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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신작시/유희경/겨울 직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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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유희경
겨울 직전
닿지 못해 잇지 못하는 것들을 잊지 못하는 겨울의 직전, 마른 옷을 펴는 여자가 있고 소파에 앉아 손금을 살피는 남자가 있고 열린 창문으론 어두워지지 않는 빛들이 비껴 들이친다 내내 찾아가고 찾아오다가 느려지는 감정이 있어서 마른 옷은 도무지 펴지지 않고 손금은 고정되지 않은 채 흘러, 몸이 다 젖었다 열린 창문은 닫히지 않고 겨울 직전이라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지도 모르지 비로소, 떨어지려는 소리가 들리고 그런 소리는 사람을 침착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나는 공중에 떠도는 상념을 아직 포기하지 않는다 겨울, 어느 순간과 같이,
*
여자는 나란히 놓은 돌멩이처럼 슬픈지도 아픈지도 모르고 남겨진 이야기를 듣는다 바람이 걸어놓은 것은 힘겹게 흔들리고 흔들리다가 그대로 말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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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한쪽 눈은 붉다 어김없이, 고이는 것은 흐르는 것이 정의한다 남자는, 원망할 것이 남아 있질 않아 원망하고 있는 중이다 살아보지 못한 평생이 덮쳐 남자는, 파도를 키우는 섬이 되었다 참지 힘든 숨이, 비껴선 절벽에 매달린다
***
해는 모든 창문으로 들어선다 애써 고개를 내밀고 사랑의 위치를 찾아보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의 온도가 점점 낮아진다 밤이 오고 겨울이 될 것이다 아무도 막지 못한다
얼굴
얼굴은 눈물로 가득 차 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리는 것들을 한동안 바라본다 투명했으므로 만지고 싶었다 어떤 이유가 슬펐을까
세상엔 너무 많은 불공평들이 있고 그것들 역시 투명하다 남은 빛은 形과 色을 벗어두고 우주로 날아간다 돌아오지 않는다
한 사람을 생각하는 방식은 얼굴을 가득 채운 눈물과는 무관하다 그 사람은 남아 있는 빛의 主人이므로, 얼굴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아니하였다
*유희경 :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2008년 조선일보에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오늘 아침 단어』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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