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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신작시/유현숙/최북의 한 쪽 눈에 내리는 비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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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739회 작성일 15-07-08 15:03

본문

신작시
유현숙 

  최북의 한 쪽 눈에 내리는 비


  조선 화가 최북은 제 눈을 찔렀다 고흐는 제 귀를 잘랐다 종신형을 살던 도니 존슨은 초콜릿을 개어 감옥에서 그림을 그렸다
  풍설이 치는 산골의 밤을 어린 아이와 함께 걷는 풍설야귀인를, 잘린 귀의 자화상을, 초콜릿이 풀어 낸 제 바닥의 색채를 그렸다 
  폭염을 걷던 어느 화가는 낯선 커피점에서 커피액을 찍어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암흑이건 소리 밖이건 갇힌 감옥이건 커피점이건 누군가 고독한 손길로 붓질을 하는 곳에는 빗소리가 들린다 
  해수관음범종이 내는 낮고 적막한 공명이 있다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단풍나무 숲길에 앉아 석류를 쪼깬다 붉게 물 든 손가락을 본다 
  손톱 밑과 손가락이 붉어지는 동안 단풍잎은 떨어졌고

  나는 최북이 찌른 한 쪽 눈을 생각하고 한 쪽 귀가 없는 고흐를 생각하고 도니 존슨의 감옥과 초콜릿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화가가 있는 도시의 비 내리는 가을을 생각한다

  
  


   패닉


   시골 역에 앉아 열차를 기다리네. 어제는 그냥 보냈네. 제복 입은 철도원은 신호용 깃발을 말아 쥐고 돌아서네. 빠르게 관통하는 열차처럼 나는 너를 뚫을까, 너는 나를 뚫을까. 능소화는 꽃숭어리 몇, 떨구었네. 이미 혼절했네. 아무리 기다려도 너를 뚫지 못하네. 누구는 덕소로 이사하여 수십 편의 시를 썼다하고 누구는 소쇄원 근방에 머무르며 달포동안 마흔 편의 시를 썼다는데
  기함하며 나는 탄화하네. 소멸을 생각하네. 재 한 줌 집네. 바야흐로 어둠이 내리고 선로의 저 끝은 깜깜하네. 
  혼자 어두워져 빈 대합실에 남아 오지 않는 열차를 기다리네.

 
*유현숙 : 2003년『문학․선』으로 등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시집『서해와 동침하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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