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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소시집/정미소/깔닥고개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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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757회 작성일 15-07-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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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집
정미소

깔딱고개


 새로 산 스마트텔레비전 속에는 깔딱고개가 산다 군더더기 살 완벽보정 허벅지, 종아리, 신축성까지 쫀쫀하게 첨단소재의 레깅스 오로지 방송 중에만 드리는 혜택, 혜택에 접었던 봄을 열고 숏 다리 알박이 종아리에 초록빛 레깅스를 신는다 미끈한 소녀시대의 춤사위가 전신거울 앞에서 물오른 버드나무다 깜장색레깅스가 엉덩이 살랑대며 봄 문지방을 건넌다 텔레비전 속, 쇼호스트가 보라색레깅스를 여름의 끝까지 잡아당길 때 깜짝 타임찬스로 경품추첨이다 화면에 K7 빨간 승용차가 자동주문버튼을 재촉한다 원 플러스 트리플, 마지막세일보다 더 싼 가격, 신 새벽에 숨차게 넘은 깔딱 고개가 멍하다.




소원의 샘

꽃을 던진다 소원의 샘 깊이에
민들레꽃을 던진다

무너진 봄이 어디로 빠져나갔나
기우뚱하며 소풍 길에 쓰러진 울음을
새의 문장으로
바람의 말로 일으켜 세워 달라

그늘이 화단을 키우는,
산수유 철쭉이 저 혼자 자라 향기와 빛깔을 내
햇살 비켜간 화단에 새붉은 고립이 떠있다

가라앉지 못해 빙빙 도는 꽃들이
소원의 뜨거운 지문을 지우듯
입춘의 외곽에서
꽃을 던지며
매운 눈을 책갈피 속에 모래로 쏟아
봄의 이름을 동심원 터지도록 써본다.




춘분


궁전빌라 담벼락이 소란스럽다
위성안테나 안 쪽
측량을 마친 까치 두 마리가 집을 짓는다
알콩달콩
봄을 한 잎씩 물어 올린다

황토 흙에 솔잎을 버무려 벽을 바르고
줄장미 문양의 커튼이 거울 속에 들어가
반짝 웃는다
남쪽 나라 햇살이 마른 풀바닥에 온기를 도배한

첫 봄의 시작은 
소음에 쫓기고 전선에 허물어져 
꽁지 깃 힘껏 밀어 올린 열 두 번의 이사 끝에
변두리에 차린 신접살림 

오래된 궁전빌라 담벼락에 세워진 새 궁전 하나.




표본실의 왕호랑거미


거미줄을 빠져나온 왕호랑거미 표본실에 누웠다 포르말린 냄새 향긋한 허공에 박제되어 제 생을 투명한 링거수액으로 기척을 살피는 저녁,

처마 밑 수직의 둥근 그물망에 숨은 띠가 끈적거린다 붓꽃, 꽃무리가 햇살을 닫을 쯤 

아궁이에 군불을 넣고 부글부글 가족을 부른다 목울대 창창한 말매미의 울음주머니는 한사발의 온기 어린 사랑으로 채운다

수액이 빠져나간 더듬이는 백년 누운 표본실에 박제된 채 왕호랑거미의 은백색 털을 일으키고 싶어 정지된 제 생을 꿈틀거려 본다 

가만, 누워 계세요 어머니 어머니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아요.      




월정사, 전나무 숲길


눈 쌓인 길이 고요한
순백의 편지지다
첫머리에 너의 이름을 부른다

헝클어지고
부쩍 말이 길어진 너의 입술에
눈송이처럼 날아온 문장이 길 위에 떨어진다

떨어진 겨울을 주워 손바닥에 올리니
알 수 없는 바람의 말들이 허기로 들어서
산사 가는 길을 붙들고
봉인되지 않은 그대 안부를 허공에 물어본다

산사는 아득히 길이 끊긴 듯
안부도 폭설에 끊겨 
눈 덮인 길은 첫 머리 인사처럼 막막하고 

내 등을 밀치고
일주문으로 달려가는 찬바람이
전나무 긴 다리 사이로 빠져나간다.




시詩


 시가 안 써지는 날은 그를 긁는다, 말 할 때 다리를 달 달 떨지 마 말문이 막힐 때 볼 긁는 거 오랑우탄 같아, 원숭이 같아 그러고 나면 그가 나를 긁는다, 스파게티 먹을 때 길게 내미는 혓바닥 주접이야 유기농샐러드 독식하지 마 다른 남자에게 꼬리 치지마 

 흠과 흠을 부리로 콕 콕 집어내는 저녁, 긁고 긁히며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저녁 침묵과 냉전이 흐르는 밤엔 시를 부른다 오랑우탄과 얼룩무늬 기린이 서식하는 집, 시가 추운, 시가 오다 달아나는 집, 달아나는 시를 붙잡고 늘어지는 집, 늘어지다가 길게 밤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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