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57호/신작시/이루시아/구두의 안부가 궁금하다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신작시
이루시아
구두의 안부가 궁금하다
늙은 구두 수선대 위에 누워 있다
표정은 저물녘의 고요한 불안을 살피고 있다
서로의 눈빛이 시간의 매듭을 풀고 있다 축축해지는 눈자위
그의 손끝을 떠나 지구의 몇 바퀴를 돌아온 걸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뒤축
타박타박 발목의 무게를 끌고 꺾어지던 숫한 골목들이 지문으로 새겨진
생애의 뒤쪽이다
등 돌리고 앉은 속울음이 빼곡하다
자주 과부하가 걸린 관절 속으로 몇 개의 못이 중심을 잡는다
가슴 뻐근해지는 시간의 하구 한 땀 씩의 멀미를 걸어두고
사나흘쯤은 견뎌야 할 아픔이다
둥글게 세상의 아침으로 이어지던 순한 이마엔
촘촘히 바람막이가 덧대어지고 헐거워진 근육들이 꼭꼭 여며진다
풋풋한 기운들이 수혈되는 혈관
끊어진 실핏줄을 이으면 새로 난 골목의 지도가 입력될까
점포 밖으로 안내 표지판이 걸리고
그는 빛나던 구두의 이력을 다시 쓴다
슬픈 동면기
동면冬眠의 차고 긴 사슬을 풀어내는 중이다
쓸쓸이 웅크렸던 잠의 모서리
알몸의 상처들은 자주 무리 진 슬픔을 뱉어내곤 한다
다시 또 흥건히 젖은 꿈의 습지를 빠져나와
몇 번이고 바르작거리다 혼절하는 봄날
북방산개구리 목이 터지는 경칩이다
바짝 엎드린 채 부푸는 울음주머니
핏발선 눈망울이 끔벅끔벅 물의 온도를 따라 간다
갈퀴마다 접혀지는 절박한 제 소리를 끌고
필생의 힘을 다 쏟아내는 거다
나는 얼룩얼룩 새겨진 등위의 점자들을 해독해가며 긴 잠의 꼬리뼈를
만져본다 검붉은 소리의 이랑사이
짧은 봄 울음 터트린 산란의 계보를 거슬러 오르면
느리게 진화하는 뒷다리의 움직임이 어눌한 대물림과 맞물려있다
나는 물꼬 트는 봄의 정수리에 앉아
허물 벗은 전생의 이마 쓰다듬으며 축축한 잠의 경전을 펴 말린다
*이루시아 : 2012년 미네르바 등단
추천0
- 이전글57호/신작시/박하리/다리없는 다리가 너무 아프다 외 1편 15.07.10
- 다음글57호/신작시/조재형/이면지 외 1편 15.07.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