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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신작시/최지인/나선형 입구의 쉐도우 소프트 실린더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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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최지인
나선형 입구의 쉐도우 소프트 실린더
가마솥에서 튀어나왔다니까요 뚜껑을 들고 흔들던, 소리가 건너편에서 튀어 오를 때마다 거울이 깨지고 그림자가 망가지고, 모두 어땠느냐고요? 토종닭이 끓고 있던 가마솥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거나? 아니에요 유리 조각이 바닥에 쏟아졌는데 수백으로 갈라졌는데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떠먹는 그림자를 말릴 순 없었지요 졸려 보였어요 눈꺼풀이 내려앉고 달궈진 유리실들이 굳어 실린더가 만들어졌답니다 그 입구에 서서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어요 잡을 수 없는 거잖아요 그림자를 쥘 수 없는 우리는 귀를 막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하얗게하얗게 움츠릴 뿐, 실린더의 입구는 한없이 유연한데 유리막은 한없이 견고한데 참을 수 없는 그림자가 흘러가는데 사각의 테이블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렇게 사라졌어요 다시 젓가락을 들고 접시에 놓친 토종닭을 발라먹었지요 뼈가 쌓이고 너도나도 균열이 일어났는데 아무도, 아무도
부드러운 로다민 B 물감
밤마다 페트병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운다 매끄러운 입구에 서서 주문을 외우기 주둥이만 넘으면 투명한 몸을 갖게 되겠지 비 오는 날에도 색이 바라지 않는 피부를 뽐낼 수 있고 그럼 색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쉽게 부러지는 뼈는 꼼꼼히 색칠해야 한다고 네가 말했나 작아지기 위해 커지는 것 칼 같은 몽상들 입을 오므리고 비눗방울을 만든다 날아가는 방울 끝에 꽃송이 매달린다 나풀나풀 네 얼굴 페트병 속의 너는 쭈그려 앉아 있다 언니 같은 점(占)을 봐줄 테니 혼자 올래 속삭이는 페트병 흐르는 물방울
*최지인 :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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