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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소시집/박해미/운주사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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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569회 작성일 15-07-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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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집
박해미

운주사
     
      
사랑하는 그대가 보이지 않는다고
사랑하는 그대가 내 곁을 떠났다고
그대 탓 한적 참 오랜 세월이였지요
꿈 속처럼 그대 내게로 와
언젠가 한번쯤 가 보았던 그 길
나란히 걸었지요
문드러지고 일그러진 저 부처도
누군가 간절히 그리워서였을까요
그대가 한결같이 나를 생각한다면
내가 한결같이 그대를 생각한다면
환한 대낮에도 북두칠성은 반짝거리고
우리가 바람의 향기로
또다시 만나
삼백예순의 날이 천 번을 지나면
그 때쯤에 우리는 나란히 누워 내내 행복할까요


내가 그대만 생각했던 꿈 속에서는
일주문 넘나드는 햇살도 부끄럽지 않았지요




탁상행정
  

봄꽃이 활짝 펴
나도 활짝 펴 보고 싶어
간질거리고 있을 때
신병은 선생님께서
영취산 진달래며 산벚나무며 산앵두네며
가가호호 가정방문 중이시라고
카톡을 보내오셨다.
숲길에는 기초수급이 필요한 나무도 많다며
산으로 출장 한번 나오라는 꼬리말도 붙였다.
사무실에 앉아 
기초수급대상 급여를 담당하는 나는
혹,
겨울나며 힘들었던 기초수급 꽃들의 풍경을 만나면
기별 좀 주시라는 
당부 말씀만 카톡으로 날렸다.


창밖 가깝고도 먼 풍경이었다. 




나는 꽃이다


소라면 <진달래 마을>요양원이 저수지를 보고 있다.
현관에 '나는 꽃이다' 라는 붓글씨 액자가 걸려있다.
훨체어 손잡이를 잡고 있는 아들에게
목욕 안 하겠다고 자꾸만 고개를 흔드는 할아버지
나보다 한 살 많은 요양원 원장님이
목욕은 나중에 해도 된다며 달래드렸다.
할아버지와 보호자가 방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액자 아래에서  
개원한지 얼마되지 않은 <진달래 마을>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사이 식당일을 한다는 부부가 짬을 내었다며
노모를 만나러 와서 목욕을 시켜드렸다.
그 소식 들었을까, 할아버지가 다시 나와
목욕을 하시겠다고 하신다.
쉰 살의 처녀 원장님이 
“목욕비가 5천원인데요, 있으세요?” 웃으시자 
“나한테 5천원 있어요”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할아버지 볼이 진달래를 닮았다.    
그 풍경 안에 들어서 있는 나도 덩달아 꽃이 된 느낌인데
매서운 추위를 뚫고 
진달래가 산 어디쯤에서 봄길 찾아 걸어 내려오고 있겠다.
마주보는 산과 저수지가 먼저 꽃처럼 환하게 피어난다




쏠림에 대하여


오랫동안 함께하고 싶은 사람과 숲에 갔다.
햇살에 잘 익은 가을이 풀밭으로 키를 낮추고 있었다.
목적이 밤을 주우러 간 것은 아니였으나 
늦가을 숲에는 밤들이 떨어져 있어 우리는 함께
밤을 줍기 시작했다. 

처음엔 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떨어진지 오래되어 말라버렸거나 벌레먹은 밤들을 주우며
어린아이처럼 가시에 찔리기도 하면서  
차츰 풀잎사이 숨어있는 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반대로 그는 
처음부터 밤을 주우러 숲에 든 사람처럼
알차고 굵은 밤을 서투른 내게 모두 건네주었다.

어쩌면 내가 짐작만 할 수 있는 그는
가슴에 밤송이가 수없이 박혀 
밖으로 울지도 못했을 터
떨어져 있으면서 이따금씩 한 걸음을 사이에 두고 
건네주던 온기 남은 밤톨이 오래전 그날처럼
내게 또다시 오랜 기억으로 남아 환할 것이다.

숲에서 나온 우리가 또 만나게 될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고단한 날개죽지를 접고 나뭇잎에 앉아
쉽게 날아가지 못하던 잠자리처럼  
우리는 함께 오래도록 햇살 속을 노곤하게 
또다시 거닐고 싶을 뿐이다.       
     


 
호야꽃


한영대학 바리스타 실습실 창가에 놓인
덩굴식물 호야가지를 꺽는 그녀에게
작년에 피어 내 스마트폰 안에 넣어 두었던
별꽃 닮은 호야꽃을 보여주었다.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호야꽃,
그 호야꽃 처음 본다는 그녀에게
호야꽃이 피면 그 화분 주겠노라
그만 말해 버렸다.
내가 한 말 갓털처럼 바람 타고 날아가
호야가 들었나보다
창가에 놓인 귓볼 닮은 잎사귀 사이에서
씨앗같은 꽃대궁이 숭얼숭얼 돋아나는 것이었다.
말이 씨가 되었나보다
작년에 한 가지에서만 피었던 꽃봉오리가
내가 한 말 어서 책임지라는 듯
이 가지 저 가지에서 막 솟아나는 것이었다.
말이 씨가 되어 꽃이 된다
네가 들려주는 따뜻한 말들도  
날마다 실습 중인 일상에서 
야호,야호 세상으로 퍼져 온갖 꽃으로 피어나면 좋겠다.





   
꽃씨가 필요하여
석창 화훼단지에 갔더니
꽃만 만발해 있었다.
그 곳에서 알려준대로
서시장 종묘상회로 갔더니
꽃씨 심을 철이 지났다 한다
나도 참 철 없구나, 돌아오는 길
수년전 내게 신세 진 적 있는 
초등학교 근처 작은 꽃집에 들렀다
철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찾는 경우가 있다고
반백이 된 꽃집아저씨 웃으며 건네주신다.
철없이 받아 온 꽃씨,
때 되어 심어 꽃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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