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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신작시/권순/코드아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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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권순
코드아담*
사라진 아이들이 벽보 안에서 웃고 있다.
진작 출입문을 봉쇄했어야 하는데,
아담을 잃고 아담을 찾는다.
그들은 미처 슬픔을 배우지 못했는지 웃고만 있다.
우리는 길을 잃고 우는 아이를 지나쳐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 바쁘니까.
75년 10월 다섯 살 엄기숙, 발등에 화상 흉터 눈이 큼 이마가 넓음. 왼쪽 발바닥 밑에 점. 파란 고무신. 미도파백화점. 82년 3월. 세 살. 이은호, 오른쪽 귀 뒤 큰 점. 동그란 얼굴. 눈썹 진함. 검정고무신. 제천역. 79년 5월. 이재식, 세 살. 엄지손톱 빠짐. 눈 큰 편. 인중 짧음. 만석부두.
실종은 왜 언제나 벽보 안에서 사실화 되는가.
누군가의 손을 놓친 그 순간은 왜 항상 희미한 걸까.
길을 잃고 헤매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도록
세상은 그 순간에 관심이 없다.
그저 전속력으로 질주할 뿐.
아이들은 언제나 지하철 출입문 옆에 붙어 있고,
어느 공기업은 그들 덕분에 사회공헌을 하고,
그들은 웃고 있는 건 당연한 사실이 된다.
벽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가
엄마 손을 꼭 잡고 출입문으로 다가선다.
문이 열린다.
*코드아담 : 미국의 실종아동 수색프로그램. 1981년 방송인이었던 존 월시의 아들 아담 월시가 백화점에서 실종 후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을 계기로, 미아 발생신고가 접수되면 즉각 경보를 발령하고 출입구를 봉쇄해 집중적으로 수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사과
사과를 깎는데 구름이 몰려온다.
약속도 없던 그를 만나고 시내버스는 경적을 울린다.
막다른 골목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아기를 몰래 버린 철부지 엄마가 운다.
사과꼭지 같은 아기의 숨골이 할딱인다.
사과를 깎는데 구름이 흩어진다.
불멸의 붉은 색이 깎여 내린다.
궁극으로 가는 흰 속살, 거기 사과의 시간이 흐른다.
사과를 돌려 깎는다.
지구본을 돌린다.
손끝에 쏟아져 내리던 풋풋한 별들,
사과에는 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사과를 먹는데 바람이 분다.
커튼 뒤에서 잘게 쪼개진 빛이 들어온다.
빛은 망사천을 통과해 사과에게로 온다.
쟁반 위에 사과가 빛난다.
사과의 시간이 붉게 타오른다.
나무 위의 사과를 식탁으로 옮겨놓은 한 남자가
사과처럼 움직이지 말라고 고함을 친다.
그는 사실적인 사과에 대해 말하려는 걸까.
사과를 먹는데 어둠이 내린다.
약속도 없던 그가 찾아오고,
철부지 여자애들이 담장 아래 모여 수근거린다.
해죽해죽 웃는다 별을 시간을 헤아리듯
사실적인 웃음이다.
사과는 지금 나와 허공 사이에 놓여 있다.
사실적인 사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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