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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신작시/최서진/종합영양제를 삼키는 법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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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진
종합영양제를 삼키는 법 외 1편
왼쪽 눈이 십 분 간격으로 떨린다
칼을 밟고 위험하게 서 있는 경련처럼
장래희망에 대해 말하려다 어쩐지 장래라는 낱말이 아득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처음부터 없었던 약속처럼
기차는 사라졌다
바람이 드나드는 창문을 열자
눈보라가 희망처럼 녹고 있다
새벽이 알람 소리에도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을 때
손을 없애고 아직 남아 있는 손으로
부서져 흐르는 구름의 회복을 위해 알약을 삼킨다
빛나는 것들의 원리란
손바닥에 참을성을 쥐고 있다
왼쪽 눈을 감고 혼자서 약국에 갔다
종합 영양제 같은 햇빛이 둥글게 입에 들어온다
약국에서 나오는 문을 잃어버린 채
눈이 열흘 동안 내리다 멈춘 날에는
모든 언어와 짐승의 발자국이 하얗게 사라졌다
이곳이 아니라는 듯
숲이 끝나는 곳까지 나는 와 있다
눈을 털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손처럼
폭설을 핑계로 드러누우면
당신의 손이 밤에 이른다
오후 세시에 폭설과 손목시계를 잃어버렸다
왼쪽으로만 가는 시간, 이를 악물고 지나왔던 계단
눈을 잃은 사람이
눈이 있는 사람을 안내한다
처음부터 눈이 필요 없던 박쥐처럼
오늘은 눈을 버리자
그런 문장으로
추위를 이기는 잠버릇을 터득하고
눈이 없던 선명한 시간을 그린다
눈을 보면 강아지는 뛰고 사람은 왜 사랑에 빠지는가
눈이 열흘 동안 내리다 멈춘 날에는
명백한 손을 그리고 싶다
최서진 - 2004년 《심상》으로 등단. 한양대 강사. 현재《발견》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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