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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신작시/노혜봉/백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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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602회 작성일 15-07-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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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노혜봉

백간白簡 *                      
                                ---그 둘
                             

얇은 타이프라이터 하얀 종이에 씌어진
긴 긴 예닐곱 장의 연애편지
논산 훈련소에서 신병 훈련을 꼬박 받으며
짬짬이 달필로 휘감아 써 보낸 그의 속, 속말
(한 번도 찻집에 앉아 말 나누어 본 적 없는) 

토스토에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의 알 수 없는 숲속의 은둔생활
이야기, 독백에 신명이 나서 쓴,
---------------연이어 온---9통의 편지글

단 한 줄의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
다시 우표 10장에 괴로운 덤까지 부쳐 
근무하던 학교로 배달되었던 마지막 편지

나는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채
하얀 한지 한 장을 네 귀가 맞게 접어 보냈다
맑은 명경明鏡 하나 순수, 그의 얼굴

---삼년 뒤, 허름한 여관방에서 베토벤 환희 교향곡 
3악장을 밤새워 듣다가 음독자살을 했다는 소식
 
오늘 밤 문득
심경心經같은 첫 마음을 담아 보낸 눈밭 저, 

* 백간白簡---아무 것도 쓰지 않은 하얀 종이로 넣은 편지




삼이웃* 곶자왈 숨골


숲속에서 종일 풀잎을 품어 나는 초록범벅이었습니다.
얼금뱅이 쏙돌 할미는 거문오름 숨골로 가는 봄마중에 앞장섰습니다.

--할미는 더미더미 한겨울 굴속에서도 숫처녀 입 냄새 바람을 속 깊이 품어 주었었지. 연둣빛 색실을 골라서 은가위로 잘디잘게  꽃술을 잘라 뿌려 줄까나. 
--흙속에서 물이슬을 모아 목젖에 연분홍 보랏빛 진한 꿀향을 입혔어요. 
--할미가 여기 저기, 산야초 잎 귀마다 갈무리한 참실로 뼈살이 피살이에 꿈종을 달아 줄까나.
--요리조리 누운괴불이끼 섬백리향 콩짜개덩굴은 숨구멍 속에서 어렵사리 꿈종 주머니를 내밀어 보였네요. 난 바리데기, 난 콩쥐, 난 구슬아기! 이야기꽃들이 시샘하며 바람 따라 귀를 기울이네요. 
 
쏙돌 할미는 콧구멍으로 쉬잇쉬잇 숨을 고르더니 비자나무 아래 누워 곤히 잠들었습니다. 하늘의 해별왕 달별왕들이 들려주는 꿈종 소리를 주머니 속에 담는가봅니다. 달랑달랑---

--할머니 할머니 하루 해오라기새가 곶(수풀)재를 못 넘기고,  늙은 말이 자왈자왈(자갈이 엉켜있는) 길을 앞장선다는데,  어서 눈 좀 뜨고 잔치 상을 받으셔야 할 텐데요. 어서요.

나는 천년 풀향 살내음을 지름돌 숨구멍에 문질러주었습니다.
쏙돌 쏙돌 비자림 숲은 달디단 숨골 바람을 맞아, 봄나물들도  꽃나들이 몸치장에 입술이 화끈화끈 하답니다.

* 삼이웃---이쪽 저쪽의 가까운 이웃 


*노혜봉 : 서울 출생 성균관대학 국문과 수학. 1990년도 월간『문학정신』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산화가』(1993년 민음사) 『쇠귀, 저 깊은 골짝』(2000년 현대시). 『봄빛절벽』(2011년 문학세께)  <좋을好>. 성균 문학상,(1993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2012년). 류주현 향토문학상 수상(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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