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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집중조명/안상학/몽골편지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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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430회 작성일 15-07-09 14:08

본문

집중조명
안상학

몽골 편지


독수리가 살 수 있는 곳에 독수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나도 내가 살 수 있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자작나무가 자꾸만 자작나무다워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나도 내가 자꾸만 나다워지는 곳에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내 마음이 자꾸 좋아지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자꾸만 좋아지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자꾸만 당신다워지는 시간이 자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런 당신을 나는 아무렇지도 아니하게 사랑하고

나도 자꾸만 나다워지는 시간이 자라는 곳에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나를 당신이 아무렇지도 아니하게 사랑하는

내 마음이 자꾸 좋아지는 당신에게 나를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도 자꾸만 마음이 좋아지는 나에게 살게 하고 싶었습니다

 


한로


지난여름 늦은 생일 선물
그대가 꺾꽂이 해준 로즈마리 곁에 앉아
오래 전 떠난 내 누이와
얼마 전 멀리 간 그대 여동생 그려보네
그대 집에 남은 로즈마리
물병에 담겨 내 집으로 온 로즈마리
내 누이 그대 여동생 
누군가 세상 밖으로 꺾꽂이해 간 거라 생각하네
그대나 나나 가지 몇 개 내어주고 남은 거라 생각하네 

찬이슬 내려와 땅속으로 스며드는 날
햇살 바른 계단에 나가 로즈마리 화분과 나란히 
옹송그리고 앉아 해바라기 하네
하면서 그대 집에 남은 로즈마리 아문 상처와
여기 로즈마리 상처에서 새로 내린 뿌리를 생각하네
우리도 저기 간다면 그럴 거라 생각하네
누군가 또 여기 남는다면 이럴 거라 생각하네




정선행


옛사랑 보고 싶을 땐 정선 가야지
골지천 아우라지 뗏목을 타고 흔들리면서라도 가야지
여량 지나 오대천 만나는 나전 어디쯤 
하룻밤 발고랑내 나는 민박집에 들러
아우라지막걸리 한 동이 끌어안고 쉬어서도 가야지

옛사랑 보고 싶을 땐 정선 가야지
나귀가 없다면 나뭇잎 배라도 타고 가야지
나즉나즉 조양강처럼 정선 가야지
읍내 어디 버들가지에 배를 묶고 놀다가도 가야지
옛사랑 못 찾으면 꼭뒤라도 닮은 주모가 내주는
곤드레밥은 물려놓고 강냉이막걸리 한 동이와 놀다가야지

삼십년 전 어디에서 길을 놓친 
옛사랑 찾아 정선 가야지
정선행 기차처럼 달그락달그락 찾아가야지
그 어느 골목길에서 아직 솜사탕 들고 울고 있을까
기차역 어디 노란 풍선 들고 여태 발 동동 굴리고 있을까

옛사랑 보고 싶을 땐 정선 가야지
여량 어디 골지천 만나면 물어나 봐야지 
어떻게 흘러가면 송천도 만나고 오대천도 만나는지
나는 왜 흘러가면서 자꾸만 사랑과 헤어지는지
정선 숨어드는 아우라지강에게 물어나 봐야지  
정선 떠나는 아우라지강에게 물어나 봐야지 






사직하고 며칠 



마음으로 모시는 스승에게
사직을 했노라고 메일을 드렸더니
빈한한 것은 시인의 훈장이라는 답장을 보내주셨다 

어느 날 술자리에 나아가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를 읊었더니
시인이 무슨 높이를 가지냐는 핀잔을 들었다
말은 못하고 속으로 나는 
가난하고는 초생달과 프랑시스 쨈이 짝을 이루고
외롭고는 바구지꽃과 도연명이 한 자리고
높고는 짝새와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나란한데
쓸쓸하니와 마주하는 것은 왜 당나귀밖에 없는지를 생각하며
빈자리에 백석을 앉혀보기도 하고 
허물없는 벗들의 소매를 당겨보기도 하였는데 
차마 나를 넣기는 쑥스러워 잔질만 연거푸 하였다 

마음으로 모시던 아버지에게
사직을 했노라고 저 멀리 마음을 전해드렸더니
더 외롭게 살라는 당부를 바람 편에 전해주셨다




어느 토마토의 일생


만청 선생 화실 목석재 어느 그림 속엔
토마토 하나 실하게 매달려 있지

실경으로 화폭에 담아 두고
두 손으로 갈무리해 둔 토마토
먹기도 아까워 냉장고 속에 두고두고
한번쯤 정물로도 그려보았다는 토마토

어느 날 
마음이 무척 아파 몸도 따라 아픈 벗이
자원방래하니 그만 싸서 보냈다는 토마토

이제는 실경으로도 정물로도 그릴 수 없는
토마토의 일생을 곱씹는 사람 하나 있지
마음속으론 골백번도 더 그릴 수 있지만
상상화는 그리지 않는 그런 사람 하나 있지

온 여름 텃밭 농사 지어 
종이쪽에 수확한 토마토 보고 또 보며
멀리 딸려 보낸 토마토의 일생을 생각하는 주인 하나 있지
그 곁에서 입맛만 쩍쩍 다시는 손님 하나 있지 





시작메모

시에 대한 몇 가지 생각


*
태생이 자유로운 영혼은 몸과 마음을 비끄러매둘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겉보기엔 분방해 보이지만 속내는 어딘가에 묶이고 싶은 것이다. 결핍이 그쪽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래로 정돈된 영혼은 일탈에 대한 갈망이 크다. 겉으로는 틀에 박혔지만 속내로는 무한한 자유를 갈망한다. 출구가 그쪽이기 때문이다. 
두 부류는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기차다. 교차하는 중간 지점에는 시가 없다. 발과 꿈의 거리가 멀수록 시의 파격과 낯섦의 정도가 도출하는 울림이 크다. 최선을 다해 꿈을 멀리 보낼수록, 달려가 거세게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울컥울컥 선혈처럼 시가 피어난다. 
대체로 사람들은 태생에 따라 생래에 따라 디딘 발, 뿌리 뻗은 곳에서 산다. 그러나 시인이란 존재는 발과 꿈의 이격 정도가 멀고, 호기심 또한 만만찮은 사람들이다. 시는 그런 무모한 여정의 종점을 향해가는 불쌍한 기록이다. 언젠가는 다시 발로 돌아갈, 그러나 시를 버리지 않는 한 기약할 수도 없는 천형의 길이다.

**
시는 현실에는 없고 마음에는 있는 것을 숙주로 삼는 데는 선수다. 사별한 사람이라든지, 평화라든지, 마음에는 충만하고 현실에는 터럭 한 올 찾을 길 없는 극한 부재의 화신이 시다. 없는 것을 우상처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바닥까지 인정하는 도정의 기록이자 꿈의 표출이며 행동지침이다. 

***
세상에서 가장 전염성이 약한 바이러스가 큰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만큼 감염되기도 힘들고 퍼뜨리기도 힘들다. 유사 이래로 큰 가르침을 내세웠던 성인들이 마르고 닳도록 강조했던 큰사랑. 피로, 고행으로, 실천궁행으로 전염시켜 보려 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건실한 항체들의 대행진이다. 갈라섬과 반목과 질시, 약탈과 억압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살포한 큰사랑 항원은 사람들에게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면역결핍이 되면 좋을 것은 왜 잘 안 되는가. 항체들의 굳히기가 공고하다. 
큰사랑은 나 보다는 남, 기쁨 보다는 슬픔을 끌어안는, 행복 보다는 불행을 다독이는, 넘침을 덜어 모자람을 채우는, 밝음을 내어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큰사랑의 탄생 지점이 나타난다. 바로 지배이데올로기의 반대쪽에서 태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을 제거해온 것이 지배 쪽이요, 서로 사랑하며 살자고 움직여온 것이 지배를 받는 쪽이다. 시에 큰사랑이 깔려 있는 것을 보면 시의 생산 지점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비주류다. 항체가 없으면 좋을 큰사랑의 항원이다. 

****
상처란 무엇인가. 권정생 선생은 어린 시절에 청소부 아버지가 주워온 짝짝이 장화를 멋도 모르고 신은 채 동무들 앞에 나섰다가 큰 놀림을 받았다. 그 일이 두고두고 상처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나이가 들어 어느 날 장화 한 켤레를 사서 방안에서 신고 한껏 기분을 냈다. 그러나 이내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상처를 받은 것은 소년 권정생이었지 어른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소년에게 장화를 신겨줄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장화를 신고 으스댈 동무들도 이미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상처는 어린 시절 깨진 무릎처럼 멀쩡해져 있는데 마음만 애면글면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상처의 반대쪽을 지향하면 꿈이 된다. 상처를 인정하고 넘어설 때 가능하다. 내 상처에서 넘어설 때 남의 상처가 보인다. 공감의 감수성이 비로소 장착된다. 시의 출발점이다. 시는 낮은 곳을 찾아가는 물처럼 세상의 상처로 흘러가는 눈물의 마음이다. 장화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시의 소임이며 시인의 운명이다.

*****
정서는 대체로 8세 전후해서 완성된다고 한다. 울고 웃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정서 형성 이후의 삶은 사회성이 개입한다. 좋다 싫다, 맞다 아니다, 이거다 저거다, 내 것 네 것 하다 보면 호불호가 생겨나고 분별심이 자리 잡는다. 욕망과 동행하면서 일어나는 문제다. 대체로 삶은 이런 것들을 심화 불변 고착으로 흘러가기 십상이다. 눈물과 울음도 마찬가지다. 뒤틀리고 억압된 상태로 나타난다. 순수하던 때의 자연발생적 짠맛과 소리와는 거리가 있다.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끝까지 손잡고 가야하는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정서적 자아를 든다. 생텍쥐페리와 어린왕자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삶이 지나치다 싶을 때, 옥죄어 올 때 정서적 자아를 불러내어 대화를 나누어 보라. 같이 울어도 좋다. 그 울음이 곧 시다. 같이 울고 나면 좀은 삶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
세상은 욕망으로 사는 사람과 뜻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굳이 둘을 비교해서 말할 필요는 없지만 서로 비춰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욕망에도 어떤 목표가 있을 것이다. 주로 물질이다. 그것을 이루면 욕망은 다른, 더 큰, 보다 많은 욕망을 설정하고 나아간다. 욕망은 이루면서 결핍을 생성하는 묘한 생리를 가졌다. 욕망은 이루기 쉬운 것 같지만 그래서 어렵다. 끝이 없다.
뜻에도 어떤 목표가 있을 것이다. 주로 영혼이다. 평화로운 세상, 사람 사는 세상 따위다. 그것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어서 늘 결핍 상태이다. 이런 것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그래서 늘 겸손할 수밖에 없다. 시의 정체성이자 시의 마음이다. 



*안상학 :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7年 11月의 新川」당선. 시집 『그대 무사한가』(1991), 『안동소주』(1999), 『오래된 엽서』(2003), 『아배 생각』(2008).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2014). 평전 『권종대-통일걷이를 꿈꾼 농투성이』(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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