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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신작시/권민경/라늄의 첫 번째 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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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157회 작성일 15-07-09 15:22

본문

신작시
권민경

라듐의 첫 번째 밤


그분이 말씀하셨어요
충분히 싸웠으니 이제 친해지렴
방사선 원자력 병원 체르노빌의 아이들
백혈병으로 죽은 부인의
오랜 두통과 구역질
어린 나를 메스껍게 만들던  

어깨에 불주사 자국처럼
마음에 볼록한 예방주사 자국
고통에 전염됐던 밤들 감사해요
친근한 동위원소 이젠 평온해요

납으로 된 방에서 홀로 보낸 밤
토하느라 바빴고
퇴원하던 날 아침에 틀어놨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조금 기억날 것도 같지만

늘 지니고 있던 예감과 여전히 많은 밤
가끔 그리워지는
죽은 사람들 이름

붓에 침을 발라 라듐을 칠하는 여공
치명적으로 빛나는 야광 시계와 
촌스럽게 연필에 침을 묻히는 나
독이 묻은 줄 알면서 모르면서
발광하는 글자로

살아있는 이름 적어 봐요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빛을 조금은
아니까
발견되기 직전
어두운 방 혼자 빛나던 라듐의 마음을
조금은 




트라우마와 지구의 끝 - 달콤한 최후에 대한 명상


그대여
두 마리 아시아코끼리 사이에서 만나요 주름진 다리 사이에서 티타임을 가져요 대기는 습하고 유성은 늘 위협적 단단한 가죽 밑에서도 황혼을 피할 순 없지만 마지막 쉘터에서 쿠키를 씹어요 남쪽으로 떨어지는 포탄 동쪽으로 불똥이 튀고 침엽수림 너머 솟구치는 소용돌이 네이팜탄은 종려나무 기름으로 만들고 물로도 끄지 못해요 펄펄 끓는 차를 음미해요 향기롭게
우리의 코는 서로를 휘감고 쓸데없는 것들을 기록해요 화상자국 대중교통공포증 코끼리를 탈 수 없는 죄책감 우두둑 뼈 꺾는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헬리콥터 초등학교 때 만났던 헬리콥터니?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먼지 쓸데없는 반가움 솟아오르는 것 단단한 기둥에게 말 거는 멍청한 짓을 되풀이하며 코끼리에게 말을 걸어요 30년 후에 다시 만날 수 있어요? 우리가 사라져도 시간은 흘러요? 너무 튼튼하고 너무 우거진 것들에게 존댓말 하며 노을 지는 먼 휴양지에 아름다운 종려나무들이시여 아파트 아파트여 가까운 늪지의 징그러운 맹그로브님이시여 풍경과 쓸모없어진 감정들 사이에 코끼리 두 마리 아시아와 아시아 사이에서 우리 만나요 불길이 우 달려오고 불붙은 식물들이 우릴 휘감고 모두 한 덩이로 타오를 때 굳건히 솟아오를 때 그대와 내가, 코끼리가, 남쪽과 아시아와 이 지구가 코코넛 냄새를 내며 구워져요.


*권민경 : 1982년 서울 출생.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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