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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신작시/금은돌/허물어지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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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3,200회 작성일 15-07-08 15:25

본문

신작시
금은돌

허물어지다 
 

그대 얼굴 속으로 나비 한 마리 들여보내요
날갯짓이 다른 나비를 불러들여 투명해지도록 춤추어 보는 일
그 날갯짓으로 자장자장 잠들어 보는 일, 그 숨결로 토닥토닥 해보는 일 
만져 보아야 아는 일

무릎에 숨어있던 푸르스름한 배추포기 겉장을 뜯어내고
알맹이 속으로 들어와, 들어와, 노란 빛을 뜯어 먹어보아요
그 빛을 다 파먹고 갉아 먹으며 들어와, 은은한 파도 한 장 심어 놓는 일 
포말이 허벅지 살을 적시고 퍽퍽한 살을 소금에 절여 놓을 때
늘어진 아랫배를 베어내어 그대의 파장을 끌어들일 때
물살이 허리를 녹이고 손가락을 분지르는 일

손가락으로 그대를 감싸 안는 건
그대의 손목마저 잘라내고 싶은 것이었죠
무너지다 보면 모래사막 위에 깃발 하나 꽂고 바라보겠지요

상처 입은 깃발을 허벅지에 매달아 놓고
그대가 움찔할 때마다 내가 대신 펄럭이겠지요
너덜해진 깃발을 머리에 꽂고 지하철 타고 개찰구를 통과하다보면
교통카드 모서리에 비좁은 내가 맞춰지겠지요

개찰구 안으로 나를 날카롭게 들이미는 일

평범하게 통과할 수 있을까요?
그이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요?

상념에 젖다가 얼굴 한쪽을 파먹어 봅니다
너의 손이 들어왔기에, 네 손이 껍질을 깨고 들어왔기에

눈썹 뽑아 내리기, 살점 떼어내기, 엉덩이 주저앉히기, 죽음의 집에서 그들과 우리의 표정 대조해 보기, 말없이 말 없어지기  

때로는 얼굴을 지키기 위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보아요, 쓸어 올린 껍데기 속에서 길을 헤매이다, 그러다 보면 검붉은 덤불숲을 만나겠지요? 가슴을 짓누르는 뚜껑들이 인공위성으로 떠돌아다니고 

그 목덜미에 걸린 나의 계단 귀퉁이에서 

나비가 제 몸을 부딪고 있네요 
작살비를 날갯죽지로 받아내다 찢어진,




물 잔 위에서 펼쳐지는, 


그녀 입술이 닿았던 물 잔에 그의 입술이 닿으려 하네
(왜 하필 집어든 잔이 그녀의 것이어야 했을까)

그녀 입술은 서쪽 그늘이 드리워진 연잎의 물방울을 만들어 내고
그의 입은 또르르 튕겨내는 널찍한 잎사귀 끝에 매달려 있네

이쪽에서 물 마시는 소리가 그의 목울대를 타고 넘어가 지하 암반수 고이는 종유석에 가 닿을 때까지, 천년에 걸쳐 다려지는 물 한 방울이  

두려워라, 그녀의 오늘, 김치찌개 백반과 고춧가루 알갱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던 연두부의 찰랑임과 목덜미를 타고 흘러가는 기억 몇 방울까지, 샤워실에서 닦아내던 민트향 치약과 입안을 헹구어 낸 지난밤 소주 몇 잔까지, 그녀의 첫 사랑과 그녀와 또 다른 그의 그것을 핥아먹었을 그네들의 무수한 뇌수까지 

그녀가 흘리는 생각을 먹으며, 그가 그곳을 마시고 있네  

그 위에서 펼쳐지는 겹쳐짐의 바다
(왜 내가 아니고 그녀여야 했을까)

그녀가 다리를 꼬는 사이
물 한 잔 속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국지성 호우가 쏟아진다네

저쪽과 이쪽이 흔들리며
나는 작고 얄미운 것들을 꼬집고 있다네 


*금은돌 : 2013년 현대시학으로 데뷔, 연구서 거울 밖으로 나온 기형도가 있음. 현재 중앙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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