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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신작시/차주일/신김치의 자세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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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차주일
신김치의 자세
몸이 새벽을 마다치 않고 국숫집을 다녀온다. 꼿꼿한 근육질 몸은 분명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 방을 걸어 나가 잔치국수 한 그릇 포장한다는 빌미로 신김치 한 주먹 싸들고 몸으로 돌아와 앉는 것이다. 그러면, 의자에서 일어선 몸이 방바닥에 쭈그려 앉은 누군가의 입에 젓가락질 해주는 것이다. 그러면, 신김치 맛으로 꽉 찬 누군가는 지평선 아래 파묻은 김장독처럼 찌그러져 제 마음 하나 절여 놓기도 버거워 보이는 것이다. 이쯤이면, 누군가는 잔치국수에 신김치 고명을 얹듯 뽕짝 한 곡 흥얼거려 몸에게 지평선보다 낮은 지위를 세뇌하는 것인데, 다음 날 아침이면, 잘 익은 동작이 몸을 데리고 지하방을 나서는 것인데, 힘줄이 쭈글쭈글 절어 있는 동작은 한 치 오차 없이 몸을 호령하는 것인데, 근육질 몸은 쉰내 풍기는 작업복보다 작아야 하는 지상이어서, 김장독은 늘 헐렁했고 신김치는 만원 지하철 속에서도 늘 홀로 숙성 중이다.
길의 승천
선산까지 걷기 순례를 시작한 첫날부터 멍든 발톱과 마주 보기 시작했다. 내 몸보다 앞서 나가 멀다 永자의 첫 점획을 자처하던 발톱은 장승요의 화룡점안처럼 하루하루 농담(濃淡)이 짙어졌다.
내 몸에 멀다 永자 획순의 통증을 수없이 습자하던 발톱이, 일몰이면 발[足]을 부수 삼아 길 路자의 상형 태아처럼 웅크린 잠자게 하던 발톱이, 여명이면 발을 한 사람의 얼굴로 여기게 하던 발톱이, 한순간 사라졌다.
나와 마주 보던 자도 함께 사라져 통증을 먹물 삼던 나만 홀로 길 위에 남았다.
밤의 농담을 가늠하는 화공(畵工) 홀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내 그림자를 줄이고 늘이며 길의 가장자리를 그리고 내 발자국을 용린으로 박아 넣으며 길을 그리고 있다.
지난날 되돌아섰던 자리에 되돌아선 첫발자국; 역린처럼 박혀 있다. 통증이 디딜 수 없는 여기서부터 무얼 먹물 삼아야 할지 모르는 나, 발에서 가장 먼 획; 눈[眼]에 통증을 옮길 수 있을까. 내게 먹빛을 빌려주는 달이 묵지(墨池)처럼 마르고 있다.
*차주일 : 2003년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냄새의 소유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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