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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신작시/장진영/불행목을 읽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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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장진영
불행목不幸木을 읽다
행여, 행운이 올까
십 오년 전 베란다에 행운을 옮겨 심었다
몸통에 까칠한 나이테로 제 나이를 알려주는 행운목
구부러진 줄기는 마치 용龍의 모습
하늘로 솟을 듯한 머리끝은 천장 벽에 닿았다
날개를 달아주면 어디선가 행운을 물어다주려나
여의주 같은 꽃봉오리 보여주려나
제때 물을 주고 햇볕으로 다독여도
기다리는 운은 오지 않았다
행운이라 불리는, 나의 살갗이 되어버린 저 不幸木,
볼 면목이 없는지, 천장 벽에 기대어 목을 구부린다
녀석은 한 번도 보지 못한 행운을 이름으로 입고
갸우뚱, 궁리중이다
행운이란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한시도 멈춤 없이 길을 가고 있는 너를 보며,
나는 중얼거린다
조만간 너를 방목 해야겠다
얄팍해진 햇살도 시멘트 천장도 너의 날갯짓을 꺾지는 못했으니,
백 년 만에 올까 말까 하는 너의 얼굴 보겠다고
쉼 없이 커가는 不幸木을 바라보며
너의 불행을 키우고만 있었다.
벽 허물기
새벽 다섯 시, 알람에 길들여진 적상산 바위벽 시계는 내게로 왔다
오늘은 기어이 벽을 허물겠다고 해머가 눈빛을 번뜩인다
해머의 머리는 수백 번 벽의 급소를 찾고 있다
실토를 할 때까지 쿵쿵, 내려치는 완강한 팔뚝들
관절이 꺾이는 소리, 한 움큼 먼지를 토해내는 벽,
끝내, 벽이 입을 열고 실핏줄을 드러낸다
순간, 산의 정수리에 금이 가고 허공이 몸을 뒤트는 소리
해머를 움켜쥔 뻑뻑한 가슴팍과 나의 팔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잠깐 노동을 놓고
담배 한 개비로 먼 산을 바라보는데
또 하나의 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허물어진 벽 속에 숨겨진 투명한 벽,
힘껏 내리쳐도 아랑곳없는 벽,
그만 나의 의지와는 딴청으로
가느다란 맥 줄기 힘없이 풀리고 있었다
두께도 높이도 알 수 없는 인과(因果)의 벽,
벽의 잔재는 15톤 트럭에 실려 폐기물 처리장으로 보냈지만
나의 업業은 보내지 못했다. 이것마저 덤으로 실어 보내려 했던
나는, 한 번도 나를 깨뜨리지 못했다.
*장진영 : 전남 장흥 출생.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4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장흥별곡 동인, 시집 『끼리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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