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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책 크리틱/김영덕/어느 젊은 구도자의 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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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 구도자의 연서(戀書)- 정미소 시집 <구상나무 광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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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인생의 비평이자 시대의 서사(敍事)다. 시간의 모래밭에 희미하게 남겨진 발자국이다. 로제타스톤이다. 시인은 심산유곡에서 좌선 끝내고 방금 하산한 선승이다. 삶에서 튕겨져 나온 상념의 퍼즐을 맞추며 직관적 깨달음을 얻는 구도자(求道者)다. 시인은 이 행성의 상공을 맹금처럼 선회하며 낮과 밤, 한순간도 쉬지 않고 조감하는 파수꾼이기도 하다. 시는 시인이 온몸으로 치열하게 그리는 그림이다. 몸짓이다. 목 놓아 부르는 간절한 사랑 노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인생극장의 외로운 아웃라이어다. 정미소 시인의 사부곡(思父曲)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근작 영화 ‘인터스텔라’를 관통하는 아버지와 딸의 사랑과 신뢰, 유대감만큼 집요하다. 폐허로 변해가는 지구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인류라는 더 큰 가족을 위해 대체 행성을 찾아 우주로 떠난 후, 시간의 굴곡 때문에 더 이상 지구의 가족들과 동일한 시간대를 살지 못하는 아버지 쿠퍼는 우주에서 지구에 있는 가족들의 성숙, 소멸해가는 모습이 녹화된 화상 영상을 젖은 눈으로 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다. 그 영상을 보면서 노정되는 딸에 대한 아버지 쿠퍼의 애틋한 부성애와 딸인 머피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정미소 시인의 시 ‘검은 눈물’과 일맥상통한다. 이 시의 화자는 춘삼월 ‘꽃피는 세상에 나를 던져두고/봄 눈 속에 묻’힌 ‘마흔다섯 살의 키 작은 아버지’의 ‘젖은 음성이 사철 눈발로 날아든다’고 했다. ‘북쪽하늘에서’ 날아드는 그 눈발은 ‘내 푸른 봄날을 함박 적’셨던 바로 그 ‘3월의 함박눈’이다. 우주공간의 아버지와 지상의 딸은 그 눈발을 통하여 끊임없이 소통한다. 사랑의 본질은 인간이 우주의 변방, 그 어느 얼음 행성에 홀로 남겨지더라도 결코 포기되거나 소멸될 수 없는 것이라고 정미소 시인은 단언한다. 설령 그 행성의 한 시간이 지구 시간의 7년에 해당되더라도, 영화에서처럼.
3월에 눈이 내린다
때아닌 폭설이다눈 속에서 나는아버지의 부음소식을 날리는 눈처럼 들었다지하막장매몰된 광부들의 삶이 막장으로 덮여아아, 마흔다섯 살의 키 작은 아버지꽃피는 세상에 나를 던져두고봄 눈 속에 묻혔다3월의 함박눈이 내 푸른 봄날을 함박 적셔탄광처럼 검은 눈물이 발등으로 흘렀다북쪽하늘에서 아버지의 젖은 음성이사철 눈발로 날아 든다. <검은 눈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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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소 시인의 첫 시집 <구상나무 광배>를 읽는 독자는 어느새 시인의 달콤한 내레이션과 보드라운 손에 이끌려 지구라는 이 아름다운 행성의 낯선 시간과 장소들을 나비처럼 이동하며 유쾌한 여행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마침 ‘인터스텔라’ 영화 속 블랙홀과 화이트홀 사이의 ‘벌레 먹은 구멍 (wormhole)을 통한 시간여행까지 가능하여 시간과 공간은 이제 더 이상 넘지 못할 장애물이 아니다. 먼저 <화석발자국>과 <박물관 남자>를 통해 알몸에 찍개를 들고 막 사냥에 나서는 이 땅의 구석기시대 털북숭이 사내와 모닥불가에 앉아 지상의 안부를 화제로 송화주를 마시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백제유물관>에 들러서는 사비성의 수라간에서 ‘아가리 함부로 놀리다가 혼쭐이’ 난 ‘말할 때마다 입이 비뚤어지는 부여댁’과 임금님 수청 들다 요절난 ‘피부가 뽀얀 태자궁 나인’, ’잘난 체하다가 그만‘ 봉변을 당한 ’목선이 고운 공주댁‘ 등 여자 셋의 수다를 들으며 ‘삶이 지옥 같다지만/그 삶도 찰나’라는 깨달음을 얻고 <자비정사 가는 길>에 따라나서 ’무너질 듯 버티는 저 생의 단단한 밑거름 앞에서/힘없는 솔방울을 금강경 법문으로 읽‘어보기도 한다. 조선시대로 훌쩍 넘어와서는 <황진이 담쟁이>에서 ‘언뜻 드러나는 흰 돌담이 벽계수의 도포자락인양, 넝쿨손으로 내달리며 숨뜨기를’하는 황진이와 함께 그 알량한 남성중심(male-dominated) 사회에 돌직구를 던진다. 조광조의 제자 양삼보가 축조한 <소쇄원>에서는 ‘사십팔영 현판 속에서/사림의 선비들이 학처럼/대청마루로 내려앉아서는/격물치지를 놓고 갑론을박 하’는 말석에서 고개를 주억거려 볼 수도 있다. 저 광활한 유라시아대륙을 가로질러 독일의 <슬로스 광장 뮌스터 성 앞에서> 백남준의 작품 ‘21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를 앞에 두고 21세기의 묵시록을 보며 모차르트의 장송곡을 환청으로 듣고, 이탈리아 친퀘테레의 마나롤라 해변마을 절벽에 매달린 <사랑의 자물통>에서 오히려 이루지 못한 사랑을 본다. 19세기 유럽의 문화대국 프랑스 파리 센 강에서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그 나른하고 무료한 오후 4시의 파리지앵 일상에 동참해보고, 한민족의 로망인 북방 아무르강 <일몰의 잔물결>에 온몸을 적셔본다. 아프리카 남부의 <칼라하리사막>에서는 알에서 깨어난 붉은바다거북이를 통하여 ‘삶은 스스로 전진하는 힘’이라는 사실에 격하게 공감한다. 저 멀리 북미대륙의 남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에서는 <사랑놀래기>의 ‘절대절명의 사랑’을 목격하고, 세이브더칠드런에 사는 아기가 쓸 모자를 만들면서 남미 안데스목장의 털북숭이 알파카를 품에 안는다. 스페인 <라만차 정원의 이별>에서는 ‘세비아의 들판이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허풍쟁이 돈키호테 같은 여자라는 말’에 헛웃음이 나온다. 다시 ‘지금 여기’로 돌아와서는 <오월의 순천만>에서 ‘천둥벌거숭이 어린것에게 물때를 알아차리는 법을 가르치’는 ‘서른의 어머니’를 만나고, 한계령 중턱에서는 ‘<제무시 트럭>의 보닛을 열어 소에게 물을 주’는 아버지를 만난다. <우도에서>는 ‘돌칸이 밭에 노랗게 핀 유채를 본다’. 양평군 <지평리의 봄>에 ‘떡방앗간에서 방금 쪄낸 팥시루떡’ 같은 논배미 아지랑이를 보고 <천문동 계단>에서 ‘소낙비 오던 날 너의 우산 속에서/오월의 신부가 되는 꿈’을 다시 꾸어본다. <경포식당>주전자에서 나는 ‘비둘기호 기차소리’도 들어보고 <DMZ> 꽁꽁 얼은 장단습지에서 어울려 갈라쑈를 펼치는 대한너머 입춘의 새들을 본다. 질펀한 이미지들의 향연이다.
3 너 없음이 나에게 가져다준 자유는 이만큼이다 집에 두고 온 휴대폰을 가지러 차를 돌리지 않는다 친구와 한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마음 놓고 회식한다 2차, 3차까지 간다 맘 놓고 24시 엔젤리너스 커피점에서 인터넷을 한다 훌쩍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떠난다 홍대앞 락 클럽에서 놀다가 다음날 아침 바게트 빵이 구워지는 시간에 귀가한다 생각해보니 끔찍하다 널 만났던 그때 내가 잠시 돌았던 거다 종일 리모콘으로 영화채널을 돌리다가 창밖을 본다 너 없음이 가져다 준 자유, 이 자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그런데, 내가 언제 이런 자유 원했었니? <자유를 위란 변명> 전문 이 시에서 화자는 ‘너’로부터의 자유를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마는 우리들의 비루한 삶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달콤하든, 육모초를 씹는 것만큼 고통스럽든 삶의 구속은 실재한다. 사실 ‘너’가 있음으로 해서 집에 두고 온 휴대폰을 가지러 차를 돌리고, 때로는 친구와의 약속을 기꺼이 어기고, 마음 놓고 회식도 할 수 없다. 2차, 3차는 언감생심이다. 24시간 오픈하는 커피숍에서 인터넷을 할 때도 마음 졸이며, 지구 반대편으로 훌쩍 여행을 결행하지도 못한다. 외박은 금기다, 꿈도 못꾼다. 결국 종일 집에서 리모콘으로 영화채널만 돌리다 창밖을 보는 신세다. 네가 있음으로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화자는 너 없음이 가져다 준 자유, 이 자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노래하다가 느닷없이 마지막 연에서 ‘그런데, 내가 언제 이런 자유 원했었니?’라고 엉뚱하게 반문을 한다. 인질이 법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현상인 이른바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의 전형적 증상을 서술하고 있다. 정미소 시인은 이 시를 통하여 가족, 결혼제도라는 이름의 애증관계와 굴레를 매우 섬세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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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날 아침 덕유산에 올랐다’햇빛의 집‘ 가족들과 함께 올랐다정상에 다다르자 함박눈이 쏟아졌다눈 속에머리도 팔도 없는 구상나무 고사목이 보였다천년을 살며수액이 다 빠져나간 빈 가슴 속으로함박눈이 들어차고 다시 비워주고는 했다가지마다 반짝이는 가시잎들이고드름을 달고 있었다요셉이가쓰고 있던 털모자를 벗어 구상나무 우듬지에씌워주었다시몬이 목도리를 벗어 구상나무의 목에둘러주었다함박눈이 펑 펑 쏟아지는 덕유산 정상에서우리 모두 박수를 쳐 주었다누군가 나지막이 크리스마스 캐롤을 불렀다모두 따라 불렀다그때 나는 구상나무의 우듬지에서반짝 빛나는 광배를 본 것 같았다. <구상나무 광배> 전문 정미소 시인은 이 시를 통하여 그녀 삶의 일부가 된 신앙 이야기를 매우 소박하고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Christ)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인류 구원이라는 임무(mission)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난 날이다.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의 가장 낮은 곳에 온 그의 생일이다. 이 시의 화자는 마지막 행에서 ’구상나무의 우듬지에서/반짝 빛나는 광배(halo)를 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여기서 광배는 부처님이나 하느님 등 초인적인 존재에 나타나는 후광일 수도 있고, 가톨릭 ’주기도문‘ 중 ’그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Hallowed Be Thy Name)’에서처럼 단지 빛을 서술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진실의 순간은 크리스마스날 함박눈이 쏟아지는 추운 덕유산 정상, 고드름 달고 있는 가장 보잘 것 없는 구상나무 고사목에 스스로 가진 것 별로 없는 ’햇빛의 집‘ 보육원 아이들인 요셉이와 시몬이 자신들의 털모자와 목도리를 벗어서 씌워줌으로써 불현 듯 찾아왔다. 그 감동의 순간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에서 온 것이리라. 이 시를 통하여 정미소 시인은 자신의 체험을 시로 전환하는 범상치 않은 능력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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