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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집중조명/김중일/먼 바지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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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
김중일
먼 바지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는 바지로 모였다
바지로 이어지는 길
바지를 통해서만 건널 수 있는 길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길을
각자가 건너고 있다 죽도록 끝까지
종종 탈진해 쓰러진 산양을 만나도
산양을 넘고 다시 석양을 넘어
바지를 갈아입고 또 새벽을 넘어
오늘도 바지 속을 걷고 있다
영원히 건너지 못하겠지 이 바지 속을
바지의 영토는 끝이 없으니까
늦은 밤마다 서로에게 가는
몸의 절반이 푹 빠진 채 건너는 먼 바지의 길
모든 이의 여생을 덧대고 이어붙인
하루의 바지 속은 깊고 넓고 멀다
그 어떤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망자가 살며 디딘 흔적은 금세 사라지고
구부러진 바지를 본떠 만들어졌다는
최초의 계단을 딛고
빈소에서 돌아와 바지를 뒤집으면
고작 모래알 몇 개가 굴러 떨어질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길어졌다 짧아졌다
길어지는 파도라는 우울의 긴 바지단
가지마라 가지마라
가지마라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붙잡고 있는
짙푸르게 젖은 바지단
세계 각지의 바지단
벗으려 하면 할수록
허리를 꽉 붙드는 하루치의 바지
오늘도 우리는 기상과 동시에
열외 없이 바지로 모였다
나무처럼 하반신을 바지 속에 묻은 모습으로
얼음나라 노동자
주야간 가릴 것 없는 공습이 세세연년 계속되어도
여객선이 속절없이 침몰을 해도
최소한 그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습관은 없다
불가능하거나 너무 손쉬운 일은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의 손은 얼음으로 만들어졌다
그의 손은 매일 녹아 사라진다
그는 매일 누군가의 손을 꼭 한번 잡아본다
손의 형태와 질감과 체온과
손금의 보편적 진행 방향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는 새벽마다 녹아버린 손을 대신해
얼음으로 깎은 손을 갈아 끼운다
적어도 그는 희망 속에서 절망을 찾는 습관은 없다
너무 손쉽거나 불가능 한 일은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눈동자에는 항상 불이 켜져 있다
그의 눈동자에는 그를 안으려는 누군가의 두 팔이 펼쳐져 있고
불을 안은 까만 동공은 불안으로 일렁인다
선잠 위를 종일 걷다보면 도달하는 잠의 저층 모퉁이에는
실제로 삶 이후의 공간으로 통하는 비밀 구멍이 있다
모퉁이는 애인이 잃어버린 반지처럼 뾰족하게 반짝인다
그가 일하는 세상의 모든 모퉁이에서
지금 이 순간도 얼음은 만들어지고 있다
지구 곳곳에 박혀 있는 얼음이란
모든 얼음들은 모두 모퉁이다
화나거나 억울하거나 슬프거나 심심할 때
와그작와그작 깨물어 먹기 좋은 얼음이란 것들은
반감기
이제 어떤 속삭임도 들리지 않아, 내 귀에는
군데군데 못처럼 허공에 박힌 나뭇가지나 꽃에
우리의 더럽혀진 몸을 잠시 걸어놓고 쉬라고
귀는 매달려 있는 것
꿈은 몸도 없이 공중을 헤매는 행위에 불과해
자정을 넘자 불면은 나무처럼 일어서서
공중에 누운 채로 조언했다
너는 누워 있듯 서 있는 것이다
너는 서 있듯 누워 있는 것이다
우리가 포옹했던 밤을 생각해봐
그때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비로소 허공에 네 발을 딛고 설수 있었다
짙은 안개를 신은 거대한 구름이
일기장을 밟고 꿈쩍도 않고 있다
참혹한 하루의 일기장이 절대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알약처럼 한 주먹의 이빨을
다 깨물어 삼키고 기절하듯
잠든 사람들이 자음처럼 웅크린 채
밤과 낮을 잇는 문장 사이에서 파도처럼 뒤척였다
문장은 난파선의 잔해들
문자는 떠밀려온 유품들
이불이라곤 밤마다 겹겹이 쌓인 창문들뿐
사랑하는 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
살고싶은 것도 살고싶지 않는 것도 아닌
놀라운 며칠을 포상처럼 얻기도 했다
그것이 가능하기까지
물론 하느님이 관여하긴 했지*
그러나 죄책과 사과의 말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고백처럼 잊혀졌다
술잔에 채워진 술처럼
귀속에 채워진 고백들
단숨에 들이켜고 귀는 멀리 던져
깨버릴 것 그것만 유의할 것
*영화 『토리노의 말』중에서
노래할 수 있다면
노래할 수 있다면.
입 크게 벌리고 이마에 주름을 깊이 잡아가며
노래할 수 있다면.
이마의 주름위에 지저귀는 참새처럼
앉은 음표들을 연주하면
지붕위로 떨어지고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 바람 소리.
어릴 적 세 들어 살던 집 대문은 저녁이면 더 짙어지는 푸른색이었는데, 쓰러지기까지 그 문이 총 몇 번이나 여닫혔는지 아무도 기록해 놓지 않았지.
그것은 안타깝지만 다행스러운 일.
나는 그가 나를 총 몇 번 불렀는지 기억해 놓지 않았지.
그것은 다행스럽지만 안타까운 일.
입관식이 있던 일요일 오후.
나는 그의 이마에 입 맞췄다. 오래도록
내 입술을 그의 이마 속에 심어, 뿌리를 내리게 하고
그의 슬픔의 빈 가지가 내 뇌 속 구석구석까지 뻗도록.
이마에 오래 입 맞췄다. 악보에 입 맞추는 연주자처럼.
내 여생의 모든 웃음과 음악을
작별의 선물로 모조리 내어놓고자
노래하듯 입 맞췄다.
받아가지 않으려는 그는 한사코 손사래 치고,
생각해보니 그것은 저녁 창문을 닦던 손짓이기도 하지.
깊은 이마에서 길어 올린 한 바가지의 세숫물에.
높은 이마를 열고 날려 보낸 노래하는 새들에게.
먼먼 이마로부터 시작된 끝없는 숲 속을 향해.
운구차 차장을 가로지르는 구름의 속도로 손 흔든다.
이제 그가 갔으니 악장을 대신해 내가 시작한다.
지금부터 다 같이 아름다운 연주를.
연주보다 아름다운 노래를.
들어가는 글
별이 되고자 끝까지 날아가는 새가 있다
새가 되고자 투신하는 별이 있다
그 새와 별이 부딪혀 빗방울로 흩어졌다
막 태어나려는 날 위해
날 향해 천사는 밤새 붉은 화살을 쐈다
그 혈관은 지금 내 심장이라는 과녁에 모조리 꽂혀 있다
나는 비명과 울음을 터뜨리며
혈관 다발을 부여잡고 지상으로
꼬꾸라졌다 곧바로 죽을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난 태어나 생을 경유하게 되었다
지금 이 기록을 남기는 내 손등 위에도 그날의
시퍼런 화살 한 자루가 부러진 채 불거져 나와 있다
과녁 뒤에서 무표정한 친구들이 걸어 나와
과녁에 꽂힌 화살들을 하나 하나
모조리 뽑아갈 것이다
내 손을 잡고 내 손을 꼭 잡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잠깐이나마 울어줄지도 모른다
누굴 위해선지는 모르지만
또다시 텅 빈 허공에
붉은 과녁만 남을 것이다
천사가 활활 타오르는 달빛을 촉에 붙여 쏜
빗줄기 중 하나가 내 가슴을 관통한다
비를 맞고 죽는 사람도 있다
집 밖으로 나와서
글 안으로 들어가다가
빛을 맞고 죽는 사람이 있다
나는 비명도 없이
기쁘게 죽겠으나 다만 죽기 전에
나라는 가난한 나라는
변변히 기록할 농담의 역사가 없구나
점선처럼 비 내린다 오늘밤 하늘로부터
그어져 내린 무수한 절취선들이 공중에 가득하다
모든 이별에 대하여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떤 기록부터 뜯어내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릴까
종이배를 접어 띄울까
이것은 오늘의 마지막 농담
시작메모
시라는 농담에 대해서
1. 일상
언젠가 나는 세상을 뒤덮을 농담 한 마디를 남기고 싶었다. 지금은 그 바람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알게 됐지만, 아직 차마 포기는 못하고 있다. 나의 재주는 초라하고, 노력 또한 충분치 않으니 처음부터 그것은 내게 이룰 수 없는 꿈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등단 이후 꾸준히 조금씩 농담의 실력을 향상시켜 왔는데, 그마저도 매번 물거품이 되고 있는 기분이다. 이를테면 내 집 장만을 위해 착실히 적금을 들어왔는데 집값이 같은 기간 내 적금의 몇배가 올랐다더라, 하는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은 그저 그런 이야기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하겠다. 요컨대 이 세계가 펼쳐 보여주는 농담의 실력이 나에 비하여 가히 놀라울 만큼 향상되고 있다. 어디 한번 생각해보자. 굳이 자세한 실례는 생략하겠지만, 세상 구석구석 전국 방방곡곡 하늘 땅 바다에서 얼마나 농담 같은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놀라운 농담 앞에서 우리는 또 얼마나 금세 잊고 무감각해지며 시큰둥해지는가. 날로 향상되는 세계의 농담 실력도 따라가기 버거운데, 인간의 멸종을 막아온 이 놀라운 망각의 능력까지 상대하기에는 사실상 나는 능력 부족이다. 나로서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해야 하겠다.
그래도 말이다. 적어도 죽음이라는 농담만큼은 제대로 잘 하고 싶어 안달을 내며 노력해 왔지만 글쎄, 그마저도 요즘 절망적이다. 내가 시 속에서 묘사해왔던 그 무수한 죽음들. 그것이 단지 언어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것을, 비판적인 비평가도 혹독한 독자도 아니고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자신 앞에서 무릎 꿇고 인정해야 했다. 지금껏 시를 통해 내가 죽음이란 것을 말해왔다면, 요컨대 그것은 시체를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의사가 집도를 하는 것과 같다. 최근 나는 관객이 아닌 주연급으로 죽음의 무대에 한번 서 보았을 뿐인데, 아직 그 영혼을 울리던 죽음의 함성과 절규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알고 있다. 이미 경험된 죽음에 관한 그 무엇으로부터도 헤어나오려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그나마 겉보기엔 예전과 비슷하게 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최근에 나는 시에서 죽음을 묘사할 때 가급적 복잡한 구조나 다층적 비유의 사용을 줄이고 있다. 죽음이란 것은 전혀 복잡하지 않으며 오히려 숨이 딱 막혀 저항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단순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제 그냥 내 옆인 ‘여기에 없는 것’이다.
2. 유희
어쩌면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껏 내가 쓴 시의 구십 퍼센트는 일상적 사실의 묘사다. 최근에 쓴 시만 두고 보자면 전편이 그렇다고 하겠다. 시는 일기나 에세이가 아니지 않는가. 저 많은 시인들처럼 나 역시 시가 시라는 형식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무릎 꿇고 엎드려 절하는 것이 아닌, 무릎이 까지도록 무릎걸음으로 계속 전진함으로써 시라는 형식을 자꾸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예측에서 벗어난 감각의 윗목으로 몰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이 쉽지 그것은 어렵다. 머리가 좋지 않은 내가 백년에 걸쳐 치밀하게 작전을 짜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시 쓰는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너무 늦어버리든 오버페이스를 하든 페이스메이커 따위는 없다. 혼자서만 해야 하는 그 고독한 달리기에 대해, 나의 경우 코스만큼은 정해놓지 않는 편이다. 명명백백한 일상이 그리고 사실이 최초의 이미지 하나를 낳고, 그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로 번진다. 나조차 예상 못한 방향으로 번진 이미지는 또 다른 이미지로 재차 번져가며 서로 뒤섞이고 겹쳐진다. 그러다 보면 빙하와 태양이 같은 성분이 되며, 새와 물고기가 형제가 되고, 인간과 귀뚜리가 동격이 되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나의 텍스트는 매번 완성되기를 고의적으로 지연한다. 계속 쓸 수 있으나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적절한 순간을 맞아 고이 접는 형국이다. 다음을 위하여. 시 쓰기는 계속되어야 하니까. 요컨대 나는 지금 단 한편의 시를 틈틈이 쉬어가며 쓰고 있는 중이라고 하겠다. 다시 사족을 덧붙이자면 얼마 전엔 그만 백행이 넘는 시를 쓰고 말았지만, 가급적 시집 두 페이지 내의 분량으로 쓸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내가 가진 이미지는 서로 잘 포개지고 스며들며 쉽게 번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매순간 정신 차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미지를 마음껏 뛰어놀게 하되, 천둥벌거숭이 같은 이미지들에 끌려만 다녀서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미지를 유희해야지, 이미지에게 유희 당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읽어주는 타인이 즐거우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최소한 나라도 재밌어야지, 이미지들끼리 낄낄대면 그것만큼 난감한 일도 없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는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 이미지들이 내게 사기 치는 술수가 날로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데 있어서만큼은 스스로를 속이고 스스로에게 사기당해서는 곤란하다. 앞으로도 이 세계가 전해 줄 충격적이고 다양한 농담들로 내 이미지들은 불안에 떨며 더욱 요동칠 것이므로. 그 이미지들이 사납다고 감당하기 힘들다고 함께하기 고통스럽다고 유기하지 않고, 끝까지 유희하며 잘 키워 나가야 하니까. 잘 자아서 어디 한번 세상에 넉넉히 입혀줄 만한 꽃무늬 셔츠 같은 농담 하나쯤은 남겨봐야 하니까. ▒
*김중일 : 1977년 서울 출생.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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