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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신작시/이현/어떤 주검 앞에서∙1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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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현
어떤 주검 앞에서 외 1편
활어는 지느러미를 단 채 잠시 후의 죽음 앞에서
주둥이를 뻐끔거린다
수족관 사내는 입에 문 담배를 빼 그 주둥이에 물린다
뻐끔뻐끔
입에서 거품처럼 연기가 인다
환히 보이는, 제 살점 집어가는 젓가락들의 움직임 앞에서
그는 어떤 꿈을 볼까
뇌가 죽지 않은
그의 마비된 지느러미가 마지막으로 힘차게 꿈틀거린다
아무리 악을 써도
담배연기에 환히 열린 눈자위만 따가울 뿐
눈물이 없는 활어는 울 수가 없다
식사라는 것
산다는 것
그것은 생명을 집어먹는 것
식사를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우리에게
저 보이지 않는 그의 눈물은
이제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
요양병동에서
그녀의 꼬리는 뎅겅 잘려버렸다
그녀는 병실에 갇힌 한 마리 암코양이다
평생 외줄을 타며 모든 것을 탕진한
그녀에게 남은 꼬리는 마지막 삶의 중심이었다
아무도 없이 이리저리 휘청대며 팔을 휘저으면
구경꾼들은 그녀가 춤을 춘다했다
위 아래로 아슬아슬 줄을 타며
가까스로 몸의 중심을 잡으면
그녀의 생이 허공에서 출렁거렸다
그러던 그녀의 꼬리가 뎅겅 잘려나갔다
그녀의 최후가 무너져 내렸다
잘린 꼬리로는 온전한 춤을 출 수 없는 법,
사방이 흰 벽인 철제침대에 누워
그녀는 오늘도 속삭인다
- 내 꼬리, 다시 붙여줘!
그런데도 아무도 그 꼬리를 본 적 없다고
설레발을 친다
오늘도 그녀는 꼬리를 찾고 있다
붉게 충혈 된 눈으로 거울을 찾아 헤매는
그녀의 몸짓이
여전히 허공에서 아슬아슬 줄을 타고 있다
*이현 : 1976년 대구 출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졸업. 2013년 《시와소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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