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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집중조명/김성규/지복 없는 땅에서 새벽을 기다리는 자 - 안상학 시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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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915회 작성일 15-07-09 14:09

본문

집중조명
김성규

지복 없는 땅에서 오지 않는 자를 기다리는 일
-안상학 시인론


타인을 자기화할 때 우리는 타인의 상처에 공감한다. 같은 환자로써 느끼는 고통으로의 연대이고 울분이고 동료애가 바로 공감이라는 감정이다. 타인의 상처를 바라보며 아파하다 자신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타인의 상처를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자기를 상처 내는 사람이 있다. 그 고통을 잊고 살다 어느 날 자신의 몸에 흐르는 피를 보며 스스로를 안쓰러워하는 사람이 있다. 안상학의 최근 시집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를 읽으면  “언제 한번 내가 내 손을/ 살갑게 잡아준 적 있었나”(「내 한 손이 내 한 손을」) 생각해보면서, 계면쩍어 하는 시인의 표정이 그려진다. 

1.하나의 몸으로 앓는 자들

첫 시집 『그대 무사한가』에서부터 최근 시집까지 안상학의 시는 두고 온 고향을 그리워하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그리움에 사무친 자신과, 세상 만물을 위무하는 시편들이다. “따듯한 너를 너무 오래 가까이해서” 생기는「저온 화상」을 겪은 후 한층 깊이 있는 작품들을 엮은 것이 이번 시집이다. “꽃밭 갈아엎어 텃밭 만드는 남편”과 “텃밭 갈아엎어 꽃밭 가꾸는 아내”(「앙숙」)와의 만남, 맹도견과 맹인의 만남, 한쪽 팔이 없는 발레리나와 한쪽 다리가 없는 무용수의 만남(「지압」)은 서로의 고통을 하나의 몸으로 앓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태어날 때 아픔은 어미 것이지만
돌아갈 때 아픔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어서
뼛속 깊이까지 통점을 키운 물푸레나무
꽃이 피어도 몸이 아팠네
바람만 불어도 몸이 아팠네
낙엽이 지거나 눈이 내려도 몸이 아팠네
통점을 사랑해서 한 잎씩 따서 물었네
통점을 사랑해서 한 뿌리씩 베어 물었네

아플 때마다 용케도 마음이 나았네
꽃이 피어 아파서 마음이 나았네
바람 불어 아파서 마음이 나았네
낙엽 지고 눈이 내려 아파서 마음이 나았네
어느덧 그에게도 마지막 계절이 오고
아플 때마다 몸이 조금씩 사라지고 마음이 나았네
마지막 계절이 소진 됐을 때
태아처럼 웅크리고 작아지던 그도 소진되었네

-「어느 물푸레나무 시인의 죽음」부분

어미로부터 물려받은 몸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사라져”간 시인을 떠올리며 쓴 「어느 물푸레나무 시인의 죽음」은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김태정 시인의 시 「물푸레나무」가 떠오른다. “꽃이 피어 아파서 마음이 나았네/ 바람 불어 아파서 마음이 나았네” 라는 구절에서 보이듯 이 시에서 병을 치유하는 것은 또다른 병이다. 병을 병으로 치유하는 방식은 다분히 종교적이다.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내가 아프다’ 라고 말했던 유마승의 말처럼 자신의 몸에 든 병은 세상으로부터 주어진 병이고 그 병을 앓는다는 것은 세상의 병을 일부 나누어 짐을 진 것이다. 따라서 그가 심한 병을 앓는 만큼 세상은 역으로 환해진다. “물푸레나무 한 잎의 태아, 최선을 다해 사라져갔네”라는 구절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몸으로 세상의 병을 앓고 간 어린아이, 가련한 인신에 대한 애도사이다.  한 그루 처녀이며 한 꽃의 아이이며 한 잎의 태아인 김태정 시인은 어떤 시를 쓰고자 했을까. 물푸레나무의 빛깔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김태정 「물푸레나무」) 그 빛깔을 찾아 나선 시인. 
지금 살아서, 운이 좋은 것인지 없는 것인지, 살아남아서 지겹게 이어지는 폐허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우리에게 먼저간 자들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은 자신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자의 가슴에 ‘통점’을 심어놓음으로써 우리에게 죄의식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며 하나의 지향점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의 방향을 알려준다. 

2.따듯한 시선과 비극적 인물들

첫 시집 『그대 무사한가』에서부터 안상학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시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거대한 기획을 하였으며 그 기획 중에 하나가 자신을 죽이고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도이다. 「할머니의 등잔」을 보면 그는 힘겹게 살아가는 자들의 슬픈 눈으로 세상을 보려한다. 그것은 주체성의 결여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방식에 있어서 일대 전환을 꾀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산물이다. 이 의지야 말로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며 동시에 이루기 어려운  시도이다. 

총각, 총각은 어쩌다가 혼자 술을 마신당가/ 내사 결혼하고 돌아서서 서방 잃고 / 전라도 충청도 떠돌다/ 사람 설은 경상도로 흘러왔지만, / 총각, 오늘이 내 결혼 십주년 기념일이/ 비에 젖어 뽕짝에 젖어 한잔했지라 /오늘은 내가 한잔 낼 텐께 마음 놓고 한잔혀/ 그래 그날도 오늘같이 비가 억수로 내렸제 /비내리는 인천 송도 바닷가에서 /다홍치마 적셔가며 사진 찍을 때 그랬지라/ 내 평생 비바람은 이 사람이 막아줄끼라 /가슴팍에 안기어 찰칵할 때 눈 지끈 감고 믿었지라/ 그 밤 꽃잎처럼 누워 떨던 그 밤이 /새삼 그립구만, 총각......한잔혀 /......그런데 누가 알기나 했겠나 /신혼 첫날, 꽃신 적셔가며 걷던 빗길이/ 평생 진창길이 될 줄 누가 알기나 했겠나/ 첫날밤 술 따른 인연이 평생 주전자 운전하게 될 줄,/ 첫날밤 허리춤 끄른 버릇이 / 평생 밥줄이 될 줄 /어느 밑 빠진 후레자식이 알기나 했겠나/ 총각.......한잔 줘......아따, 염병헐/ 오늘따라, 저놈의 비가, 어치코롬 요렇게,/ 사람, 맴을, 징허게, 한당가..... / 참, 총각은.....어쩌다 혼자 술을 마신당가-이

- 「실내포장 아줌마」 

첫 시집에서부터 자주 등장하는 이웃 사람들의 모습은 가난하나 저항하지 않고 천천히 고통에 젖어가는 비극적인 인물들이다. 80년대 민중시 계열의 많은 시에서 인물들이 현실에 강력히 저항하는 의지적 인물이라면 안상학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은 외연적으로는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가다 희생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시들은 독자의 감정을 더욱 침참하게 만든다. 「실내포장 아줌마」는 독백체로 시를 전개하여 시를 하나의 연극처럼 보이게 만든다. 포장마차의 아줌마는 비극도 희극도 아닌 자신의 삶을 과장하지 않고 보여준다. 과장되지 않은 인물들은 그의 시를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이 주어졌을 때 순응하기 마련이고 우리 역사에서도 대다수 민중들은 지난시절 민중문학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기보다는 순응과 체념으로 시절을 감내해왔다. 

꽃이 피기도 전에 봄이 왔는가 보다
너무 일찍 잠깬 호랑나비 한 마리
청보리밭에 잠시 앉았다 날아간다
고생만 하고 간 엄마 생각이 난다
-「보리밭」부분

그의 가족사가 엿보이는 많은 시들에서도 인물들은 대부분 운명론적으로 세상을 맞아들인다. 「보리밭」에서 “고생만 하고 간 엄마”의 모습도 「돼지아비」에서 “어느 초겨울 날 고개 넘어간 돼지아비”도 「납뜰 고모」에서 가난에 입 하나 줄이느라 팔려가듯 시집간 납뜰 고모도 “말 못하는 벙어린 줄 나중에야 알고/ 고향 하늘 바라보며” 서럽게 울면서 살아도 “줄줄이 생기는 대로 낳아 구 남매를”키웠고 모두들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거대한 운명에 순응하는 일 외에 다른 길을 알 수 없으며 그렇게 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못한다. 세월을 견디며 살아가다 스러져져간 사람들의 모습이 안상학 시인의 초기 시에도 여러 편 등장한다.


달마다 날아드는 빚독촉장보다 못한 형은
일 년이 지나도록 소식 한 장 없었다
늦은 저녁 먹고 아랫마을로 복땜하러 가신 아버지는
술에 이끌려 돌아와 넑두리로 쓰러지셨다
-중략-
달빛이 아니어도 주름을 감추며 환하게 피는 박꽃
허리 펼 날 있겠지 다독이며 살아가는 아버지 같은 꽃, 함박꽃
열이레 달이 옥수수밭으로 숨던 그 밤도
에미 애비 없이 홀로 잠이 든 여섯 살배기 질녀처럼
멈멍이는 가끔 잠깨어 목을 늘이고 울었다.
「초복」부분

복 없는 땅, 지복 없는 황폐함을 박꽃이 핀 장면과 대비시켜 표현하고 있는 시 「초복」에서 그는 황막한 땅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곧 찾아 나섬이며 이것을 우리는 사회적 실천이라고 부른다. 이 시에서 황망한 땅에서 잠들지 못하는 개는 하늘을 보며 짖는다. “아버지는 성큼 자란 풀 베러 다랑이논으로 나갔다가/ 피묻은 고무신을 끌고 절룩이며 돌아”왔고 “달마다 날아드는 빚독촉장보다 못한 형은/ 일년이 지나도록 소식 한 장 없었다” ‘주름을 감추며 환하게 피는 박꽃’은 이땅 민중의 상징이며 ‘에미 애비 없이 홀로 잠이 든 여섯 살배기 질녀’의 모습과 닮아있다. 민중이란 많은 시들에서 식물적 개념이며 이것은 현실에 맞서 싸워 승리하기보다 패배하며 그 패배의 힘으로 다시 살아가는 이미지이다. 그래서 위정자가 승리하여 권력을 승계한다면 민중은 패배하며 대를 이어가며 가난과 죽지 않는 생명의 씨앗으로 이어진다. 역사의 어느 장면에 이르면 민중의 힘이 승리할 날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개념으로 본다면 민중이라는 것은 인류의 종말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역사의 파국의 순간에 드러나는 폐허위에서도 그 폐허의 그늘 속에 하나의 씨앗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생명이전의 것이며 동시에 미래에 싹을 틔울 생명을 자신 안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3. 지복 없는 땅에서 오지 않는 자를 기다리는 일

「할머니의 등잔」도 전쟁에 남한의 안동 땅으로 내려와 살아생전 고향에 가지 못한 할머니를 대신해, 시를 통해 언어로써 할머니의 고향에 가 닿으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등잔불 아래에서/ 어두운 눈을 껌벅이시며 바느질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과 종이에 시를 한 글자씩 적어나가며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로 전망을 찾아가는 시인의 모습은 다른 도구를 통해 사유할 뿐 결국엔 같은 곳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바느질과 시 쓰기 모두 그 과정 자체가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며 이 과정을 거쳤을 때 수공업적 예술 작품이 탄생한다.
“안동군 도산면 운곡동/ 두메산골”의 동굴 속에서 세상의 일을 더듬어 추측하는 일,   “삼십촉 백열등을 끄고” 그는 “천천히 무명옷을 갈아입”는 할머니를 떠올리며 “아주 천천히 당신을” 부른다는 행위,  “등잔을 개조해서 꽃꽂이”하는 행위는 곧 할머니를 자신의 마음속에 내면화해서 그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의 시집에는 안동을 배경으로 한 시들이 많이 있는데 「수몰지구 원촌리」, 「할머니의 꽃신」외에도 『안동소주』의 모랫골 이야기 연작들과 이후의 시집에서도 수없이 많은 시편들이 있다.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자신의 고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근대화에서 밀려난 농촌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기다리는 행위는 최근 시집에서 다음과 같은 시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나타난다. 

그때 나는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노루가 고개를 넘어갈 때 잠시 돌아보듯/ 꼭 그만큼이라도 거기 서서 기다렸어야 했네/ 그때가 밤이었다면 새벽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면 봄을 기다렸어야 했네/ 연어를 기다리는 곰처럼/ 낙엽이 다 지길 기다려 둥지를 트는 까치처럼/ 그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네//  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 밤을 기다려 향기를 머금는 연꽃처럼/ 봄을 기다려 자리를 펴는 민들레처럼/ 그때 그곳에서 뿌리내린 듯 기다렸어야 했네/ 어둠 속을 쏘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을 찾아 눈 내리는 들판을/ 헤매 다니지 말았어야 했네// 그 사람이 아침처럼 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이 봄처럼 돌아왔을 때 나는 거기 없었네/ 아무리 급해도 내일로 갈 수 없고/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어제로 돌아갈 수 없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네/ 그때 나는 거기 서서 그 사람을 기다렸어야 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전문

기다리며 맞이해야 할 사람이 이 시에는 한정된 의미가 아니라 중층적 의미로 읽힌다. ‘그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황망한 땅에서 자신을 구원해줄 메시아 일수도 있다. 기다리는 행위는 곧 찾아나서는 행위이지만 이 시에서는 기다림과 찾아 나섬을 철저히 구분 짖고 있다. ‘그 사람은’ 사랑하는 여인이거나 메시아이거나 관계없이 절대적인 존재, 내가 기다려야만 하는 존재로 나타난다. 그 사람을 믿음으로 섣불리“해가 진다고 서쪽 벌판 너머로 달려가지 말았어야 했네/ 새벽이 멀다고 동쪽 강을 건너가지 말았어야 했네”라고 말한다. 구원자는 약속된 땅 이외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그러므로 자신의 땅, 버림받음으로써 선택된 땅, 고난이 곧 지복의 징표로 자리 잡은 땅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뿌리내린 듯 기다렸어야 했네/ 어둠 속을 쏘다니지 말았어야 했네”라는 구절에서 보이듯 그를 찾아 나섬은 곧 그에 대한 믿음의 부재이며 믿음의 부재로 인한 방황의 증거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가 돌아왔을 때, 내가 그를 찾아 나서서 오히려 그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는 구원받지 못하고 또다시 오랜 기다림의 끝에 서게 된다. 그것은 보다 낳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자들, 미래에는 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도래해야 한다고 믿는 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 미래의 어느 시간에 이루어질 일들을 기다리는 것, 미래를 기약 하며 시를 쓰는 행위 또한 도래할 세계에 대한 암호를 해독하는 일이다. 성경에서처럼 주변의 굶주린 자들의 눈빛과 광인의 언어로 미래의 비밀은 가끔씩 흘러나온다. 시인은 그것을 받아 적는 자이며 자신의 자리에서 식물처럼 뿌리내리는 것이 곧 미래의 시간을 지금 이곳으로 불러오는 것이다. 그 인고의 고난과 그로인간 시간의 파괴가 곧 혁명이며 개벽이다. 
의지는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식인으로써의 눈이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는 시도는 사실 80년대 많은 예술가들이 경험했던 예술적 표현 양식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마음여린 시인이며 동시에 실천가로 살아온 안상학 시인에게 이런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은 그를 이제까지 많은 것들에 대해 회의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매순간 느끼는 회의와 괴리감은 그가 많은 인물과 대상에 대해 과장하거나 의미를 축소하지 않고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시를 쓰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의 아름다운 서정시들과 세계의 한 지역에 불과한 안동을 소재로 한 시편들은 이런 따듯한 시선 속에서 보편적 의미망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김성규 : 1977년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너는 잘못 날아왔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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