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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신작시/이재훈/돌무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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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재훈
돌무덤
아무도 찾지 않는 돌.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풀이 무성하다.
아무도 원치 않는 시간들이었다.
햇살이 있었으며 때때로 비가 왔다.
비탈도 없는 작은 동산.
영혼들은 몰락하지 않고
늘 돌의 몸에 달라붙어 있다.
이승에서 무덤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황금도 패물도 없는 무덤은 조용히 풀만 자랄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돌에
누가 이토록 견고한 결말을 원했을까.
낯선 이들이 간혹 찾아와서
진설과 독축도 없이
비천한 말들만 던져 놓고 갔다.
선한 싸움은 벌레들에게나 있는 것.
돌을 어깨에 짊어지는 이들은 벌레뿐.
작은 자만이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세계가
저 돌 속에 산다.
춤추는 뼈들의 거리
빗자루를 가득 싣고 트럭이 달린다.
화물칸에는 바람의 비명이 들린다.
가로수를 지날 때마다 잎이 비처럼 내린다.
망령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푸르고 맑은 날.
햇살이 구름을 먹는 오후를 지난다.
어스름이 밀려들자 트럭은 멈춘다.
빗자루들이 바닥에 널브러진다.
온몸으로 빗질을 할 때마다 칙칙한 울음이 들린다.
길가에 서 있는 차가운 동상(銅像)이 천천히 움직인다.
삐걱이더니 이내 사람의 근육처럼 움직인다.
빗자루의 목에 밧줄을 건다.
빗자루들은 아무 말없이 꽃잎을 쓴다.
꽃잎 쓸리는 소리가 어느새 비명으로 바뀐다.
행렬도 없이 거리의 곳곳에는 목줄을 매단
사람들이 꽃잎을 쓸어 담는다.
*이재훈 : 1972년 강원도 영월 출생. 1998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서, 명왕성 되다. 저서로 현대시와 허무의식, 딜레마의 시학, 부재의 수사학, 대담집 나는 시인이다가 있다. <현대시작품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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