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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미니서사/박금산/유전자가 발현되는 공식을 바라보며 착시하는 작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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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053회 작성일 15-07-0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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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박금산

유전자가 발현되는 공식을 바라보며 착시하는 작가의 마음


  아버지를 기다리던 작가는 사전을 읽었다. 열 살이었다. 사전은 100년을 읽어도 끝나지 않을 것처럼 두꺼웠다. 어머니는 동지의 뜻을 물었다. 작가는 사전을 펴고 소리 내어 읽었다. 동지. 이십사절기의 하나. 한 해 중 밤이 가장 긴 날. 어머니는 도주를 권했다. 작가는 사전을 넘겨 단어를 찾았다. 도주. 도망의 다른 말. 예문, 산길을 타고 도주했다. 길고 긴 하루였다. 

  작가는 자라 아이를 낳았다. 아내는 사랑스러웠다. 아이가 열 살 되던 해, 고향에서 전화가 왔다. 이웃에 살던 친구가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이었다. 사실혼 관계로 살다가 기념사진을 찍을 겸 늦게 식을 올린다고 했다. 오래 기다렸을 것이다. 작가는 들떴다. 20여년 만에, 결혼식장에서 만날 신랑, 그리고 우인(友人) 석에 자리를 매울 유년 친구들이 눈앞을 스쳐갔다. 

  식장에 도착했다. 손녀 손자를 둔 할머니들이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어머, 어쩜 너는 그때랑 지금이랑 똑 같니?” 헐. 저들의 눈은 도대체 어떤 과정으로 노령화 된 것일까. 뇌의 구조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곧이어 들리는 젊은 남성들의 대화. “야, 너도 많이 삭았다. 왜 이렇게 망가졌냐?” 아, 이 눈들은 왜 또 저 눈들과 정반대로 적나라한 것인가. 남과 여는 아(我)와 적(敵)처럼 다르다. 

  신랑은 하객을 맞이했다. 작가는 앞으로 다가갔다. 친구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신랑이 머쓱해했다. 작가의 눈에 신랑은 친구가 아니라 유년에 보았던 친구 아버지의 체형과 얼굴이었다. 자신에게 없었기에 시기를 유발하던 존재였다. 
  작가는 눈을 돌렸다. 놀라울 정도로 낯익은 과거였다. 아이였던 친구들이 모두 자기네 아버지 혹은 큰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간혹 죽었다고 들은 얼굴도 있었다. 이것이 유전자 발현의 공식에 의한 착각이라면 지금 자신의 얼굴에 들어앉아 있을 얼굴은 집을 나간 아버지일 것이었다. 작가는 열 살짜리 아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작가는 사전의 단어를 만들었다. 동지, 뜻이 같음, 혹은 그런 사람, 혁명기에 사용되었던 고어. 어머니가 잃었던 사람. 모두는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아들이다. 


*박금산 : 소설가. 1972년 여수 출생.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 고려대 국문과, 동대학원 졸업.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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