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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신인상/윤종환 '거미의 관찰일기 외 4편'/김종찬 '못의 방식 외 4편'/소감/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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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4,062회 작성일 15-07-10 15:09

본문

신인상

거미의 관찰일기


집주인은 광대뼈가 앙상한 고등학생
나는 방 천장에 월세로 산다
그의 머리 위 포근한 그물 침대
밤마다 찾아오는 영양식 모기
남향 창으로 태양 빛도 쏟아진다

교과서 가득 책가방에 축 처진 어깨
집주인은 캄캄한 달빛을 메고 왔다
손등에는 초승달처럼 파인
연필 자국이 부어올랐다
내가 뽑은 실이 붕대라면
그의 팔을 감아주고 싶은 날이다
얼굴에 녹은 볼펜 잉크처럼
다크서클은 가득 염색되었고
입술은 가뭄이 난 듯 갈라졌다
영양식 모기를 나누어 먹을까
나의 침대를 빌려줄 순 없나
그의 정수리가 유난히 작아 보인다

새벽은 어김없이 아침을 낳는다
아침밥 걸러도 배고픈지 모르는 주인
갈아입은 속옷마저 무거운 주인
구멍 난 양말도 신는 주인
소년은 책가방을 메고 다시 떠난다
책상에는 구겨져있는 성적표 한 장
안감은 머리처럼 헝클어있다

오늘도 그는 침묵의 전쟁에 나선다




구름콘



담배를 피면서 가르랑가르랑
벨트가 흘러 내려간 볼록한 배
한 사내가 손가락으로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맥도날드 앞에 서있다
메뉴판 보니 기름을 얹은 햄버거
자유를 내쫓고 인디언을 내쫓은
카우보이들이 먹던 만찬
그들의 땅에서 기름을 캐고
그곳을 뽑아낸 감자 튀긴 후렌치후라이
그리고 모두가 그리던 레시피
하늘을 따다 구름콘을 만드는 법
한 조각만 물어도 비행을 하듯
두둥실 떠오를 수 있는 맛
사내는 맥도날드의 출입문 들어가선
달달한 구름콘 하나 주문한다
그가 혀를 구름 속으로 쳐 박을 때
뭉실뭉실 솜처럼 부풀어가는
불량한 자유를 흡수하고 있었다
해가 질 때
구름은 바닐라 맛 딸기 맛 초코 맛으로 변했다
구름 만드는 법을 알지 못해
크림에 바닐라 딸기 초코 시럽을 얹던
카우보이들을 찬양하며
맥도날드 아이스크림을 핥는다
전 세계로 전파된 구름콘에 그는
배부른 찬송가만 불러댄다






태양이 케냐에 열을 쏟아 붓자
키 작은 아이들 피부가 메마른다
우뚝 솟은 바오밥 나무들은 파랗고
기린들은 이파리를 야금야금 먹는다
고개를 들고 높은 곳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까만 눈망울에 산 하나 그려진다
아이들이 오르고 싶어 하는 그 산은
봉긋하게 솟아 모락모락 김을 내뿜는다
적도에서도 녹지 않는 눈 때문인지
매일 그 산을 바라본다
산에는 윤기가 흐르지만
아이들은 지푸라기 엮은 꺼칠한 왕겨
허리춤에 달랑 걸치고 돌아다닌다
눈 덮인 산을 퍼먹는 순간
이들 가슴에 만년설이 찾아온다
그래서 지도에는 보이지 않는 산

아이들이 매일 그리는 산
단숨에 무너뜨리는 불도저가 메아리친다
산산조각이 난 밥그릇이 쓰레기통에 쓸어 담긴다
그 순간에도
케냐의 낮은 곳에서는
봉긋한 산이 하늘에 그려질 것이다




숙성의 맛


애국가에 유효기간은 없다
국민들은 천연 방부제
무궁화는 천연 발효제 되어
선율의 진한 맛을 녹여낸다
삼천리 화려강산 항아리 속에
착한 곰팡이 굳어가는 장
세균 달라붙을 새도 없이
애국가는 스스로를 숙성시킨다
초등학교 운동회 대학 졸업식
근역 곳곳에 유통되는 이 맛은
언제 들어도 담백하다

나도 애국가를 먹고 자랐다
왼쪽가슴에 손을 올리면
목구멍에서 확산하는 무궁화 꿀맛
어린이한테는 이유식
할아버지께는 고급 영양제다
4절가지 다 삼키면 배부른 하루
든든하게 챙겨 먹으라며
맨손으로 퍼주는 할머니
당신이 있어 장독대가 건강하다
이 손맛에 유통기한은 없다




소감

윤종환

꽃이 되는 작품을 쓰겠습니다

  중학생 시절, 가슴이 숨을 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눈에 비친 사람들은 날숨 없는 마라토너였습니다. 저마다 미래를 위해 바쁜 삶만 들이마실 뿐이었습니다. 트랙 위 일상의 먼지를 마신 사람들은 진폐증에 걸린 듯했습니다. 현대인들의 마른 기침소리가 이곳저곳 들리지만, 세상이 주는 것은 산소가 아닌 마스크였습니다.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은 입까지 막습니다.
  점점 삭막해지는 사회에서 詩는 맑은 공기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메말라가는 감성을 되찾고, 사랑을 공유할 수 있는 매개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건조한 세상에 글로서 세상에 숨을 불어넣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작은 바람이고 또 앞으로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자만하지 않겠습니다. 세상의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소소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詩는 크지 않은 위대함인 것 같습니다. 작은 씨앗 하나를 독자 가슴에 안겨 주고, 그들이 스스로 꽃을 피울 수 있는 작품을 쓰겠습니다. 사람이 읽어야 위대해지는 겸손한 글을 쓰도록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저를 키워주신 부모님, 가르쳐주신 교수님과 선생님,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 모두 고맙습니다. 멘토링&강연 교육기부 봉사단 식구들과 연세대학교 학우들도 큰 힘이 됩니다. 문학을 포기할까 많은 힘이 들 때 격려해준 여자친구도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작품을 추천해주신 심사위원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훗날 울림이 있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윤종환 : 대한민국 인재상 대통령상 수상. 제12회 대한민국 청소년대상 미래인재대상. 제7회 서울특별시 청소년지도자 대상. 청소년 보호 및 육성 유공청소년 여성가족부장관상.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문헌정보학과 재학.




신인상

못의 방식

  
조갯살을 발라내니 
속껍데기 가장자리에 살기둥이 붙어있다
터파기 콘크리트 타설 없이 세운 견고한 기둥
그 신공법은 두 개의 기둥으로 세운 게르와 닮았다
조개는 접착제 없이 기둥을 세우고
여리디 여린 몸 통짜기와를 덮어 
조개 게르를 완성시켰다
바닷가 유목지대에 옹기종기 촌락을 형성하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처럼 
물렁한 못 하나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못은 박는 것이 아니라 붙이는 것
단단한 제 몸피로 입구를 압착하는 것
못 하나 붙이는 데 평생을 보낸 저 여자
남편을 여의고도 입 한 번 제대로 열지 않는
지천명의 나이테 온몸에 두르고
소가 쟁기를 끌듯 갯벌 등을 훑고 지나가면
어둠 속의 처소가 환해진다
밀물 들기 전 하루치의 일감을 수확하느라
여자는 빼문 혀를 닫을 줄 모른다 
그럴수록 기둥은 단단하게 여자의 몸에 박힌다
여자가 살아가는 물렁하고 쫀득한 못의 방식이다




쌀의 다비식


쪽방 독거노인 
부엌 가스레인지 위 
압력밥솥이 끓는다
솥이 신호를 보내지만 
쪽방엔 기척이 없다

가스불은 제 일에 열중이다

솥은 달아오르고
밥 타는 냄새가 난다
딸랑 딸랑 쌀의 죽음을 슬퍼하듯 
요령을 흔드는 솥

새까맣게 탄 밥솥 
혼이 빠져나가듯 연기가 
좁은 창문 틈을 비집고 나간다

소리도 사라진 밥솥 
홀로 다비식을 치르는 중이다 




알츠하이머 지대


1.저수지
건기에 수위가 낮아졌다
급히 수문을 닫자 수로를 따라 흐르던 물이 뚝, 딸꾹질을 한다
바닥으로 가라앉은 어류들, 부유하는 것들은 펄을 붙잡는다
저수지 늑골에 달라붙은 개구리밥, 부레옥잠, 수련 뿌리들 
미루나무 그림자만 길게 생각을 눕히고 있다 

2. 오래된 귀가
내비게이션이 오류를 통보한다
낯선 회색빛의 거리를 혼자 서성거린다
지도를 꺼내 경로를 추적해도 목적지는 사라졌다 
가득 채운 휘발유도 바닥이 나고 바퀴는 물렁해졌다
문득, 느껴지는 타인의 냄새 
엉키는 기억의 회로들
오래 타지를 떠도는 동안 고향은 지워지고 있었다

3.녹색 병동
사과나무에 노란 물고기가 열렸다
연못에서 빨간 사과를 딴다
간호사가 주문을 외자 의사가 옷을 벗는다
간호사는 옷을 껴입는다 한 벌 두 벌…그리고 열 벌의 옷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티브이를 본다
얼룩말이 횡단보도를 뛰어간다 




기린 밥상보


밥은 항상 식물성이었으며
반찬은 늘 우듬지에 머물러 있었다
저지대의 초원은 말라있었고
포식자들은 아킬레스건을 노렸다
순한 눈망울 장식적인 뿔의 위용
한 번 눈 깜빡일 때 마다 그릇이 비워졌다
머리가 발까지 닿는 시간은 하루
그사이 새끼가 태어났다
커지는 밥상 덧댄 자리가 조각나 있다
송곳니가 가렵다 육식이 배달된다

거북등처럼 갈라진 논에 물꼬를 튼다
논의 배후는 잡식성이다
휘청거리는 벼,태풍이 기린처럼 뛰어갔다
목이 긴 아버지가 추수를 한다
갈라진  발굽이 탈곡기를 돌린다
어머니,50번 조각을 오려붙인 밥상보를 편다




로또 복권


잔디밭을 걷는데 발가락이 따끔하다 내려다보니 개미가 나를 끌고 가려고 
용龍을 쓴다 날카로운 이빨도 무용지물이다 

혼자는 역부족이었던지 다른 개미들을 불러 모았다 개미 다섯 마리가 용을 쓴다 

주말마다  티브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마약성분의 페로몬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운다





소감

김종찬
 
풀이 전하는 말
  
풀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란다.
그들은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곤충과 새들이 대신 말을 전달한다.
희. 노. 애. 락의 말들을 쉼 없이 뱉어낸다.
그러나 무감각해진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시를 쓴다는 것, 시인이 된다는 것은 풀들이 애써 전달하려는 말들을
무릎 꿇고 간절히 받아 적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일 것이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노숙하는 풀, 달동네 독거노인 풀, 세상의 가장
여리고도 아름다운 풀들에게 귀 기울일 때가 온 것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도움을 주신 여러 은사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시를 쓰는 가장을 자랑스러워하는 가족 배미숙, 김민정 고맙습니다.
추천해주신 『리토피아』 장종권 선생님과 심사위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김종찬 : 경북 안동 출생. [전] 대우조선해양(주) 근무. 제32회 근로자문화예술제 “시” 금상. [어린이와 문학] “동시” 1회 추천. 제1회 [경남문학] 신춘문예 “동시” 가작 




심사평

사람의 ‘맛’을 품은 시, 따뜻한 휴머니즘의 명랑한 표출.
-김종찬, 윤종환의 작품들

시에 담을 수 있는 주제는 크게 구분하면 인간, 자연, 우주 외에는 없다. 다르게 말할 수도 있다. 인생, 환경, 세계일뿐이다 라고. 앞으로 가나 뒤로 가나 결국은 매 한가지다. 인생은 한 번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간인 마당에 자연과 우주도 인간의 눈에 비친 그것일 뿐이다. 결국 모든 시는 인간의 것이며, 인간적 삶 속에서, 인간적 삶의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 존재한다. 세계를 구획하거나 재편하려는 의지는 용감한 것이지만 꼭 아름다운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우주의 탄생과 죽음 또는 그 원리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원대한 것이지만 그 또한 꼭 아름답거나 필요불가결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세계와 우주, 아니 정확하게 이 지상에서 시적으로 산다. 또한 그렇게 모두가 죽을 것이다. 이 평등만이 진리이며, 모든 미학적 숨결의 근본이다.
애써 이 긴 사족을 붙인 것은 김종한, 윤종환 두 분의 작품들이 근래에 보기 드물게 사람의 ‘맛’ 아니, 사람살이의 ‘맛’과 ‘멋’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진솔하다는 것은 시적 의장(儀狀)에 경도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 단순히 소박하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두 분은 모두 매우 경쾌한 발상법으로 자칫 소재주의의 함정에 빠질뻔 한 남루(襤褸)를 즐겁게 빤짝이게 한다. 서정을 빙자한 음풍농월(吟風弄月)과 거리가 멀고, 현실비판을 조각조각 덧댄 험구(險口)가 아니라는 점은 이 두 시인의 앞날이 긴장의 연속일 것이며, 또한 그 긴장과 이완의 경로만큼 ‘맛/멋’있는 작품들이 양산될 수 있으리라 기대감을 품게 한다.
김종찬 시인은 제목 짓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못의 방식」, 「쌀의 다비식」, 「알츠하이머 지대」, 「기린 밥상보」 등 낯익은 두 어휘를 결합하여 새로운 느낌으로 돌아보게 하는 조합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제목과 내용과의 긴밀성 또한 깔끔하게 연결되고 있는데 「로또 복권」에 잘 드러난다. 제 몸의 수 만 배나 되는 시인을 끌고 가려 억세게 달려드는 개미 한 마리, 그의 페르몬에 홀린 몇 몇 동료 개미들의 사투를 내려 보면서 시인은 주말 저녁마다 이 땅에 퍼지는 또 다른 페르몬을 바로 연상한다. “불가능은 꿈꿀 가치가 없다”는 한 마디를 개미를 통해 유쾌한 한 장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못의 방식」에서는 “못은 박는 것이 아니라 붙이는 것/단단한 제 몸피로 입구를 압착하는 것/못 하나 붙이는 데 평생을 보낸 저 여자”라는 수월한 시적 명제를 획득하면서 바닷가 두 삶, 조개와 여인의 유비적 상관성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시인의 앞날이 기대되는 단적인 이유다.
윤종환 시인은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현실의 여러 모순적 사태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시적 기조로 삼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령, 「거미의 관찰일기」는 어느 수험생의 방에 들어와 천정에 잔뜩 줄을 늘이고 동거하고 있는 거미의 눈을 빌려 집 주인의 모습을 관찰하는 내용인데, 일종의 역발상(逆發想)의 수법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청춘식당」에서는 “그녀는 볶음밥을 접시에 눕히고/계란이불을 덮어주었다/그 위에 케첩 허리를 주무르고/m자를 반복해 휘갈겨도 되는데/기어코 그림을 그린다/노릇한 도화지에 웃는 토끼 얼굴/나를 꼭 닮지 않았냐며/숟가락 대기 힘든 작품을 만들었다/식탁인지 전시장인지 헷갈려/토끼처럼 눈만 껌뻑거렸다”는 한 장면을 특별한 시적 기교 없이, 자연스럽게 진술하면서 이 작품 전체가 자아내는 페이소스의 복선을 예비하는 능란함을 드러내고 있다. 
두 분 시인의 등장은 ‘자생적 담론으로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본 지의 취지를 더욱 내실 있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두 시인의 앞으로의 작품 활동 역시 주의 기울여 보아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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