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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호/신작시/송미선/블루스를 추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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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선
블루스를 추자 외 1편
당신과 나 사이에 놓인 사다리의 검은 건반
한걸음 다가서면 늘어나고
바람의 머리끄덩이 끌고 와
블루스를 추자
연못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 걷어와
외면하고 돌아서는 파도소리 잡아와
사랑을 남발하는 내가 지겨워
당신은 빈 악보를 채우지 않지만
자전거를 타듯 블루스를 추자
주파수는 꿈과 잠멀미 사이에서 노래 부르고
녹여 놀아 뒤엉켜버린 하루살이처럼
내일을 지우고 블루스를 추자
당신은 간지러운 내 그림자
스텝도 버리고 리듬도 버리고
백치의 기억대로 하나 둘 하나 둘
잔디밭 이슬이 발바닥 간질이는 대로
블루스를 추자
칼
발목사이로 칼 가시오 칼 갈아요
휴대용 확성기가 비집고 들어온다
명함 속 빈 웃음이 길바닥에 나뒹구는 롯데리아 사거리
선거철이니까 하고 확성기를 봤지만
뻔뻔한 얼굴이 아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담담한
어느 골목에서나 마주쳐도 좋을
스쳐지나가 곧 잊어버려도 되는 표정을 하고 있는
벽 대신 벼랑으로 밀어붙이는 칼날
스친 자리마다 꽃술이 맺히고
한 발은 횡단보도에 걸치고 있다
칼 갑니다 칼, 칼 가시오
쏟아지는 말이 건널목에 들어선다
칼 가요 칼 갈아요 칼
사람들이 확성기 꼬리에 매달린다
칼날을 쓸어 보지만
칼집은 입을 열지 않는다
더 잃어버리기 위해 호주머니를 뒤지는 사람들
신호등에 대한 예의를 버리고
집을 뛰쳐나온 칼이 확성기 입속으로 뛰어든다
발끝에 차이는 칼날
사람들 뒤꿈치를 쓰윽, 날을 죽인다
송미선 - 2011년 《시와사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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