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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신작시/김혜영/당신이라는 은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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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혜영
당신이라는 은유
두 개의 귓속에서 태어난 은유처럼
한 손으로 풍경을 만지고
한 손으로 손등을 만지고
두 개의 자전거 바퀴가 달린다
유월의 바람이 하얀 셔츠 깃을 스칠 때
호수의 바람이 분홍 모자를 스칠 때
이천년 전 살해된 신의 얼굴
막달레나가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울었을 때
죽음의 동굴을 부순 신이 살아나
뜨거운 입맞춤을 한 것은 비밀이었다
당신의 입술을 만질 수 있는 기적은
당신의 두 눈을 별처럼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계절이 다가와
담장에 피는 장미의 얼굴인지도 몰라
두 개의 자전거 바퀴가 바람을 거슬러 달린다
스타벅스와 여름의 먼지 사이
아이들의 풍선 사이
입가 미소가 햇살에 반사될 때
선글라스를 쓴 당신은 먼 호수가 되고
커피를 마시는 당신은 먼 나무가 되고
한 몸에서 태어난 두 개의 사과처럼
한 몸에서 자라난 두 개의 석류처럼
두 개의 자전거 바퀴가 달린다
붉은 달이 뜬 등대
달은
붉은 얼굴
섬은 안개처럼 아늑해
등대 옆에서
그녀는 편지를 쓴다
기차를 탄 그는 달의 편지를 읽는다
나무에게 불성이 있느냐고
그녀가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람이 짐승도 되고
벌레도 되고 나무가 되느냐고
그녀가 물었다
그는 처음부터 ‘나무’였다고
대답했다
붉은 달은
남쪽 바다에 긴 치마를 드리우고
밤바다의 얼굴은 검은 듯
아련한 맨살
나무가 말하는 게 들리니?
사, 랑, 해,
화분에 핀 제라늄은 늘 목말라
나무의 귀가 열리고
화분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붉은 달이 되어가는 데
등대는 먼 길을 돌아와 나란히 서 있다
밤안개가 가만히 다가오고
편지가 달빛에 불탄다
김혜영 : 경남 고성 출생. 1997년 <현대시> 등단. 시집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 『프로이트를 읽는 오전』 . 평론집 『메두사의 거울』 , 『분열된 주체와 무의식』. <시와 사상> 편집위원. 웹진 <젊은시인들> 발행인. 제 8회 애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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