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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신작시/안희연/플라스틱 일요일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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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4,606회 작성일 15-07-08 15:21

본문

신작시
안희연

플라스틱 일요일


이 방 창문에선 나무들이 아주 가까이 보여. 가끔 나무가 흔들리다가 눈빛이 검게 변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면 나무는 그저 나무일뿐이지만,
종이로 만든 새를 날려 보낸다. 기도는 새가 될 수 있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문틈으로 스며드는 빛을 보며 제발 나를 찌르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맹수를 쏘고 꿈에서 깨어났어. 아니, 번번이 죽은 짐승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쏘았지.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겠어. 손에 들린 가위와 머리카락,
안으로 잘 닫혀 있는 물고기들처럼. 물에 가까운 얼굴을 갖기 위해 두 눈은 더 오래 흘러넘쳐야 하는지 모른다.
왜 아무 것도 살아 움직이지 않는 거야? 파랗게 질린 입술로 올려다보는 저녁. 날아가던 새떼가 멈춰 있는. 잘 깨지지도 않는 하늘.
외투가 먼저 돌아와 있는 방에서. 우리는 익숙하게 마주앉아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에겐 따뜻한 잠이 필요했다. 주저앉아 울 햇볕이라도 좋았다.




탁묘


우리가 두고 온 것이 흔한 우산이었으면 좋겠어
너는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말한다
고작 일주일간의 여름휴가일 뿐이야
일주일은 아주 짧은 시간이라구

너는 계속 침울하다
걷고 있지만 한 걸음도 떠나지 못한다

버려졌다는 기분이 들면 어쩌지?
기차에 앉아서
우리가 곧 데리러 간다는 걸 알고 있을까?
낯선 나라의 음식을 앞에 두고

네가 펼친 지도에는 앞이 없다
네 눈동자에는 고름처럼 시간이 고여 있다

뒷모습은 짐작하지 못한 방향에서 탄생하는 것
어떤 길은 낮잠 같았고 어떤 길은 발톱을 세웠다
앞으로는 기억을 부위별로 저장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어
우리는 구석에 놓인 두 개의 검은 비닐봉지처럼 

차들이 쌩, 하고 지나가고
회전문이 빠르게 돌아가고
접시 위로 접시가 쌓이고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고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보았다 
이쪽으로 되돌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사과는 기억하고 있을까? 
제 몸을 통과해 간 태양과 바람의 행방
씨앗을 쓰다듬던 밤의 손길

왜 괜한 사과 얘기는 하고 그래?

고양이 하나를 맡겼을 뿐인데
우리의 여행은 
되돌아가기 위한 여행이 되었다
우리는 떠나온 적도 없고 서로를 버린 적도 없다고 말해야 했다


*안희연 : 2012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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