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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신작시/박무웅/착한 고수는 없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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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2,926회 작성일 15-07-08 14:46

본문

신작시
박무웅

착한 고수는 없다


모든 삶은 처음부터 승부를 통과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우열의 유전자가 
 시시때때로 나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세상에는 단판에 갈리는 승패가 있다 
 단판의 승부로 살다가 다시
 단판의 승부로 돌아가는 일생이지만
 눈앞에 먼지가 황량하게 일어나는 
 바둑판 앞에서처럼 
 삼백 예순 한 개의 전장에서 
 허점을 노리는 맹수처럼 눈을 번뜩이며
 오래 기다리는 삶도 있다.

 삶과 죽음은 줄타기를 한다지만
 순간의 때가 올 때까지 절대
 그 줄에서 삶을 떨어트리는 법이 없다.
 
 한순간 맛보는 승패를 위하여
 경마장을 찾지만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것은 식식거리는 
 바람소리일 뿐이다 
 패배는 승리의 한 순간을 위해 서서히 주머니를 턴다. 
 그러다 때가 됐다 싶으면 그때
 패가망신했다는 말을 듣는다.

 어차피 인생은 도박이라고들 하지만  
 도박에 만일의 여지를 찾아 해매는 것처럼  
 이미 오래전에 결정 난 결과를 자꾸 재사용하려는 것이다 
 세상에는 단박에 승부가 나지 않는 것이 있다
 옛 이야기가 되기 십상인 것들이 있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야 밝혀질 것들이 있다

 가끔은 뒤집어야 맞는 것일까
 신은 오래전에 명명백백한 결론을 이미 
 인간에게 맡겼다.

 누구든 비정하게 칼을 내리치는 순간이 있다 
 멈칫거릴수록 칼날은 무뎌져 간다.  
 무뎌진 칼은 결국 칼자루까지 썩게 만든다. 
 착한 고수는 없다
 인생은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말 
 그처럼 큰 위안이 말도 없다




홍삼 


헉헉거리는 산맥을 넘어서면
밭도 산도 온통 인삼밭이다
차양 막 아래 푸른 이파리가 
손바닥처럼 펼쳐진 풍경에는
자연의 온갖 비경도 바람도 인삼이 된다.

인간의 형상形狀으로
이처럼 귀한 대접이 있겠는가.
영험한 땅이란 본래
생의 마지막을 거둬들이는 이치理致지만
6년을 골똘하게 고집하는 
신생의 기운으로 가득한 땅속

여름날 인삼밭에 앉아 
땀을 말리던 어머니의 얼굴에서 솟아나던 
짜디 짠 가난
그 가난에도 잔뿌리가 붙고 팔다리가 생겼었다.
가난만큼 영험한 것이 없다
6년을 넘어 육십년을 여물어가는 
귀하디귀한 인삼 같은 교훈이 있다.

증기로 찐 인삼이 한층 더 귀한 
홍삼이 된 것처럼 가난을 견딘 시간은 부를 이루었다.
가끔 집안에서 달이는 홍삼의 시간을 따라가면
한여름 차양아래 가난하던 
어머니의 손과 
쌉싸래한 인삼향기가 난다.
아침이 푸른 인삼이파리처럼 빛나고
기억에서는 붉은 인삼씨앗이 툭툭 불거지는 소리 들린다.

.
나는 매일 홍삼 속에서
참고 견디는 인고와 귀한 것들을 배운다.


*박무웅 : 199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지상의 붕새』외. 현 〈시와표현〉발행인 및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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