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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신작시/홍신선/입춘 근방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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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홍신선
입춘 근방 외1편
곧추 선 품새로 보면 갈대는 영락없는 삼천척의 폭포다.
햇볕 속 바싹 여윈 정수리에서 발뒤꿈치께로
적막들이 굴러 떨어지는 반짝이는 폭포다.
이 갈밭에는 그런 폭포들이
길길이 굉음의 침묵들을 쏟아낸다.
그 폭포의 물길들은 어디서 시작되는지
바싹 마를수록 내부의 수십 길 마음에 얹힌 집착을
선뜻선뜻 내려놓는 소리
그만하면 됐다 그만하면 됐다
살그락살그락 광휘롭게 쏟아져 내리는 침묵의 굉음들.
그 소리들마저 이즘엔 잦아들고
그리곤 하나 둘 미련 없이 꺾인다.
꺾여 제 뿌리 근방 어디론가에도 갈대는 편안히 가 닿지 못하는데
도무지 아프지 않게 본색 그대로 꺾이고 떨어지는
내 마음의 폭포.
말문에 걸쇠 걸어둔 하늘은 영영 침묵이다.
그만하면 됐다고 말문 터질
늙은 설매화의 꽃싹들 아직은 덩달아 입 봉했는데
누군가 철수하면 누군가 또 새로 진주해오는 입춘 근방.
*삼천척; 이백의 시구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에서 가져옴.
동물의 왕국
어린 놈 담배 피지 말란 잔소리에 고딩이 벽돌 들어 단숨에 늙은 할멈의 뒤통수도 찍는
하루같이 공원 산책로에서 이다다드 아랄다드 뜻 없는 방언을 판 갈듯 엮어대는
성치 않은 정신의 중년 여자가 출몰하는
고무통에 살해한 시신 젓 담그고
왕따 친구에게 토사물 먹이고
몸에 끓는 물 들이붓고 패서 죽이는 놀이를
놀이로 즐겁게 노는
제 은밀한 신체부위를 포경선의 작살처럼 꼬나들고 돌진하는
골목길 바바리 맨도
내 몸 내가 벗었는데 뭐․․․․․․․․․․․․․ 당당히 히죽거리는
이런 어느 왕국,
인간이 동물로 급발진 하듯 튀어 들어가는
인간이 말법의 연옥에 놀이삼아 들어가는.
홍신선 - 196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서벽당집』, 『겨울섬』, 『우리이웃사람들』, 『다시 고향에서』, 『황사바람 속에서』, 『자화상을 위하여』, 『우연을 점 찍다』. 『삶의 옹이』, 연작시집 『마음경』 등 다수. 현대문학상, 불교문학상, 한국시협상, 김달진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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