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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신작시/손택수/종이유령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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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3,252회 작성일 15-07-10 11:12

본문

손택수

종이유령 외 1

 

 

방구석에 희미한 기척이 있다

아무도 없는데 무슨 소린가

억지로 말린 몸을 표 나지 않게 펴올리는 소리,

오싹하다

꽉 쥔 아귀힘에 힘없이 눌려있다 숨을 쉬는 소리,

버려진 저희끼리 내가 모를 말들이라도 주고받는가

꺽이고 접질린 관절들을 달그락거리며

깨어나는 소리,

며칠 째 처박아놓고 보지 않던 검은 비닐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같다

숨통을 꽉 틀어막아놓은 그 속에 무얼 담아놓았던가

언뜻 안주로 남은 횟감이 떠오르지만

나는 비닐봉지를 풀 용기가 없다

내장처럼 스스로 살아 꿈틀대는 속에서

부화한 벌레들이 쏟아져 나오면 어떡하나

죽은 말들이 저주하듯 방바닥을 기어다니면 어떡하나

밤마다 방구석이 불면으로 뒤척인다

무엇인가를 참을 수 없다는 듯,

틀어막은 입으로라도 쏟아내야할 말이 있다는 듯

구겨 쥔 손을 기억하며 부스럭거리는 밤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내던진 종이뭉치들 뿐이다

 

 

 

 

턱시계

 

 

시방 턱이 위험하다

째깍째깍 턱에서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아침에 깍은 수염이 벌써 까끌한 것은

퇴근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업무 시간 내내 참을성 있게 숨어있던 수염이

억누른 보도블록 위로 뛰쳐나온 흙모래들처럼

조금씩 제 본색을 드러내는 것은

퇴근시간이 한참을 지났기 때문이다

잘 간수하고 있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근육을 실룩이게 하고 눈언저리가 떨리고

터진 실핏줄이 눈동자를 중심으로 우글거린다

까끌하던 수염을 마치 기어가던 거미라도 집듯이 손톱으로 집을 수 있다면

자정이 지나도 한참을 지났다는 뜻이다

수염의 인내심은 거기까지다

그때부턴 시계 똑딱거리는 소리가 마치 시한폭탄

돌아가는 소리처럼 들린다

자신의 턱에 시한폭탄을 달고 살다니

영리한 사람들은 사무실 서랍에 전기면도기를 준비해놓고 다닌다

함부로 드러내는 야성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잔디깍기 기계처럼 수시로 단속한다

그래도 들려오는 소리 째깍째깍

턱시계 돌아가는 소리 따끔따끔

날카로운 초침들이 마구 밤을 찔러대는

턱은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손택수 - 1998한국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목련 전차,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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