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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신작시/이명/바위를 읽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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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이명
바위를 읽다
청량사 계곡은 도서관이다
푸른 이끼로 제본된 고서 한 권을 꺼내 읽는다
이끼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촘촘한 표지에서
전단향 냄새가 난다
바위를 제목으로 게송偈頌을 서문으로
첫 장부터 알 수 없음으로 시작되는 목차를 뒤적인다
풍자와 독설을 본문으로 동문서답하는
곧추선 발끝마다 번뜩이는 푸른 이끼들의 화려한 군무群舞
개나
소나
똥막대기나
뜰 앞의 잣나무나
문장은 짧고 단순하다
마음도 짐이 될 때 벗어 던져라 이르시는 벽암碧巖,
송고백칙頌古百則 바위 속
묵직한 한 줄의 문장과 씨름하는 푸른 밤
몰두할수록
나는 더욱 가벼워진다
명농당
평화동 언덕길에 있는 조그만 빵집
볼록하고 오목한 빵들 줄지어 놓여 있는 진열대는
초가집 촘촘하던 부내마을이다
갓 구워 나온
누릇누릇 봉긋한 단팥빵
빵과 빵 사이
들여다볼수록 걸어 들어가 그 품에 안기고 싶은 사잇길
탈곡을 막 끝낸 볏단들을 모아
두툼하게 지붕을 덮던 날
풀어 헤쳐진 잘 익은 볏짚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났다
캄캄한 오븐 속에서
노랗게 부풀어 오른 뜨거운 生
열어보니
하얀 속살 속 캄캄한 것들, 햇살에 빛난다
어깨동무하고 싶다
*이명 : 경북 안동 출생. 2010년 ≪문학과창작≫으로 등단.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앵무새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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