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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신작시/황인찬/종로일가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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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황인찬
종로일가
새를 팔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새를 사는 사람이 없었다
새는 떠나고 나는 남았다
물가에 발을 담그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 먼저 든다
종치는 소리가 들리면
새가 종에 부딪혔나보다
하는 생각이 지워진다
할아버지,
하고 아이가 부르는데 날 부르는가 해서 돌아보았다
두희는 알고 있다
공원을 헤매는 작은 다람쥐는 지난여름 묻어둔 도토리를 찾는다 거기에 기쁨은 없다 바글대는 잉어 떼에게 먹이를 던지면 흰색, 붉은색, 노란색, 검정색이 모두 첨벙거리며 뒤섞이고 그것은 일종의 장관을 이룬다
어두운 수풀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은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사랑한다 아이스크림을 쥔 아이가 넋 나간 얼굴로 그 옆을 걷는다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알지 못하는 채로
때로 일이 잘 풀릴 때도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하느님이 도우셨어, 라고 말한다 갑자기 비가 내린다면 물가의 망초들이 자라겠지 망초들은 생각 없이 자란다 그것들은 꽃이 작고 많다 거의 사람만 하다
그러나 어떤 것도 잘못되지는 않았다
잘못은 아니다
새들이 전선 위에 줄지어 앉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새들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래도 새들은 이곳을 내려다보고 하늘은 점점 어둡다
그리고 폭우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 내린다
아이가 집에 들어온 것은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일이다
성철아, 손부터 씻어라 비가 오기 전에 들어와서 참 다행이야 하느님이 도우신 거야
바깥의 것들이 물에 휩쓸려가는 동안, 엄마는 말한다
*황인찬 : 1988년 안양 출생, 2010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구관조 씻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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