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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신작시/김미령/애완망치와 외로운 병따개의 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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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2
댓글 0건 조회 3,682회 작성일 15-07-1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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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령

애완망치와 외로운 병따개의 밤 외 1

 

 

각자 물어뜯을 수 있는 슬리퍼는 갖고 태어난다

젖니가 자라나듯이 서랍 속에서

따고 싶은 밤바다의 모가지나

박고 싶은 전봇대의 차가운 이마 같은 게 생각날 때

 

볼품없는 부위를 숨긴 롱코트들이 거리를 지나간다

흉측한 앞니를 감추고

자두처럼 물렁해진 머리가 놓여있던 자리에

번져가는 얼룩으로

의욕이 남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가?”라고 쓴다

 

쓰린 속에 새벽 라디오의 찬송가만큼 높은 음을 담고 온종일 복통으로 뒹굴어라 윗집이 떨어뜨린 동전 또구르르 구르는 소리에 네 운명을 걸어라 평생토록 점성술을 익히고 오가는 발뒤꿈치에서 흐느낌을 읽어라 녹슨 성대는 손잡이에게 손잡이는 주인에게 주인은 증오에게 증오는 치욕에게 몸을 의탁한다

 

그림자를 눌려 터트린다

재롱을 잊어버릴 때쯤 손톱깎이가

입을 딱딱거리며 기어와 발언저리를 꾹꾹 물다 간다

장화 안을 들여다보며

거기 누가 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다

 

멍자국이 없는 밤

서랍마다 진물이 흘러내린다

 

 

 

 

교행

 

 

거리로 몰려나와 이를 쑤시며 크게 떠들며 벌게진 입술로 후희를 즐기는 우리는, 삐져나온 속옷처럼 부풀어오른 식빵처럼 우리의 피부를 우리의 목젖을 공중에 전달하는 우리는,

 

길이 좁아진다

신발장을 뒤에 매달고 의자를 뒤에 매달고

누구도 정면을 바라보지 않지만

아무도 어깨를 부딪히지 않는다

 

가로수를 뒤에 매달고 옥외간판을 등 뒤에 매달고

 

반짝이는 새 치아를 심고

흰 손목을 풍기며

공평무사한 봄날을 누릴 수 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교차로를 만나지 않는다면

지금의 보폭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사히 어긋날 것이다

돌아가서 죽은 듯 조용해질 것이다

 

머리 위로 나뭇잎들은 아무나 치근대고

서로의 웃음 사이로

서로의 가방 사이로 알 것 같은 안면이 살짝 빠져나간다

아찔한 기억 하나 희끗 웃으며 멀어진다

 

벌어진 하수구 위로

다리를 활짝 벌리고 걷는다

    

 

김미령 - 2005 서울신문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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