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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집중조명/정치산/그의 말을 훔치다∙3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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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283회 작성일 15-07-13 11:23

본문

집중조명
정치산

그의 말을 훔치다·3


돌덩이가 발에 채여 굴러다닙니다.
한 번 구우면 금덩이가 되고
두 번 구우면 다이아몬드가 되고
세 번 구우면 은하수의 별이 됩니다.
구우면 구울수록 변하는 돌덩이를
아흔아홉 번 구웠더니 그녀가 됩니다.
구우면 구울수록 변한다는 돌덩이를
아흔아홉 번을 구웠더니 뻥튀기가 됩니다.
그의 말은 참말보다 더 매력적인 거짓말들,
그래도 그의 말이 믿고 싶어
아직은 은하수별로만 반짝이는 돌덩이를
자꾸만 굽고 있습니다. 정말 그녀가 되었습니까?
그녀는 간데없고 우루루 뻥튀기가 쏟아집니다.

당신은 당신의 경험에 갇혀 있습니다.
문을 만들어 탈출해야 합니다.
숨구멍을 틔어 놓았습니까?

지금까지 쏟아놓은 그의 말들은
참말보다 더 유혹적이고 매력적인 거짓말들,
그래도 당신은 그의 말이 믿고 싶어져 
한여름 태양 아래 다시 돌덩이를 굽고 있습니다.
숨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훔치다·4
-수박


검은 길을 따라 개미가 기어가고 벌레들이 기어간다.
소년과 소녀가 기어가고 그와 그녀가 기어간다.

수박을 깨면 도망간 그녀가 걸어 나오고
도망간 그가 허우적허우적 걸어 나온다.
십년 전 어머니가 걸어 나오고
우당탕탕 도깨비방망이가 튀어나온다.

검은 반점을 타고 
그녀가 훔쳐간 태양이 튀어 나오고
그가 훔쳐간 태양이 튀어 나온다. 
도깨비방망이 훠이훠이 춤을 추고 
어머니 까무룩 먼 길 떠나신다.

검은 길을 따라 태양이 숨어들고 달빛이 스며들고
그와 그녀가 스며들고 빙하가 숨어든다.
검푸른 줄을 타고 한여름 밤이 도깨비 난장이다.




그의 말을 훔치다·5
-전설을 기록하는 시인


삼백육십오일 해가 깃들고 달이 깃드는 거기가 있다.
거기에 원고를 주면 죽는다는 전설이 있다. 
그가 신문을 펼쳐놓고 몇 가지 단어를 조합한다.
거기에 원고를 주면 죽는다는데, 잠시 고민 한다.
죽기 전에 넘겨야 할 원고를 생각한다.
죽기 전에 남겨야할 원고를 꺼내드는 순간 
원고를 향해 날아온 칼에 붉은 피를 묻힌다.
원고를 주면 죽는다는 전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몇 편의 CF를 내보내고 있지만 세상은 갸우뚱 한다.
하늘의 노여움을 받아 쫓겨난 새들이 원고를 가져온다.
전설을 기록하는 전설적인 시인을 알고 있나요?
매일 아침신문에는 전설적인 시인을 찾는 광고문구가 실린다.
몇몇이 거기에 원고를 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는 풍문이 있다.
죽기 전에 거기에 꼭 원고를 주어야 천국에 갈수 있다는 소문에
전설이 늘어나고 원고가 넘친다.
삼백육십오일 해와 달이 깃드는 거기,
쫓겨난 새들이 원고를 물고 온다는 거기,
죽음을 무시한 원고들이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천안천화(千眼千話)


그의 손에서 천개의 눈이 자라나 천개의 꽃으로 핍니다. 
천개의 눈에서 천개의 말이 피어납니다. 천개의 눈과 천개의 꽃, 
천개의 말이 당신의 방을 빙글빙글 돕니다.
북극성은 여전히 제자리입니다.
시간을 멈춘 벽이 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의 어깨에서 뱀들이 자랍니다. 
잘라도,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뱀. 
제 살을 깎아 먹고 다시 돋아나는 뱀들이 자랍니다. 
그의 어깨에서 말이 돋아납니다. 잘라도 잘라내어도 
다시 돋아나는 말들이 날개로 피어납니다. 
날개로 피어난 말들은 천개의 문입니다. 
그 문밖에 시간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기억을 먹고, 생각을 먹고, 꽃을 먹고, 말문이 열립니다. 
말문이 트입니다. 그의 어깨는 말들이 드나드는 문, 
닫아도, 닫아도 자꾸만 열리는 그의 어깨에서 
그대가 돋아납니다. 그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여우비


살짝 눈 흘기며 눈물 흘리는 걸 보았지. 
살랑살랑 보일락 말락 살짝살짝 내비치며 
살그머니 유혹하며 살랑대는 것도 보았어.
감쪽같이 숨겨 놓고 폭폭 안기는 것도,
빛나는 아홉 개의 표정은 들키지 않았어. 
호리병 속에서 몽글몽글 안개 피우며
살짝살짝 눈짓 보내고 있는 것도,
그 눈짓, 그 몸짓, 눈치 채지 못했어. 
간도 쓸개도 다 빼가는 걸,
다 녹아내리는 걸 눈치 채지 못했어.
번개 치면 후다닥 번쩍 정신 차리고
깜찍하게, 해맑게, 천진한 얼굴로
그냥,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을 거야.
후드득, 잠깐 그의 가슴에 실종된 빗방울이잖아.
그냥 잠깐 적시고 지나간 거잖아? 
해가 환해지잖아. 한 눈 찡긋 감고 느껴봐.
바람이 부는 대로 그냥, 그냥, 지나갈 거야.
잠깐이잖아, 아주 잠깐, 아주아주 잠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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