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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신작시/최혜숙/전생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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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최혜숙
전생
버섯을 먹고 일어난 아침
멀쩡하던 몸이 말채나무 채찍에 맞은 것처럼
죽 죽 줄이 가 있다
내가 말(馬)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맞은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까닭을 모르겠다
어느 나라 평야에 외계인이 그려놓았다는
불가사의한 줄무늬 그림과 같다는 생각도 들고
팔순 노모의 밥상을 앉아서 받아먹은 게 괘씸해서
하늘이 날 벌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병원에 갔더니 표고버섯 증후군이라고 한다
어젯밤 식구들이 잠든 사이 딱 2개
참기름소금장에 찍어먹은 게 그만 신호등에 걸린 것이다
그런데 열꽃도 아니고 두드러기도 아니고
왜 하필 채찍 자국인가
누군지 나를 무척 때려주고 싶었나보다
아니면 내가 전생에 마부여서
말들에게 채찍을 마구 휘둘렀나보다
검은 향기
인사동 스타벅스 2층
창가 쪽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가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검은 얼굴과 한적한 마을 언덕의
커피나무 한 그루가 길게 바람에 흔들린다
쟈마이카 블루마운틴 한 잔엔
원두처럼 새까만 검은 눈동자의 남자아이와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 그리고 맑은 공기
산등성이에서 뛰노는 수염 긴 염소와 흰 양들이 있다
밤이면 울타리 없는 지붕 아래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박꽃같이 웃던 아이들이
흙 묻은 발로 잠이 들고
별들은 밤새도록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는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나를 만나러 온 검은 향기가
오랫동안 내 몸에 머물다 간다
*최혜숙 : 2014년 열린시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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