머로
바람의 역류가
온 정신을
한곳으로 몰아간다
그곳에 까마중처럼
끈덕진 냄새를 풍기는
바람 같은 사람이 있다고
눈 위에 한 줄 고백을 쓴다
애련(愛戀)
라다크를 순례할 때다. 거친 땅 어디에도 생명이 움트리라곤 상상 못했는데, 내가 본 세상에서 가장 작은 꽃으로 기록될 좁쌀만한 흰 꽃 한 송이를 마주한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천년은 비가 내리지 않은 듯한 마른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꽃을 보는데 그 작은 몸에 가시까지 달았다. 가시 때문에 선 듯 다가서지 못하는 것인지 쌀알만한 나비 한 마리가 주변을 맴돈다. 지나가는 길이 아닌 건 분명하다. 꽃은 몸을 흔들어 존재감을 알렸다. 갈애(渴愛)였다. 나는 물병을 꺼내 꽃에게 뿌려주었다. 생애 첫 소나기였는지 꽃의 심장이 파르르 뛰는 게 느껴졌다. 만지기는커녕 보는 것만으로도 짠해지는, 몇 만 번의 계절을 건너 비로소 만난 꽃과 나비의 진아(眞我), 네가 나였으면 내가 너였으면,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다 날이 저문다. 꽃은 자신을 꽃이라 하지 않았고 나비 또한 자신을 나비라 하지 않았지만 향기의 파장(波長)에 끌려 그 까마득한 고도에서의 하룻밤 재회라, 수만 페이지 경전으로도 다 못 쓸 그들의 사랑을 나는 '애련'이라 부르며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딸이 있다
아침, 첫 커피를 책상에 올려놓고
김만호의 ‘내 딸에게’란 시를 읽다가
두 딸의 어릴 적 사진을 보는데 심장이 간지럽다
나는 왜 아직도 ‘딸’이라는 말에 호흡이 민감해지는 걸까
내가 아기엄마일 땐 나도 딸의 십대와 이십대를 몹시 궁금해 했다
새와 구름과 꽃잎에게서 딸의 향기를 맡았고
하늘과 바람에게서 딸의 미래를 점치기도 했으며
고래가 힘차게 대양을 헤엄치는 꿈도 꾸었다
딸은 부푸러기, 딸은 새싹, 딸은 솜사탕, 딸은 어여쁜 장난감, 딸은 풍선, 딸은 소풍바구니, 딸은 신기루, 딸은 사과꽃, 딸은 꽃밭, 딸은 종달새, 딸은 깃발, 딸은 어디로 사라질지 모를 바람, 딸은 가르랑대는 새끼 고양이, 딸은 망고열매, 딸은 호호 불어줘야 할 아픈 손가락, 딸은 걱정나무, 딸은 슬픈 새,
어느새 성년이 되고 독립투사가 된 두 딸은 6월의 푸른 초장, 타고 올라도 좋을 사다리, 밤길을 함께 걸어갈 동지, 청춘의 추종자.
내게도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여자가 되고, 엄마가 되고, 절망과 눈물이 되고, 그 눈물로 종종 나를 먹여 살리기도 하는 딸이 있다.
'검은 걱정구름을 폴폴 넘는 새'가 두 마리나 있다.
*이 시는 김만호의 ‘내 딸에게’란 시를 모티브로 쓰여졌음*
마라도(馬羅島)
영혼 따윈 구걸하지 않으련다
생각하는 대로 보고 보는 대로 생각하는 게 맞다면
가릴 눈도 덮을 고통도 없는 이곳이야말로
내가 찾던 피안이다.
온갖 고초를 당하고도 무릎 꿇지 않는 갈대와
거친 풀들이 온몸으로 길을 터주는 마라도
바람언덕에 서면 발바닥이 풍선처럼 부푼다
이 생에 한 번은 만나야할 당신이라는 섬
바람 속에서도 바람이기를 꿈꾸던 당신
아직도 당신은 당신을 연민하는가
가물거리는 이름을 호명해 본다
해질녘 바다를 건너온 불빛의 유혹도 잠시
이 망연한 그리움 놓치지 않으려면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배를 놓쳐야 하리
찬란인지 착란인지 모를 대양의 검푸른 빛
돌아간다고 하지만 이 섬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이
잃은 자신을 찾기 위해 바다에 방을 붙이고
쫓기듯 섬을 떠나는 뒷모습이 다급하다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살레덕 선창가에서 북쪽 뭍으로 머리를 둔
풍장 중인 새 한 마리를 보았다
뉴스 속 고독사한 어느 노파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의 곁에 있을 때조차 고독했을 사랑
저 바다를 부유하는 당신이라는 하염없는 여백
등대 밑에서 기다린다는 기별은 바람이 전해주겠지
너무 그리우면 이름도 얼굴도 잊는다더니
풀잎 흔드는 바람소린가 아침을 깨우는 물새소린가
지금 당신은 무엇으로 내게 와있는가
아무리 쓸쓸해도 수선화는 피는구나
구 할이 바람이고 나머지 일 할도 바람인
국토 최남단비에 마음 한 자락 묶고 가는
그리워 섬이 된 이곳은 바람의 제국 마라도
온종일 풍랑의 선착장 지키는 자전거 한 대
누굴 기다리는가
어디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가
마른 치자꽃을 위한 노래
그도 한때는 매혹이었을,
꽃 진 자리마다 가득한 향기
밤새 쓴 문장의 파지들이 시나브로 널려있는 책상
떠나기 전 화분에 묻고 왔을 작은 약속 하나
가지를 떠나 한발 한발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도 몸은 땅에 두고 싶었을 것이다
나무와 연락이 끊긴 지 며칠째
피안과 차안을 넘나드는 저 마른 꽃의 잔향
꽃들이 잠들어 있는 서재
창으로 스민 햇살이 얇은 바람수의를 입혀주며
꽃의 주검을 조문하는 늦은 7월의 오후
꽃이 꽃다운 건
스스로 눈물을 닦을 줄 안다는 것
그러나 끝내 자신이 꽃인 줄 몰랐기에
꽃일 수밖에 없는 꽃
그도 처음엔 아무 것도 모른 채
등 떠밀려온 여리디 여린 싹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꽃으로 불리웠을 것이다
그러다가 치자꽃이 되었을 것이다
시작메모
섬, 서귀포 민박집
섬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리운 곳이 제주지만 어떤 인연으로 나무냄새 가득한 그 집엘 가게 되었는지 설명하기는 좀 곤란하다. 삼면이 감귤 밭으로 둘러싸인 민박집 아저씨와 나는 가끔 영어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나무를 좋아하고 손재주가 뛰어난 아저씬 무엇이든 뚝딱 만드는 재주를 가져 부러움을 샀지만 다듬지 않는 나무처럼 거친 아저씨의 손마디는 평탄치 않는 삶의 이력을 말하는 듯했다.
늘 히말라야 설산을 꿈꾸는 나는 구름에 가려진 눈 덮인 한라산을 보기 위해 하루에도 수차례 손수건만한 민박집 옥상으로 올라가곤 했다. 그곳엔 작은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었다. 공중엔 붉은 색으로 페인팅한 깡통에 구멍을 뚫어 갓을 씌운 전등을 머리가 닿을 듯한 높이의 빨랫줄에 집게로 걸어두었는데 바람이 스칠 때마다 흔들리던 홍등(?)은 나를 설레게 했다. 옥상으로 향하는 좁은 시멘트계단을 오를 때마다 감귤가지들이 발목을 걸었지만 나는 카메라를 들고 다람쥐처럼 잘도 피해 다녔다.
제주는 내 단골 여행지지만 처음으로 이렇게 감귤밭 속에서 지내게 된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 것이다. 언제든 마음이 동하면 감귤을 따먹을 수 있지만 천지사방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귤은 먹지 않아도 포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아침마다 햇살 가득한, 이 계절에도 수선화가 꽃을 피우는 민박집 마당가에서 펄럭이는 치마를 입고 젖은 머리를 말릴 때면 여기가 남태평양 타이티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곤 했다. 욕실과 화장실이 밖에 떨어져 있었는데 그 불편을 견디지 못했다면 그 집에 머물 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낮은 담을 사이에 두고 감귤밭이 있고, 고개를 들면 한라산이 반기는 옥상과 화장실로 이어지는 감귤밭을 통과해야만 하는 그 소박한 풍경을 나는 얼마나 사랑하게 되었는지.
저녁이 되면 아저씬 마당가 사철나무 아래 그릴에 불을 피우고 새벽 서귀포 항과 오일장에서 사온 생선과 조개를 구웠다. 그 냄새가 집안을 채울 때쯤이면 이웃집 아저씨친구가 와인을 들고 나타나곤 했는데 우리의 대화는 LA로 히말라야로 대관령으로 종횡무진 했다.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날개를 가진 여행자라서 그랬는지 나는 내 슬픔을 감추지 않았고 아저씬 자신의 꿈과 행복을 숨기지 않았다. 아저씨가 Bee Gees의 ‘Don't forget to remember me’를 부를 땐 나도 따라 불렀다. 이 노랠 부르며 내가 내 과거를 생각할 때 아저씬 아저씨의 옛사랑을 생각했을까.
나는 틈틈이 벽난로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장작을 넣었다. 아저씨가 선곡한 음악들은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집안을 뛰쳐나가 마당으로 귤밭으로 돌담 사이로 대책 없이 흘러 다녔다. 그집에선 길냥이도 강아지도 음악을 들었다.
한나절 걷다가 민박집으로 돌아올 저녁 무렵의 한라산은 구름에 가려 신비감을 더했다. 동쪽 끝으로 달이 차오를 때쯤 아저씬 짠! 하고 옥상 붉은 깡통등에 스위치를 올렸다. 그럴 때마다 파란 알전구가 깡통 안에서 별처럼 반짝거렸다. 어린왕자가 본 지구별을 상상하기에 그만인 동화 같은 풍경이었다.
흐르는 음악을 멈추고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우면 한지문살 틈으로 스며들던 은색 달빛, 타이밍이 맞으면 마당에 서서 달과 깡통불빛이 하나로 포개지는 걸 볼 수도 있었다. 그땐 옥상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달도 별도 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딸 수 있지만 따지 않았던 그것, 세상에 널려있지만 딴청부리다가 놓쳐버렸던 그것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리 지나쳤던가.
한라산, 파란 바다와 하늘, 희고 붉은 등대, 노란 감귤밭, 검은 돌담, 나무십자가, 붉은 말, 벽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찻물소리, 수선화, 강아지, 온갖 장르의 음악들, 식탁을 채우던 신선한 해물요리와 레드와인, 커피 향, 낡은 LP판 같은 아저씨의 미소, 그리고 진한 나무냄새로 가득한 집, 떠나는 순간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것쯤은 예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시집이 단 한 권도 없는 민박집에서 나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시를 떠올렸다는 것,
늘 그 자리에 있을 거라며 살다 지치면 언제든 다시 오라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내 뒷덜미를 낚아채던 그날 아침은 하늘도 바다도 짙은 파랑이었다. 당분간 나는 민박집 마당가에 핀 애처로운 한 송이 수선화를, 좁은 옥상에서 즐기던 설국의 한라산을, 입에 침이 고이게 하던 감귤밭의 향기를,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Don't forget to remember me' 또한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주의자들이 자물쇠를 가방에 넣고 제 발로 걸어가 스스로 감옥을 짓고 갇히는 제주, 흔들리는 것이 숙명인 이곳은 먼 바다를 건너온 새들의 천국, 물의 감옥, 바람의 형무소, 부산했던 뭍의 일상들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시 섬이 되어 자라는 곳, 애써 지은 감옥을 허물고 돌아가고픈 마음과 내 손으로 마음에 드는 창 하나와 의자 하나를 만들어 이 계절만이라도 살아보고픈 욕망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제주,
다시 몇 달을 흘려보내고 나서 이 글을 쓴다. 돌아보면 삶(여행)이 나를 시 쓰게 했을 뿐 나는 결코 시를 위해서 삶을 각색해 본 적이 없다. 가끔은 바람의 암호를 해독해야 하는 숙제는 있지만 시는 지식을 덧씌운 현란한 언어의 조합이 아니라 경험에서 재생산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겨울 제주에서의 내가 만난 바람을 번역할 수 있다면, 너무 많이 읽어서 찐빵처럼 부풀었거나 귀퉁이가 닳은 백석의 시집을 닮았을 거다. 내겐 진실 아닌 것에 사탕을 바를 재주가 없으니, 그러니 지난겨울 제주의 그 바람은 겨울 끝 내 안의 아스라한 절벽에 핀 복수초의 기호와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형식이 파괴된 문장이라도 언어는 기호가 구조화된 것, 바른 언어구조는 철저하게 규칙과 체계를 이루고 있고, 그 규칙과 체계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니 문체가 곧 사람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삶의 결처럼 저마다 다양한 개성적인 표현과 창조적인 글쓰기가 가능하고 사랑받는 것도 그런 연유일 거다. 자신만의 문체 그 독창성은 말할 것도 없고, 총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내가 언어를 따로 연구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그것이 시라고 다르겠는가.
*김인자 : 강원도 삼척 출생,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했으며, 현대시학 ‘시를 찾아서‘로 등단. 시집 : 『겨울 판화』. 『나는 열고 싶다』. 『상어 떼와 놀던 어린 시절』. 『슬픈 농담』과 다수의 여행산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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