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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소시집/서규정/명랑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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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3,654회 작성일 15-07-10 11:00

본문

소시집

서규정

명랑 외4

 

 

이슬아 우리 내기 한번 해볼래, 멀리 그 멀리에서 불어오는 바람 맞듯

어디 미풍의 언덕 풀잎 위에서 만나 누구 몸이 무거운가

너는 찬연한 은빛 몸매 올려놓고

나는 눈물을 올려 구르고 굴러 풀잎들을 한번 흔들어 보자니까

어차피 멸치젓 냄새에 네 몸 절었을 테고

진실과 정의는 애써 외면해야 살아남는

이 사회가 너무 아파서, 비릿하기는 마찬가지라 해도

천공을 뚫고 날아오는 이슬이나

날마다 모공을 뚫고 나온 머리칼 흩날리며 사는 목숨이나

본토 본명은 되도록 쓰지 말고

연지곤지 찍어 바를 틈 없으니 그냥 방울과 방울로

서로 받아온 사명은, 사람은 결국 이슬로 가고

이슬은 맹렬하게 타오르는 것에 바탕을 둔다면

젖고 마름이 곧 한 몸

다시 바람이다, 풀잎 끝에 앉았다 일어섰다 누가 가벼울까

시시한 내기보담, 그저 먼 길 같이 털고 가는 우리를

맨 나중엔, 저 높은 풀씨들을 보아 그렇게 불러줄 것이니, 어허 둥가둥가

 

 

 

 

드디어 의자엔 앉을 것이 앉았다

 

 

반칙이야, 청춘은 나도 모르게 한발 앞서 갔으니 부지런히 따라 잡아야 겠다

 

인간이 만든 것 중에 젤 높은 것이 밥그릇, 그 다음이 부족을 다스리던 의자라는 사실을 깜빡 까먹고 치맥을 시켜 먹으며 왁자하게 떠들며 한 떼의 대학생들이 뒷발질로 차낸 의자가 불빛 속에 무참하게 뒹굴고 있다

 

총아는 올 것인가, 오곡백과 통통 여문 황금벌판을 부드러운 바람처럼 우리들의 미래를 이끌어갈 총아는 지금 어느 도서관에서 아이스크림을 횃불처럼 들고 근현대사를 뒤적거리고 있는지 몰라도

 

군부가 밀려난 의자엔 투사들이 앉고, 국가를 위하는 척 결국은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 진흙탕 개싸움을 마다않는 수구꼴통이나 진보 짝퉁의 끝은 왜 국회 아니면 청와대냐고

 

사람과 사랑, 시대 또한 맺히는 것이 있어야 보낼 수 있었다

 

몇 개의 정권이 바뀌고, 역사는 종이 한 장 집어 넘기다 페이지를 접어두고 마는 것이라 해도, 너 빨간색 좋아하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의자와 의자가 마주 앉아 줄줄이 빨갱이로 엮어볼 물고문을 하고 갸웃갸웃 진술을 하던 웃지 못 할 촌극들이 있었다, 물론 정권의 하수인과 운동권의 앞잡이로 나뉜 풍선대가리들이겠다만

 

풍선은 졸린 목이 풀리면 바로 죽는다

고문과 핍박이 무엇인가 모두가 분명하게 깨달았으니

 

이제 소통이 아니면 고통이라도 주셔야지, 불통에 불통 새마을운동보다 더욱 발전적인 숨쉬기 운동을 거국적으로 전개하시고 이내 목마를 타고 떠날 여왕의 무표정을 언제까지 기억해야 되나요

 

불통이 앞에 있어 우리는 분통을 터트리며 펄떡펄떡 살아 갈 수 있으므로 그까짓 청춘과 회억쯤이야 어디서 장승처럼 날 기다리고 있는지 몰라도, 은물결 금물결 출렁이는 밤 바닷가에 의자가 의자 위에 걸터앉아 끄덕끄덕 졸고 있는 것만 보아도, 나름대로 감사해요

 

 

 

 

, 두들겨라 연못

 

 

후드둑후드둑 지나가다 괜히 굵어지는 비

경기장에만 가면 먹구름은 왜 몸부림치듯 몰려다니는지

갑자기 생각나요, 시골구석을 온통 미모로 사로잡다

서울로 대학 가, 가짜 고시생과 살림 차렸다 들켜선

아이는 외국으로 입양시키고

첩첩산중에 들어가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다는, 해인스님

어두컴컴한 토굴 속에서 오늘도 무얼 용맹정진 하시나요

백년이 흘러도 상처 하나 없이 미끈한 것은, 시간과 바람뿐인 것을

환호작약, 여기를 좀 보세요

이 삼만 운집한 관중 앞에서 투수가 백 개 이상 던진 공보다

하나, 이번에 던질 공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데

높이 든 관중들 손목마다가 구장에 꽂힌 너덜너덜한 꽃다발이라면

통 목숨, 발끝에서 머리까지가 온통 목 줄기인 해바라기처럼

 

비는, 이 세상에 처음 박힌 못이 아닐까요

 

물에 떨어진 빗방울이 동그랗게 그려가는 파문

못대가리도 활짝 펴지면 저렇게 아름다워요

우리 못처럼 모여 연못에서 같이 살아요, 스님

비는 비린내를 풀풀 풍기고, 연꽃은 뜬구름의 기억을 살살 더듬듯

 

 

 

 

맨입

 

 

빈들에 축 쳐진 허수아비의 어깨까지가, 우리네 삶의

한 소절이라 하고, 꽃은 피고 새는 울고

빗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바위 굴러가던 소리가

두 소절이라면

눈보라는 바닥에 닿을 때까진 같은 방향이라도 몸 섞질 않듯이

하늘과 땅이 마주치는 소리

길과 길이 만나 장을 이루는 소리

우리가 우리를 부르던 소리, 어느 대목에서

노래는 탄생했을까, 음의 높낮이는 달라도 합창이라 하고

제 눈물이 제 발등을 다 태우더라도

나무처럼, 나무들은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뿌릴 흔드네

다만, 멀리 가는 가로수들은 열매 맺을 틈이 없어

해와 달을 열매처럼 따 던진다네

그대와 나

별똥별을 아작아작 씹으며 넘을 산, 빈 것들의 빈산이 가까이 있겠네

 

세 소절로 어서 가세, 헛헛한 가슴과 맨입이면 너무 충분한

 

 

 

 

어느 바다 깊은 골짜기에 대한 논쟁

 

 

한낮 꿈에 기림사 우물가에 불두화가 보이고

시간 밖에서 왔다

시간 밖으로 돌아가는 혼령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

왁자그르르 고물에선 혀 크기 경연대회가 열렸네

 

사공들 어깨에 턱하니 걸치고

훈계 몇 마디 섞어 귀뺨을 때리는

선장의 혀는 피곤할 뿐 볼품이 없고

 

어창에 혀를 곧추 세우고 풍향계처럼 팔 다리 쭉 펴고

공중부양을 하는 갑판장의 그게 좀 큰가 하면

 

말도 말게, 허리를 두 바퀴나 감고도 남아서 목 한 번 더 두른

살빛 머플러가 화장*의 그것이라네

 

돌아갈 곳 없는 공간에서 공간인 선탑 뒤창으로

가끔 불두화가 어리는 날엔

 

말도 말도나 마시게, 저 신참 미나라이* 것은

자갈치 쇠말뚝에다 끝을 묶어두고 동중국해까지 이어온 뱃길이

전부 다 혓바닥이라네

 

바다에선 그리움도 사랑도 다 길이로 잰다네

모두가 말이 없었네

 

*화장- 배에서 밥짓는 선원

*미나라이-견습선원

  

  

 


시작메모

눈과 시

 

 

옛날 부산에서 현대시 100주년 행사 때 축사를 하던 노시인의 말씀은 시인은 떠는

존재라 했다. 온갖 사물에 떨어야 하고 남의 집에 돈 빌리러 가 말도 못하고 문간

에서 떨어야 하고, 예쁜 여자 앞에서는 사시나무 떨듯 떨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 내

생각은 떨어야할 게 마땅치 않으면 술을 먹고 수전증처럼 손이라도 덜덜 떨어야 할

까 잠깐 생각했었다.

 

청소년기를 보낸 전라북도 김제는 눈이 내리면 온 들판이 빛 천지가 되었다. 온 세

상이 저렇게 깨끗했으면...미군트럭이 진창을 치고 지나가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고교졸업을 앞둔 내 유일한 취미는 예쁜 여학생을 뒤따라 다니는 것과 팝송을 듣는

것뿐이었는데 졸업을 앞두고 학교교지가 나왔는데

 

아카시아 나무 밑을 서성거리지 마라

실버들 아래로도 지나지 마라

밤새 부둥켜안고 돌다 집에 못갈 것 같다

 

시 한 편 전문은 기억나지 않지만 동창생 녀석이 쓴 것이었는데 내가 따라 다니던

여학생 실명을 써서 고백을 하는 용감무쌍함이 있었다. 여학교 전체가 난리가 났고

그 인기는 요즘 말로 짱이였다. 그래 하루는 그 친구를 불러 이마를 맞댄 채 눈에

쌍불을 켜고

 

니가 쓴 거 맞는가? 베낀 거 아니고! 다신 시 쓰지 마라 말을 던지고도 사실은 내

가 더 떨었던 기억이 50년이 다 되어 가도 지워지지 않는다.

 

    

서규정 - 전북 완주 출생, 김제에서 성장. 1991 경향신문신춘문예. 시집 그러니까 비는, 객지에서 먼저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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