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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특집1/현대시와 방/이은규/내밀한 방, 물결 일렁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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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 현대시와 방
이은규
내밀한 방, 물결 일렁이는
가을 그리고 가을, 아껴놓은 시편들과 함께 몽상가의 문장들을 펼친다. 바슐라르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 “시인의 방은 말, 어둠 속을 돌아다니는 말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문장을 참조점 삼아 ‘방’과 관련된 시편들의 ‘물결’과 마주해 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방’이 ‘물’이라는 물질성으로 이뤄진 공간이라면, 우리는 저마다의 내밀한 무한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물이 운명의 한 타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까. 궁극적으로는 “유동하는 이미지의 공허한 운명, 미완성된 꿈의 공허한 운명이 아닌 존재의 실체를 끊임없이 변모시키는 근원적 운명”(가스통 바슐라르, 이가림 역,『물과 꿈』, 문예, 2004, 17면.)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방-물결 1
저수지마다 물의 방이 있지는 않지만, 내 왼쪽 저수지는 고요했기에 매년 사람이 빠졌다 물의 낭떠러지에 물의 방이 있어야만 했다 얼음장이 움푹 꺼질 때의 탄식만을 본다면 물의 방은 수심이 그은 금의 내부이다 언젠가 얼어버릴 물의 시퍼런 능선이 가시를 내밀었던 자국까지이다 물의 뼈는 수은 같은 금속이라 단단하고 자유롭다 그러니까 물고기는 물과 수은을 닮아 푸른 등뼈를 만들었다 물의 방에도 비늘과 아가미가 있어 물고기와 비슷하다 물풀처럼 일렁이는 이야기는 부레 없이 지느러미 각주를 달고 물의 시렁에 뼈만 추스려 얹었다 가끔 죽은 뼈가 닿으면 물의 속눈썹부터 손사래를 쳤다 내 안에 부릅뜬 사람이 있듯 물의 어두운 곳에 물의 영혼이 있다 물의 침전물이 고스란히 간직되듯 내 안의 사람은 다시 나를 느낀다 수면의 악다구니와 달리 물의 방은 어제 가위 눌린 눈물이 필사되는 곳이다 물이 일일이 울고 있다
-송재학,「물속의 방」전문
작품의 제목은 ‘물속의 방’. 모든 “저수지마다 물의 방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시적 주체인 ‘나’는 자신의 “왼쪽 저수지는 고요했기에 매년 사람이 빠졌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에게는 순리인듯, “물의 낭떠러지에 물의 방이 있어야만 했다”. 문득문득 “얼음장이 움푹 꺼질 때의 탄식만을 본다면 물의 방은 수심이 그은 금의 내부”가 된다. 기록되지 않은 삶은 “물풀처럼 일렁이는 이야기”로 변하고, 그것은 “부레 없이 지느러미 각주를 달고 물의 시렁”에 자리한다. 전개가 이어질수록 시적 분위기는 죽음의 이미지를 짙게 드리운다. “죽은 뼈”가 가닿는 “물의 어두운 곳에 물의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물의 침전물이 고스란히 간직되듯 내 안의 사람은” 반드시 “다시 나를 느낀다”. 가까스로 이어가는 “수면의 악다구니와 달리 물의 방은 어제 가위 눌린 눈물이 필사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물이 일일이 울고 있”을 수밖에. 어쩌면 일일이 우는 것은, 물의 몫이며 운명일 것이다.
문득 떠오른 산문 한 대목을 나눠보자. 모네의 수련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며 시인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적어놓았다. “수면 위로 빛의 온갖 굴절과 반사가 광합성처럼, 현기증처럼 일어난다. 그러나 넓고 깊은 물 아래 회오리치는 진흙과 수련의 뿌리는 뒤엉키거나 폭발하거나 질식할 것 같은 혼돈을 거쳐 간다. 혼돈은 생성과 소멸의 가장 중요한 회로이다. 혼돈이 오래될수록 수련은 희고 붉은 꽃잎을 진하게 토해낸다. 물 아래가 더 신산할수록 꽃잎의 색은 점점 단순해진다. 햇빛은 물 아래를 꿈꾸는 것이다.”(송재학,『풍경의 비밀』, 랜덤하우스, 2006, 16면.) 결국 꽃도 햇빛도 우리도 “물 아래를 꿈꾸는” 존재들이다. 이처럼 ‘물속의 방’은 끊임없이 “아래를 꿈꾸는” 한 존재의 내밀한 방이라고 할 수 있다.
물결-방 2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찰칵,
네 얼굴이 켜졌어
누가 기억의 스위치를 누른 것일까
그러나 이내 네 얼굴은 꺼지고
깨진 유리조각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었지
네가 쓰다 만 페이지,
자동차 바퀴가 멈춘 곳에서 유리벽은 자라나
점점 불투명해지고 단단해졌어
새소리가 나를 일으키지 못하고
눈부신 햇살도 유리벽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지금 여기는 어디일까
난파된 배처럼 가라앉은 방
거기 춥지 않아?…… 어둡지 않아?…… 무섭지 않아?
성에 낀 유리벽을 향해 하염없이 중얼거렸어
까마득한 곁에 누운 너를 향해
감긴 네 눈을 감겨주고
닫힌 네 입술을 어루만져주고
굳은 네 손과 발을 쓸어주고
식은 네 가슴에 흰 꽃을 놓아주고
그렇게 몇 시간을 누워 있었을까
간신히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갔어
물을 틀었어
뜨거운 물이 몸 위로 흘러내리고
불투명한 유리벽이 천천히 녹아내렸어
네 얼굴처럼
-나희덕,「불투명한 유리벽」전문
이어지는 방은 ‘불투명한 유리벽’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작품 말미에 나오는 “난파된 배처럼 가라앉은 방”은 ‘물’의 이미지를 갖는다. 시적 주체는 “네 얼굴이 켜”진 이유에 대해 묻고 있다. “누가 기억의 스위치를 누른 것일까”. 어떤 존재가 “쓰다 만 페이지”를 대면해야하는 시적 주체의 시선에 벽이 보인다. 그것은 “자동차 바퀴가 멈춘 곳에서” 자라난 “유리벽”이다. “점점 불투명해지고 단단해”져가는 벽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 “벽은 견고한 차단 ‧ 유폐 ‧ 봉인의 상징”인데, 순간적으로 균열이 생기면 틈이 되기도 한다. 가혹하게도 “죽은 자는 살아 있을 때보다 더 강력하게 주체의 내면의 심층에 자리 잡고서 그녀의 영혼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고 실존적 무력감에 직면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그녀가 가까스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the capacity to be alone)을 회복”(남진우,「더 먼 곳에서 돌아오는 말」, 나희덕,『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지, 2014, 147면.)하게 된다는 진실이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새소리도 나를 일으키지 못하고, 눈부신 햇살도 유리벽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난파된 배처럼 가라앉는 방”에 스스로를 유폐시킨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감긴 네 눈을 감겨주고/닫힌 네 입술을 어루만져주고/굳은 네 손과 발을 쓸어주고/식은 네 가슴에 흰 꽃을 놓아주”었지만 애도는 끝이 없다. 이처럼 우리는 시적 공간에 이르러, 저마다의 내면으로 이루어진 ‘방’을 발견하게 된다. 그 공간을 물들이는 감성이 어떤 것이든, 슬픈 것이든 무거운 것이든, 그것이 시적 표현을 얻게 되자마자, 그 감정은 공간성을 넘어 무한히 확장되기 때문이다.(가스통 바슐라르, 곽광수 역,『공간의 시학』, 동문선, 2003, 341면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 방에서 울려 퍼지는 질문과 질문들. 끝내 들려오지 않을 대답은 얼마나 아득한가. 그 아득함은 온전히 시적 주체의 몫이며 운명일 것이다. “거기 춥지 않아?…… 어둡지 않아?…… 무섭지 않아?” 들려오지 않는 대답으로 인해, 모든 내밀한 방은 이토록 춥고 어둡고 무섭다. 또한 모든 물속은 춥고 어둡고 무섭다. 이때의 존재는 “성에 낀 유리벽을 향해 하염없이 중얼거”리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리게 된다. 혹은 무력감마저 상실한 상황일수도 있다. 이토록 치열한 무력감이라니, 결국 “불투명한 유리벽이 천천히 녹아내”릴 때 약속처럼 떠오르는 것은 “네 얼굴”.
방-물결 3
오후 두 시 방향으로
나는 상자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얇게 접어둔 다리
의자는 새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앉아 있던 잠이 툭 떨어져 내린다
의자가 쓰러지고
새가 아름답게 나는 방
오후 네 시 방향으로
나는 물병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흠뻑 젖은 주둥이로 다리를 조금 흘린다
관 뚜껑을 적시는 문장
화분은 고양이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깨진 고양이가 내 손등을 할퀸다
씨앗이 퍼진다
갈라진 손등에 고양이를 묻고
해 질 녘 손의 음송
오후 여섯 시 방향으로
나는 기다란 악기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붉은 손가락으로 관 속의 다리를 연주한다
커튼은 물고기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젖히자 출렁이는 강물 속
내 다리가 아름답게 흐르는 방
-신영배,「나의 아름다운 방」전문
다음으로 ‘아름다운 방’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의 방은 마지막 연에서 볼 수 있듯이 “출렁이는 강물 속/내 다리가 아름답게 흐르는” 공간이다. 이를 소급적으로 적용해서 시적 주체인 ‘나’의 정체성에 관해 알아보자. “‘나’의 몸은, 어떤 변용도 허용된 그림자이고, 천변만화하는 그림자-방 전체이다. ‘나’는 세상의 모든 그림자를 가진다. 상자의 그림자, 물병의 그림자, 기다란 악기의 그림자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리고 그림자는 그림자를 낳는다. 상자는 의자를, 의자는 새를, 물병은 화분을, 화분은 고양이를, 악기는 커튼을, 커튼은 물고기를, 물고기는 내 다리를……그림자는 그림자로 이어지고, 각각의 그림자는 맞물린 연쇄 속에서 이중, 삼중, 겹겹으로 제각각 흐른다. 이 리드미컬한 흐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음악이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불협화의 협화 혹은 협화음의 불화라는 역설이 그녀의 방 전체를 이룬다. 시각적 음악의 형상이야말로 이 방의 진정한 모습이다. 이 방이, 그리고 이 방의 주인인 ‘내’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녀가 상자, 물병, 악기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의 그림자를 가졌기 때문이다. 무궁한 형태 변화를 허락받은 그림자-몸은 사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객관적 실재의 지루한 고정성을 유연한 변동의 장으로 탈바꿈시켜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는 시공간을 아득한 진공의 무한한 떠다님으로 만든다. 이것은 꿈일까? 아니, 그림자-그녀에게, 이것은 현실이다. 아마도, 매우 진정한 현실. 그러니 이러한 현실을 지각하는 그녀의 방식은 형태 변화의 자유만큼 자유롭다.”(강계숙,「그녀 그림자 되다」, 신영배,『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문지, 2009, 114~115면.)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 이 시 속의 자유는 자유롭지 못함을 담보로 하는, 또는 전제로 하는 자유로움일까. 아니면 자유를 넘어서는 자유일까.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어쩌면 ‘나의 아름다운 방’은 ‘나의 기이한, 아름다운 방’인지도 모른다. ‘기이하고 아름다운, 아름답고 기이한 방’ 말이다. 도처에 “관 뚜껑을 적시는 문장”들이 흐르는 방이므로. 과연 이러한 문장은 얼마나 깊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을까, 물들게 될까.
물결-방 4
내 방에는 벤치가 있다
안에 있는 바깥이고 겉을 둘러싼 속이다
외출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달라서
우리는 매일 죽고 다시 난다
벤치는 늘 죽은 나로 비좁다
왜 그러고 살아
그러고 사는 게 아니라 살려니 그러는 거지
나였던 나와 나였었던 나의 담소는 마른 화초처럼 권태롭다
다행히 그들은 음악을 애호하는 취향이 같다
남향의 집에는 귤빛 볕이 가득하고
벤치의 나와 나는 서로 어깨에 기대 선잠에 든다
나와 내가 장난인 듯 벤치를 집밖으로 들어 옮기려 한다
하지만 벤치는 식물성이고 뿌리가 깊다
우리 중 누군가 몰래 물을 주고 있다
나로서의 기억도 잊은 오래된 나는, 오늘도
“네가 있어서, 나는 내가 찾아 헤매던 것이 너인 줄 알았다”
라는 문장이 뒤를 잇지 못한다
이제 나는 거의 벤치와 하나가 되었다
벤치의 발치에 누워 빤한 운명을 긍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내일이면 벤치는 더욱 비좁겠지만
우리는 모두 벤치를 사랑할 것이 분명하다
그가 벤치에 앉기 전 잃어버린 문장은 무엇이었을까
벤치는 열린 결말처럼
-이현호,「벤치」전문
끝으로 ‘벤치가 있는 방’을 살펴보자. 작품의 첫 문장인 “내 방에는 벤치가 있다”는 시적 주체의 진술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이 방은 “안에 있는 바깥이고 겉을 둘러싼 속이”기도 하다. 경계에 자리한 방과 존재. 그는 “외출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는 쓸쓸한 문장에 갇힌다. 그보다 더 쓸쓸한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달라서/우리는 매일 죽고 다시 난다/벤치는 늘 죽은 나로 비좁다”는 문장. 그렇구나, 죽어나는 ‘나’만 잉여롭다. 누군가 “왜 그러고 살아” 물었을 때 그는 “그러고 사는 게 아니라 살려니 그러는 거지”라고 답할 뿐이다. “나였던 나와 나였었던 나의 담소는 마른 화초처럼 권태롭다”는 문장은 잉여로운 존재들의 총체다. 불변하는 것은 “음악을 애호하는 취향”뿐. “벤치의 나와 나는 서로 어깨에 기대 선잠에” 드는 밤의 풍경이 기이할 만큼 고요하다. “나와 내가 장난인 듯 벤치를 집밖으로 들어 옮기려”하지만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나’와 ‘나’의 보이는, 안 보이는 숨바꼭질을 끝이 없으므로, “이제 나는 거의 벤치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위의 내용과 같이 시인의 슬픔은 “습기 찬 날씨의 독감 탓이기도 하지만 연인과의 헤어짐이나 친구의 죽음처럼 사랑하는 타인을 상실한 마음의 병이 더 깊어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보다 더한 원초적 미지의 결손을 겪었기에,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이 실내 생활자는 연인과 한방에 사는 나날들에도 마음이 그다지 나아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날짜 없는 세계에서 사건은 새로 발생하더라도 일회적 고유성을 얻지 못하고, 사랑은 다시 찾아오더라도 누구든 너로 통칭될 것이다. 는개 속에서 모든 사물이 윤곽을 잃듯.”(윤경희,「날씨와 별자리의 방」, 이현호,『라이터 좀 빌립시다』, 문학동네, 2014, 129면.)말이다. 이처럼 ‘날씨와 별자리의 방’에는, 언제나 “열린 결말처럼” 벤치 하나가 놓여있다.
지금까지 ‘물속의 방’을 시작으로, ‘불투명한 유리벽’과 대면했다. 또한 이토록 ‘나의 아름다운 방’에 ‘벤치’하나 놓여있는 풍경을 통과했다. 다시 몽상가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방-물결’로 이루어진 공간에서의 “몽상은 때때로 무한한 반영”과 “음악으로 소리를 내는 맑은 물 앞에서 시작”된다. 그리고는 “마침내 몽상은 그 슬프고 음울한 물의 중심, 이상하고 불길한 중얼거림을 전하는 물의 중심에서 끝나는 것이다. 물 옆에서의 몽상 또한 물속에 잠기는 세계와 마찬가지로 사자(死者)들을 다시 발견하면서 죽어가는 것이다.”(가스통 바슐라르, 이가림 역, 같은 책, 95면.) 오늘밤도 ‘내밀한 방, 물결 일렁이는’ 그곳을 유영하고 있을 한 시인을 위해 침묵, 다만 다가오는 물결 또는 멀어져가는 물결이여 안녕.
*이은규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다정한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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