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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연재 한시산책/서경희/서경희고향의 산은 달과 내 기억 속에만 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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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산책
서경희
8. 서쪽으로 향히는 마음을 시로 승화하다
-왕유의 자연시ㅡ
늦여름이 갈 즈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에 도착했다. 답사객들이 법당 안에 들어가 왼쪽에 정좌한 아미타불을 향해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하고 있었다. 절마당의 능금나무 밑에서는 그 나무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에 대해서 열띤 토론이 이어졌고, 나는 바깥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계단 아래로 장엄하게 펼쳐진 풍광을 바라보며 잠깐 심호흡을 했다.
<삼국유사>의 설화에 등장하는 신라인의 서쪽을 향한 기도는 지치고 힘든 인간의 염원을 담고 있다. 그들에게 해가 지는 서쪽은 안식을 위한 약속의 땅이었다.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신앙은 4세기 경 중국으로 들어와 7세기에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졌는데, 아미타불만 불러도 구원받는다는 믿음을 원효는 신라 땅 곳곳에 전파시켰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김대성이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을 완성시킨 즈음, 중국 당나라에서는 시불(詩佛) 왕유(王維, 699~759), 시선(詩仙) 이백(李白, 701~762), 시성(詩聖) 두보(杜甫, 712~770)가 활약하고 있었다.
성당(盛唐) 시기의 시인이자 화가로서 상서우승(尙書右丞)이라는 높은 관직을 역임한 왕유는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 유(維)와 자(字) 마힐(摩詰)은 <유마경(維摩経)>에 나오는 거사(居士)의 이름이다. 그는 시와 그림 모두에서 뛰어났는데, 소식(蘇軾, 1036~1101)은 왕유의 시와 그림을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고 평했다.
그가 지은 <過香積寺(과향적사)>와 <종남별업(終南別業)>은 불교적 삶의 자취와 ‘시중유화(詩中有畵)’를 보여주는 시이다.
<향적사를 찾아서>
알길 없어라 향적사 가는 길은, 不知香積寺
몇 리를 들어가도 구름 덮인 산이로고. 數里入雲山
나무는 길이 넓고 인적도 끊쳤는데, 古木無人徑
깊은 산 어드메쯤 들려오는 종소린가. 深山何處鐘
흐르는 물소리는 돌에 걸려 흐느끼고, 泉聲咽危石
산 깊어 푸른 솔에 햇볕도 서늘하다. 日色冷靑松
해설피 여울 물 소리만 들려 오는데, 薄暮空潭曲
선정(禪定)에 들으니 알길 없어라. 安禪制毒龍
이상의 번역문은 시인 신석정(1907~1974)이 1971년에 비사벌 초사에서 엮은 <당시>에서 발췌했다. 서정시인인 그의 시어는 어느 한문학자의 번역보다 정겹고, 왕유의 심상과 시적 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책에서 신석정은 “시문학에 종사한지 40여년이 넘도록 나의 머리맡에서 당시가 떠나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당시를 마음의 고향이라고 여긴 것이다.
향적사(香積寺)는 706년에 창건된 정토종(淨土宗) 본산인 사찰이며, 서안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17㎞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다. 정토종이란 아미타불을 신봉하는 불교의 한 종파를 말한다.
향적사를 찾아 구름 덮힌 봉우리의 산으로 들어가니, 고목이 무성한 곳엔 오솔길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숲 속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오고, 거친 바윗돌에 부딪히는 물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솔숲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어스름 저녁에 여울물 소리 가 들리는 곳에서 자신도 모르게 선정(禪定)에 드니,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으며 온갖 번뇌가 사라진다.
자연 속에서 불심에 깃든 왕유의 모습이 마치 그림 속에 있다가 살아나올 듯하다.
<종남산의 별장>
중년에 자못 도를 좋아했고, 中歲頗好道
만년엔 남산 기슭에 집 지었네. 晚家南山陲
흥이 나면 매양 홀로 나서니, 興來每獨往
좋은 일 그저 나 혼자만 알 뿐. 勝事空自知
가다가 물길 끝나는 곳에 이르러, 行到水窮處
앉아서 구름 이는 때를 바라보네. 坐看雲起時
우연히 숲속 노인 만나면, 偶然值林叟
웃으며 얘기하느라 돌아갈 기약 없네. 談笑無還期
중년에 부인을 잃고 만년에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겪은 후 종남산의 망천(輞川)에 별장을 짓고 불교적 삶을 영위하며 대자연을 노래한 시이다.
기분이 내키면 홀로 길을 나서나 이 좋은 일은 혼자만 알 뿐이다. 걸어서 수원까지 갔다가 잠시 다리를 쉬며 구름이 피어나는 곳을 바라보기도 하고 우연히 나무꾼을 만나면 갈 길 잊은 채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눈다.
인간의 자유자재한 삶이 자연과 어우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의 5,6구 ‘행도수궁처(行到水窮處) 좌간운기시(坐看雲起時)’는 청나라 옹정제가 좋아한 시구로서 ‘보보경심’이라는 중국 드라마에서도 소개되었고, 조선 후기 김홍도 등의 그림 화제(畵題)로서도 유명하다.
왕유는 30세에 부인을 잃었으나 재혼하지 않았고 독신으로 일생을 마쳤다. 만년에 도연명(陶淵明, 365~427) · 사령운(謝靈運, 385~433)을 본받아 산수 자연에서 시적 정서를 표출하였다. 그의 불교적 인생관과 비교적 순탄한 관운 때문에, 훗날 이백과 두보에 비해 평가절하된 점이 자못 아쉽지만, 여러 면에서 모범적 시인의 면모를 보여준 점이 존경스럽다.
*서경희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 한성대, 카톨릭대, 성균관대 강사 역임. 논문 <삼국유사에 나타난 화엄선의 문학적 형상화>,<영조어제 해제>. 공역<열하기행시주>, <정산 이병휴의 시와 철학>. 현재 성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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