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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특집2/제 1회 전국계간지작품상/김하경/수상작 '공중그네'/심사평/수상소감/신작 'MAKE-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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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제 1회 전국계간지작품상
김하경
수상작
공중그네
우리 동네 공사장
18층 빌딩에 한 사내 줄타기 한다
공중정원에 사방팔방 스치는 바람 속
삶을 꿈꾸는 페인트 공 손끝이 환하다
하늘을 팽팽히 버티는 시간
손때는 언제나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지루한 녹물이 벗겨진 자리
늙은 부모와 자식 얼굴처럼 동그랗다
대롱대롱 외줄에 몸을 맡기고
벽면에 붙은 제 그림자를 따라 색칠하던 한낮
붓 끝이 만난 그림자 언저리
12시 정오가 시침과 분침처럼 둥글게 찰칵거린다
시간은 언제나 과거가 되지만
새로 그린 그림, 하늘에 오늘의 꽃이 핀다
낡은 시간을 잡고 앉아있는 페인트 공
고개 들고 바라보는 어린 눈망울을 의지한다
벽면에 환한 해가 뜬다
- 시와사람 2013년 여름호
선정평
제 1회 문예지작품상으로 계간 열린시학은 김하경의 「공중그네」를 선정했다. 여섯 분의 작품이 예심을 통과해 올라 왔다. 모두 일정한 수준과 자신만의 목소리를 확보한 작품이었다. 고심 끝에 우리는 시적 표현과 시적 사유가 명징하게 조화를 이룬 「공중그네」를 문예지작품상 선정작으로 결정했다. 어떤 분의 작품은 시적 표현은 좋은데, 그 표현에 부합하는 시적 사유가 따라주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분의 작품은 시적 사유가 아주 단단한 데에 비해 시적 표현이 진부하거나 모호했다. 두 요소가 적절하게 교직하여 상승의 효과를 드러낸 작품은 「공중 그네」였다. 이 작품은 외줄을 타고 작업하는 페인트공의 애환을 진정성 있게 그린 수작이다. “18층 빌딩” 앞이라는 공간과 “하늘을 팽팽히 버티는 시간”이 만나는 지점에 페인트공이 매달려있다. ‘늙은 부모’와 어린 자식을 가진 그의 삶은 “지루한 녹물이 벗겨진 자리”처럼 애잔하다. 그러나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오늘의 꽃”을 그려 넣는다. ‘환한 해’가 뜰 때까지……. 외줄에 매달려 일하는 청소부나 페인트공에 관한 기존의 작품들은 현실의 안타까움과 부조리를 위악적으로 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김하경의 「공중그네」는 그것을 뛰어넘는 긍정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시적 전개의 자연스러움과 현실인식을 내재한 따뜻한 미의식. 이것이 김하경의 시를 선정하는데 중요한 포인트로 작용했다.
-심사위원: 이지엽, 하린
당선소감
문예지작품상을 수상하게 되어 기쁘고 또 감사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제가 수상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감히 이 상을 받아도 되는지 고민부터 됐지만 한편으로는 마구 설렙니다. 저에게 시는 늘 ‘가을을 타는 것’과 같았습니다. 시를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도록 행복해지다가 가슴 저리고 아픕니다. 원하는 글이나 마음에 맞는 단어를 찾아 쓸 때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만족시킬 것 같아서 행복했다가도 금방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걸 깨닫고 또 얼굴이 붉어지면서 부끄러웠습니다. 가을 날 단풍은 한 없이 약한 바람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글을 읽기도 좋고 쓰기도 좋은 계절이 가을인가 싶습니다.
저는 시를 쓰면서 늘 생각했습니다. 꼭 약한 바람에 떨어지는 단풍잎은 되지 말자고.
이 상을 통해 시에 대한 저의 생각을 되돌아 봤습니다. 이젠 생각을 조금 바꿔보려 합니다. 약한 바람에 매달리기보다 열매 맺을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그리고 시가 더욱 단단하게 익거나 여물어 갈 수 있도록 다져보겠다고…….
늘 시는 가을걷이다. 생각하며 부단히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더욱더 크고 굵은 열매, 그리고 단단하고 잘 익은 열매처럼 쓰려고 합니다. 아울러 부족한 저에게 문예지 작품상을 수상하게 도와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늘 응원해주시는 지인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를 더욱 더 사랑하게 깨우쳐준 문예지작품상, 관계자 분들 그리고 함께 모든 해주신 분들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신작
MAKE-UP
낮선 여자 얼굴을 본다
밭이랑 같은 주름살과 거친 피부
지나온 시간이 꼼꼼히 삭고 있다
시퍼렇게 질려가는 아침
분첩 두드릴 때마다 두꺼워진 화장
흙손은 피부 여백을 말끔히 발랐다
세월은 빠르게 스며들었고
살결을 못보고 살던 때
흐른 땀 닦아내면 결백했다
여분조차 없이 늙는 잔주름 끝
자외선 차단용 파운데이션 덧바른다
자글자글한 어제 완벽하게 감췄다
궁핍과 허기를 채우기 위해 길을 나선 얼굴
화장기 짙은 여자
감쪽같이 여백을 메운 혈색 좋다
모두가 제각각인 오늘
민낯은 더 잃을 것도 지울 것도 없다
노을의 고단한 그림자가 계단을 오른다
마감재 같은 저녁이 짙게 발려
내일은 싱싱하다
*김하경 : 전북 익산 출생. 2012년 열린시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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