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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소시집/이외현/북한산 낚시꾼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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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집
이외현
북한산 낚시꾼
안개가 싸리문을 열면 낚시꾼은 산으로 출근한다. 산에는 일찌감치 낚시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낚싯밥을 덥석 받아 문다.
김씨는 키움 비뇨기과에서 리모델링한 떡밥을 미끼로 낚시를 한다. 쌍꺼풀 광어와 필러 도다리와 보톡스 가자미를 줄줄이 낚는다. 이씨는 암모니아 퇴비더미에서 파낸 지렁이를 미끼로 낚시를 한다. 빈 맥주병 피라미와 폐냉장고 메기와 녹슨 세탁기 물뱀을 낚는다.
바람은 상표가 벗겨진 소주병을 입에 물고 휘파람을 분다. 뱃살이 늘어진 앞산에 노을이 뉘엿뉘엿 감색 발을 내리면, 앉았던 의자를 접고 갓 잡은 물고기와 함께 산 아래로 퇴근한다. 싱싱한 횟감을 낚다가 그대로 등이 굽은 채.
블랙 프라이데이*
리모콘이 풍경을 바꿔 화면은 13일 하루 전 금요일, 검은 비가 내린다. 시세를 전하는 복사기가 드르륵 종이를 삼킨다. 커피가 끓고, 목욕을 마친 여인이 까만 숄을 걸친다. 아스팔트를 지나 공중화장실에서 자신보다 더 까만 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먹구름이 낀 하늘을 뚜벅뚜벅 걸어 세검정 검정 대문집으로 간다. 거실에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검은 한복과 양복들이 분주하다. 전광판에 흑백사진이 나오자 여자의 마스카라가 눈물에 까맣게 번진다. 검은 뱀들이 혀를 날름대고, 까마귀는 까악까악 운다. 개미들이 검정 리본을 달고 그을린 냄비 속으로 걸어간다. 냄비 벽에서 으깨진 개미를 오골계가 까만 혀로 핥는다.
*블랙프라이데이:2004년 3월 12일 국회에서 현직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후 한국금융시장의 폭락 장세를 지칭함.
섬, 있는데
썰물이면 솟아나는 섬 있는데,
섬은 물끄러미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는데,
어푸어푸 자맥질을 하기도 하는데,
술래잡기 하다가 사라지기도 하는데,
그 섬에서 거북이 되고 싶은데,
다닥다닥 따개비 되고 싶은데,
파도가 때리면 막아주고 싶은데,
섬이 울면 고둥 불며 따라 울고 싶은데,
초승달, 파르르 떨고 있는데,
뭇별, 오소소 소름 돋고 있는데,
은하수,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데,
섬, 바로 한 치 앞에 있는데,
내 손등을 탁탁 치고 있는데,
거기, 그 자리 아직도 있는데,
낮잠
숟가락, 젓가락 놓는 소리, 김치 자르는 소리, 국물 뜨는 소리, 자기 자리 찾아가는 소리,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오버랩 되네요. 밥 먹고 자, 파김치는 어디 있어? 퉁명한 소리가 모기처럼 날아와 귓밥으로 쌓이네요. 한참 작업 중인 시나리오를 신발끈처럼 물어뜯네요. 기막혀라, 이 따위를 사람들은 소소한 행복이라 한다지요.
다시 레디액션, 눈 감고 당신 손길을 더듬어 따라갑니다.
탱탱한 유두 끝에 당신 입술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네요.
배고픈 당신에게 젖을 물리고 싶은 나는 당신의 어머니.
컷, 여기까지 하고 조금 있다가 다시 갈께요.
멀리 가지 마시고 이불 속에서 대기해 주세요.
먼저 허기진 사람들 입을 간단하게 해결하고,
우리 다음 씬부터 진지하게 다시 시작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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