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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신작시/오석륜/7월의 갈대밭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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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오석륜
7월의 갈대밭
긴 가뭄에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던 갈대들이었다.
이미 메말라 버린 갈대밭에
그들 영혼의 발자국들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줄도 모르고
단비가 흠뻑 내렸지만
갈대들의 울음은
내린 비에게 슬픔이라도 호소하듯
더욱 더 커져만 갔고
강물은
그런 갈대들의 울음이
더 이상 번지지 않게 하려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갈대밭으로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왕의 노래
-아관파천(俄館播遷)의 새벽
나는 언제쯤 왕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언제쯤 먼저 간 당신의 영혼을 편히 쉬게 할 수 있을까
이 나라를 초라한 눈빛으로 살피던 별들도 사라진 새벽
며칠 전부터 눈을 붙이지 못한 채 날개만 퍼덕이는 불길한 상상들을
눈발은 알고 있었던 것일까
어지러이 날린다
자신의 파편들을 털어내는 것 같은 현기증으로 가득하다
잃어버린 별빛을 그리워하며 허공에서 표류하는 바람도
한 치 앞을 뛰어다니지 못하고
격하게 헛바퀴 굴리는 소리만 내는 것이
하늘을 향한 불만을 혼잣말로 풀어놓는 것 같기도 하다
이미 어둠은 긴 혀를 내밀어
아침에 어울리는 하늘의 빛깔을 삼켜 버렸다
이제 곧 저 정적의 뿌리들이
이 땅 여기저기에 터를 잡을 것 같은 조짐들로
뜰에 심어진 꽃들의 개화는 아득하기만 하고
몇 해 전부터 나를 찾고 있는
낯선 외국어 몇 개도 금방이라도 대문을 활짝 열고
감옥 같은 이곳으로 몰려올 것만 같은데
과연 저 외국어들은 사랑하는 여인 하나도 지켜내지 못한 나를
어떻게 번역해낼까 백척간두 같은 이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예측하고 있을까
눈발은 여전히 내가 돌아가서 안착해야 할
왕궁의 길마저 감출 것만 같은데
*오석륜 : 2009년 『문학나무』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인이며 번역문학가. 문학박사(일본문학(시) 전공). 시집 『2010 젊은 시』(공저). 학술서 『미디어 문화와 상호 이미지 형성』(일본어판) 외에 『일본 하이쿠 선집』『풀 베개』등 20여권의 저서와 역서 출간. 현재 인덕대학교 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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