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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미니서사/김혜정/영혼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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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4,224회 작성일 15-07-1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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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김혜정

 영혼 박물관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뭘 하고 지내는지도. 누나는 네가 집에 있을 때는 게임만 한다던데.”
  “누나 말은 어느 정도 맞아. 게임도 하니까. 하지만 그것보다는 주로 부검을 하고 있어.”
  “뭐? 시체를 부검한다고?”
  “부검은 맞는데 시체는 아냐.”
  “그럼 뭐야?”
  “영혼!”
  “영혼을 부검한다고?”
  “응. 죽은 자들의 영혼.”
  “그게 가능해?”
  “벌써 경험했는걸.”
  “어떻게 하는 건데?”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거야.”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봐. 좀 더 구체적으로.”
  “이를 테면, 꿈속으로 영혼을 불러들여. 그리고 대화를 하는 거지. 왜 그렇게 됐는지, 뭐가 잘못됐는지 묻고 위로도 해주고. 부둥켜안고 실컷 웃거나 울기도 해.”  
  “지금까지 누가 네 꿈속으로 들어왔는데?”
  “우리 할아버지랑 할머니. 두 분이 갑자기, 그것도 한 날 한 시에 돌아가셨잖아. 우리 가족은 엄청 충격 받았고. 근데 부검하면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두 분이 나누는 말씀을 들었어. 이제 그만 우리 소풍을 끝내고 쉬는 것이 어떻겠소? 전 당신 뜻을 따르겠어요.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고맙다고 그러시더라.”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조금 더 있다가 가시면 안 되겠냐고 했지. 그랬더니 꼭 가야한다고 하셨어.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지금이 그때라고 하셨어. 두 분은 그곳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소풍을 떠나실 거래.”
  나는 인태의 말이 마술사가 보자기에서 비둘기를 꺼내는 것처럼 허무맹랑한 말로 들렸다. 하지만 그건 다름 아닌, 이야기였다. 
  “이순신 장군도 만났어. 적의 탄환을 맞기 직전의 순간에 말야. 장수는 목숨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고 혼잣말을 하시더라고.”
  “그래서?”
  “그러는 게 어딨냐, 끝까지 나라를 지켜야 되는 거 아니냐, 고 내가 막 따졌지. 그랬더니 살아서만 나라를 지키는 것은 아니라네, 하셨어. 그래서 나도 그러시면 안 된다, 마음을 바꾸셔야 한다, 고 했지. 장군이 난 한번 결정한 것을 번복하지는 않는다네, 하시는 거야. 그때 난 장군이 갑옷을 입지 않으셨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갑옷을 안 입으신 거냐, 고 했더니 그냥 웃으시던걸.”
  “말 되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인태는 내가 농담으로 듣는 거라며 눈을 흘겼다. 나도 인태를 흉내 내어 눈을 흘겼다. 이번에는 인태가 좀 전의 나처럼 웃었다. 나는 인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계속해 봐.”
  “시들어서 죽은 꽃도 만났어. 알고 보니 주인집 부부가 하도 싸우는 게 꼴 보기 싫어서 스스로 말라죽은 거래. 부서진 의자는 또 어떻고. 백수인 주인이 하도 야동을 보기에 일부러 주저앉아버렸다나? 바다에 빠져 죽은 나비는 바다가 너무 좋아서 다이빙을 한 거였대. 바다가 그렇게 깊은 줄 모르고. 하지만 바다 속이 신비로워서 살맛이 난대. 새장 속에서 죽은 십자매도 만났는데 평생 갇혀 사느니 차라리 죽어 영혼이라도 자유롭고 싶어서…….”
  “그럼 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야?”
  “물론, 반대인 경우가 더 많지.”
  “인간이 무심코 밟아 죽인 꽃과 벌레, 분풀이용으로 부숴버린 의자, 인간에게 도살당한 돼지와 소, 비행기나 배에 탔다가 죽은 사람들의 영혼도 있어. 폭발사고로, 건물붕괴 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영혼도…….”
  사람은 물론 동물과 식물, 심지어 사물의 영혼까지 달래주는 일이 있다니. 나는 인태의 이야기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김혜정 : 여수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비디오가게 남자」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바람의 집』『수상한 이웃』장편소설『달의 문(門)』『독립명랑소녀』‘제15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 ‘송순문학상’ ‘2013 아르코창작원금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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