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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신작시/김경수/글자가 걸어나온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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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390회 작성일 15-07-13 11:44

본문

신작시
김경수

글자가 걸어나온다. 1


서랍을 열자 무거운 소리가 튀어나온다.
우리는 늘 스스로의 소리를 서랍에 가두어 둔다.
빛나는 소리, 차가운 소리, 바늘 같은 소리
서랍을 여는 것처럼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목이 길어진다.

‘짧은 인생에서 미워하는 것은 부질없다’라는 글자가 
하나씩 종이에서 빠져나와 걸어온다.
글자에도 그늘이 있다. 
봄비에 젖는 그늘에서 슬픈 노래 소리가 일어선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 누구나 얼굴이 늙는다. 
절세 미인 여배우도 세월 앞에서는 모두 노인이 된다.
아름다운 풍경風景을 노래하던 사람들이 쓸쓸한 책이 된다. 
사람들 저마다의 꿈이 책속에서 허물을 벗고 나온다. 
남은 생生이 얼마 남지 않은 노년에서 지나온 삶은 찰나刹那이다.
늙지 않고 죽지 않는 것은 글자뿐이다.
책 안에 꽃이 흐른다. 
푸른 눈의 서양인이 책 속의 호수에 빠진다.




글자가 걸어나온다. 2


책 속의 글자를 보면 향기가 난다.
모든 문장들은 착하게 보이고 도와주기만 할 것 같다.
글자의 진정한 내면內面을 알기 위해서는 
글자와 섞여 세월을 보내야 한다.
책에서 걸어나온 글자를 어루만진다.
책을 버리고 나온 글자와 밤새도록 이야기를 한다.
글자는 희망과 달콤한 친밀親密을 이야기한다.
슬퍼하는 글자의 마음이 진짜 슬픈 건지
웃는 글자의 마음이 진짜 기쁜 건지
글자를 오랜 기간 살펴봐야 알 수 있다.
책 속의 글자는 가면을 쓰고 있다. 
책 속의 글자는 독자를 속이기 위해 눈웃음치고 있다.
속는다. 웃는다. 분노한다.
글자가 보기에 사람들은 바보들이다.
고요함이 주인인 식탁에 놓여진 물병이 글자이다.
문장이 소리가 되어 떨어진 물병에도 시간은 흐르고
글자가 밤늦게까지 사람을 읽는다.
속지 않기 위해서는 
유별나게 친절한 글자를 조심해야 한다.


*김경수: 1993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하얀 욕망이 눈부시다』, 『다른 시각에서 보다』, 『목숨보다 소중한 사랑』, 『달리의 추억』, 『산 속 찻집 카페에 안개가 산다』, 문학ㆍ문예사조 이론서 『알기 쉬운 문예사조와 현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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