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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신작시/최상임/선유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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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최상임
선유도
가을꽃이 피기 시작하는 그 즈음
선유도에 가자
한여름 인파가 버리고 간 바다엔
고요가 찰방찰방 제 몸을 헹구고 살점 몇 개
뚝뚝 떼어 바다의 들숨날숨을 고루 먹이고 있다
그리움도 지치고 기다림도 지쳐
세상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그 즈음
선유도에 가자
물 빠진 해변은 섬을 더 멀리 고립시키려
등 뒤에 길을 감추고 괜찮다 괜찮다 한다
물때를 기다려 엉킨 그물을 푸는 무표정한 손놀림이
지나는 바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물때를 기다려 바다로 나가는 묵묵한 발자국은
석양과 눈 맞추며 길게길게 이어간다
신선이 살고 있음직한 터를 찾던 걸음이 지칠 때 쯤
명사십리 바다에서 대장봉 사이로 지는 해는
붉은 봉인이 풀린 둥그런 쪽문 하나 부시게 열어
신선을 빼돌리고 시치미를 뗀다
하룻밤 새우잠을 자고
허기를 채우려 바지락칼국수 한 그릇 불러 앉으면
이제 곧 물길 열리고 배 들어온다고
아리랑 한 자락에 사랑가 한 대목을 이별가로 부르며
등 떠미는 어떤 여인이 사는 거기
선유도에 가자
그러다 보면
가을 소나기 그친 저녁 무렵
햇살 한줄기 반짝 비친 마당 귀퉁이로
추락하듯 날아 내린 직박구리 한 마리
사마귀를 낚아채다 놓쳤다
혼비백산한 사마귀 재빨리 앞발을 치켜들고
한걸음 물러서며 자세를 가다듬어 보지만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빠르게 싸움은 끝나고
직박구리는 사마귀를 물고 저녁 속으로 사라졌다
조문객처럼 흰구름 몇 개 둥둥 떠 있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던 거미줄
푸른 공허를 흔들고 있을 뿐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한 생의 애착
그도 알아, 이길 수 없었다는걸
그래도 그렇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고
마지막 숨이 끝날 때까지 되뇌었을 걸
혹시 알아?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몸을 숨기고 훔쳐보던 풀벌레들
일제히 제 목소리로 요란하게 울어 댄다
*최상임 : 충북 제천 출생. 2011년 시와 경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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