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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신작시/양영숙/구름이라는 나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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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양영숙
구름이라는 나무
구름이 온종일 나룰 핥고 있어요
빗방울에 달라붙은 뼈를 흘리며 춤을 추어요
발가락이 가려워 하품을 시작해요
검은 우산 속으로 고개가 기울어요
오래된 창문처럼 손가락이 자라났어요
나를 버리지 말아요
구름꽃이 핀 나무에 알몸으로 오르고 싶어요
봄의 핏줄이 구름을 흔들어요
알갱이들이 내 안에서 영역을 넓혀요
노래가 나이테마다 채워져요
교정의 나무가 온몸으로 휘파람을 불어요
바람의 혀가 길게 맨발을 적셔요
날개는 조금 조금씩 옆구리를 긁어요
모자를 거꾸로 쓰고
새 한 마리가 철봉에 매달려 있어요
구름이라는 잎사귀를 달고
느티나무가 운동장의 성장통을 빨아당겨요
605호실의 악몽
붉은 손톱의 악몽이 침대 모서리를 찌르고 있다
일요일은 링거줄을 걸치고 식은땀을 흘린다
천정을 기어 다니는 전갈들
그녀도 전갈자리에 누워
기억 속 별자리에 대해 꼬리를 감춰왔지만
휴일은 북극성처럼 그 곳에 멈춰 있다
환상통을 예언하는 시계는 죽은 별의 궤적을 따라간다
달이 느리게 허파꽈리를 지나간다
불거진 듯 도드라진 밤의 혈관
별자리에는 꿈틀거리는 화살표가 남아 있다
침대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자화상의 기록들
후박나무가 보이는 행성의 궤도는 어둡다
마른 꽃처럼 굳어가는 숨소리
꽃병의 기침은 어둠에도 시들지 않는다
링거액이 쉼표를 찍으며 조롱 섞인 호흡을 이어간다
그녀의 일요일은 은빛 소름이 돋는다
*양영숙 : 2013년 《시와소금》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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