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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신작시/김인구/신이방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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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인구
신 이방인
햇빛이 뭉텅뭉텅 끊어져 내린다
치즈는 지금 제 몸피를 맘껏 늘이며 멀리 달아나는 중이다
치즈 사이로 언뜻 보이는 작은 구멍들이 제 몸의
옆구리를 둘러싸고 원을 그리며 제 깜냥껏 멀리
뛰어보는 것이다
그녀의 잘린 태양 파편들이 이글거리는 하늘 속으로
란제리를 펄럭이며 쇄골을 드러내 뼈의 미학을 보여주는 거울 속
변신의 변신을 거듭한 그녀의 미간은 아직도 내 천자(川)를
지우지 못하고 칭얼대는 중이다
나른한 거리와 유리창과 거울에 와 차례로 부딪치며
생의 유기화학을 마구 분사하는 저 태양의 양가측정치
그녀가 흐느적거리는 오후를 벗어낼 때 쯤
햇빛은 조용히 인내심을 거둬들여 자신만의 분자식으로
거울 속에 잠깐, 유리창에 슬쩍, 거리를 뒹굴어 보다가
그녀의 찡그린 미간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다
건드리면 터지는 유추프라카치아의 레퀴엠처럼
사랑을 견디고 죽음을 따라가서 알아낸 생애의 거짓들이
멀리 달아났던 치즈처럼 제 속 구멍이란 구멍을 모두 좁히며
다시 그녀 안으로 찾아들어오는 것이다
오래 학습된 방편들이 승리의 깃발을 치즈 위에 꽂으며
지구의 체온을 1°C 씩 낮추는 밤
다섯 손가락이 나누어 줄 수 있는 아량과
다섯 손가락이 거머쥘 수 있는 욕망이
은밀하게 그녀에게서 거래 된다
안녕, 안녕!
지독한 폭설의 푸념을 귓전에 쌓으며
삼청동이며 북촌길을 헤매 다녔네
눈앞을 가로 막는 눈송이를 뚫고
꽃보다 예쁜 빠알간 우체국엘 들어서네
붐비는 사람들 틈을 지나 번호표를 뽑아들고
등받이 없는 주홍빛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너를 기다리네
기다리는 동안 발아래서 잠드는 눈들의 잔해를
들여다보며 지난날의 너를 잠시 들여다보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많은 우연들이
필연으로 엮인 그 먼 마을까지 달려가는 마음을
딩동,딩동!
번호표에 실어 보내네
안녕이라고 해도 안녕이 되지 않는 안녕들을
곱게 포장해 너에게 보내네
세상 곳곳에 내릴 폭설,
너 있는 먼 마을까지 가 안녕, 안녕! 이라고
전할 눈꽃 같은 소포를 부치네
*김인구 : 전북 남원 출생 91년 시집 < 다시 꽃으로 태어나는 너에게>로 작품활동 시작. 작품집으로 <신림동 연가> <아름다운 비밀> <굿바이, 자화상>외 다수의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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