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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특집2/제 1회 전국계간지작품상/권경아/총평 '5인5색의 풍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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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제 1회 전국계간지작품상
권경아
5인 5색의 풍경화
1
김나영의 「욱」은 시간이 흐르며 삶에 적응해가는 인간이 때때로 경험하게 되는 사랑과 혁명의 ‘기억’에 관한 시이다.
청춘의 한 시절을 장식했던 ‘사랑과 혁명’. 혈기왕성했던 다혈질의 ‘나’와 함께 청춘을 보낸 친구를 기억한다. ‘종욱’이었던가, ‘진욱’이었던가 아니면 ‘동욱’이었던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름에 ‘욱’이라는 글자로 기억되는 그 친구와 함께 젊은 시절에 “사랑과 혁명을 도모”할 정도로 우리는 충분히 위험했다. 지금쯤 착한 여자 만나 조용히 잘 살고 있을 그에 대한 기억은 시적 화자의 젊음을 장식했던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혁명을 꿈꾸던 “뾰족하던 그의 정신”도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예전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던가. 사회적 동물답게 이 사회에 적응하며 사회화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열심히 일을 하며 “적금통장 부풀리는 일”에 전력질주 하고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흑백에서 칼라로
옷만 바꿔 입었을 뿐이라고
그가 내게서 와락! 돋아난다
푸른 주먹을 불끈! 쥔다
겉이 아니라 속을 바꿔야 한다고
내 안에서 수없이 종주먹을 꺼낸다
세상을 향해욱어퍼컷을 날린다
- 김나영, 「욱」 중에서
예전과는 다를 ‘욱’의 모습은 또한 ‘우리’의 모습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변해가는 모습 속에서도 가끔 ‘욱’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예전의 ‘욱’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흑백에서 칼라로” 바뀌었어도 가끔 “와락!”하고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사회화 또는 적응이라 부르며 속물이 되어가는 ‘나’의 모습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것이 있다.
“내 안에서 수없이 종주먹을” 꺼내는, “세상을 향해 ‘욱’ 어퍼컷”을 날려보는 행위는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으로 불리지만 결국은 속물이 되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반항의 몸짓이다. 이 시는 살아가며 희미하게 잊고 살았던 지난 시절의 ‘사랑과 혁명’을 기억하는 시이다.
2
천선자의 「고양이, 나비를 잃어버린 아이」는 삶에 황폐해진 한 남자의 고통이 몽상과 혼재되며 그려지고 있다. 화려한 불빛을 조용히 빠져나온 승용차가 어둠이 깔린 빈집 주차장에 서고 한 남자가 조용히 내린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남자는 용모로 보아 화려한 불빛의 도시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화려한 불빛을 빠져나와 그가 향한 곳은 “어둠이 깔린 빈집”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겉으로는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과 정신은 외롭고 고독하다는 것은 그의 손에 들린 소주가 담긴 “검은 비닐”이 말해주고 있다.
검은 봉지에 얼굴을 묻고 숨을 크게 들이쉰다.
몇 번이고 반복 하던 남자의 흐린 눈동자는 별이 된다.
몽상가가 된 남자는 검은 봉지 속으로 들어간다.
검은 봉지는 남자가 밖으로 달아나지 못하도록 온힘을 다해 팽창한다.
빵빵해진 무력감이 남자를 가볍게 들어올린다.
편안한 자세로 마당 한 가운데 눕고 달그림자가 봉지 위에 길게 눕는다.
남자는 지금 환각의 횡성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 천선자, 「고양이, 나비를 잃어버린 아이」 중에서
검은 비닐은 남자의 어두운 삶을 상징하고 있다. “검은 봉지에 얼굴을 묻고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본다. 술을 마시고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남자가 숨을 고르며 진정하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오히려 그는 검은 비닐의 어둠 속에 파묻히고 있다. “검은 봉지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몽상가가 된 남자”가 봉지 속으로 들어간다는 상상력은 그가 결국 몽상 속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둠에 침잠해 버리는 형상. 검은 봉지는 온힘을 다해 팽창해 남자를 가두고 있다. “환각의 횡성”을 만들어 몽상으로 들어가 버리는 남자는 삶의 어둠과 고통을 피해 더 큰 어둠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시는 삶의 고통과 어둠을 더 큰 어둠으로 덮어버림으로써 더 큰 환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삶을 사랑하고 끌어안는다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있다. 남자는 담장 위의 도둑고양이를 보고 언제나 남자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아버지가 키운 그 고양이”를 생각한다. 고양이를 피해 마당 끝에 주저앉은 남자는 꿈을 잃는 아이와 같다.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 남아 시인을 주저앉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남자가 잃어버린 나비는 지금쯤 어디를 날아가고 있을까.
3
오대교의 「샛길」은 살아가며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바른 길로 올곧은 길로 걸으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하는 시이다.
초등학교 시절 샛길로 빠지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학교까지 빨리가기 위해 이런 저런 샛길을 누비던 친구를 따라 딱 한번 따라간 적이 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학교까지 빨리 갈수는 있었지만 왠지 샛길에는 정이 가지 않았던 시인은 “그저 한길이 좋았다”라고 말한다. “넓고 거침없는 한길” 그것은 바른 길이며 옳은 길, 타협하지 않은 올곧은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 그 친구는 장사꾼이 되어서도 샛길로 다녔다 한다. 정직한 사업의 길이 아닌 그저 빨리만 가려한 그 친구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던 망육(望六)의 어느 날
그가 급사했다는 부음을 받았다
마지막 길도 샛길로 빠져버린 친구
장례식장에 다녀오면서
그가 곧잘 사라지던 길을 보았다
한번 걸어볼까 하다
그냥 한길을 걸어 집으로 왔다
- 오대교, 「샛길」 중에서
그렇게 어린 시절에 이어 평생을 샛길 인생으로 살다가 “마지막 길도 샛길로” 빠져버린 친구. 샛길 친구가 급사했다는 부음을 받고 장례식장에 다녀오며 시인은 착잡하기만 하다. 그가 곧잘 사라지던 ‘샛길’. 마지막 길도 샛길로 빠져 친구들보다 먼저 죽음의 세계에 가버린 친구를 보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시인은 생각하게 된다. 그가 곧잘 사라지던 그 길은 대체 어떤 길이기에 친구는 그토록 그 길을 고집했던 것일까. “한번 걸어볼까”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시인은 자신의 길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걸어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냥 한길을 걸어”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시인은 자신의 한길을 지금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샛길과 한길의 대비를 통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길인가를 성찰하게 하는 시라 할 수 있다.
4
고명자의 「헝겊인형」은 버려진 헝겊인형에 대한 묘사가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기댈 담벼락도 없는 가로수길 옆에 버려진 헝겊인형이 있다. 겨울 매연이 가득한 바람찬 거리에 헝겊인형이 버려져 있다. “눈총 따위 손가락질 따위 발끝으로 쓱쓱 뭉개고” 있는 헝겊인형. “망가진 코사지만으로도 너는 아름답게 버려진 저녁”이 되는 헝겊인형. 초라하게 버려진 헝겊인형이 시인의 시선을 끈다. 이상하게도 자꾸만 끌리는 헝겊인형.
순서 없이 껴입은 붉은 겨울은 짧거나 구겨졌거나 얇거나
미쳐서 아름다워 보인다는 험한 말이 내 목구멍을 넘어오고 말았다
누더기인 네 입술이, 눈빛이 겨울 저녁을 뜨겁게 달궈놓는다
하마터면 손 내밀 뻔했다, 다 버리고 붉음 한가지만을 기억하는
너의 집착을 데리고 집으로 올 뻔 했다
손발을 냄새를 씻기고 머리 빗겨 밥 떠먹여줄 뻔 했다
사십쯤 아니 사백 살쯤에서 멈춘 네 이름을 불러줄 뻔 했다
- 고명자, 「헝겊인형」 중에서
시인은 이 인형에 매혹되고 있다. “순서 없이 껴입은 붉은 겨울은 짧거나 구겨졌거나 얇거나” 어떤 모습이든 이상하게 헝겊인형이 눈에 밟히는 것이다. “미쳐서 아름다워 보인다는 험한 말”이 시인의 목구멍을 넘어오고 만다. 그냥 아름답게 느껴지고 있다는 것. 시인은 그저 그 헝겊인형에 매혹되고 있는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누더기인 네 입술이”, 그 눈빛이 “겨울 저녁을 뜨겁게 달궈놓”고 있는 것이다. “하마터면” “손 내밀 뻔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다 버리고 붉음 한가지만을 기억하는 “너의 집착을 데리고 집으로 올 뻔 했다”고. 손발 냄새를 씻기고 머리 빗겨 밥 떠먹여줄 뻔 했다.
이 시에서 시인은 헝겊인형을 통해 매혹되어 가는 과정을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매혹된다는 것은 대상이 눈부신 아름다움을 지녀서는 아닐 것이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 그저 “미쳐서”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 이 시는 버려진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매혹되는 과정이 잘 드러난 시라 할 수 있다.
5
김하경의 「공중그네」는 높은 고층빌딩에 줄을 타고 페인트를 칠하는 페인트공의 모습을 표현함으로써 소박한 소시민의 일상과 꿈을 그려내고 있다.
동네 공사장에 공사가 한창이다. 18층 빌딩에 줄을 타고 매달려 있는 한 사내. 사방팔방 바람이 스치는 공중에서 그는 페인트를 칠하며 “하늘을 팽팽히 버티”고 있다. 페인트공 “손끝이 환한” 이유는 그에게 꿈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은 언제나 과거가 되지만
새로 그린 그림, 하늘에 오늘의 꽃이 핀다
낡은 시간을 잡고 앉아있는 페인트 공
고개 들고 바라보는 어린 눈망울을 의지한다
벽면에 환한 해가 뜬다
- 김하경, 「공중그네」 중에서
“삶을 꿈꾸는 페인트 공 손끝이 환하다”에서 페인트공의 손끝이 환한 이유는 “늙은 부모와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대롱대롱 외줄에 몸을 맡기고 하늘을 팽팽히 버틸 수 있는 것은 그를 바라보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벽면에 붙은 제 그림자를 따라 색칠”하며 한낮을 버틸 수 있는 것도 공중에서 그림을 그리며 낡은 시간을 “오늘의 꽃”으로 피울 수 있는 것도 모두 “고개 들고 바라보는 어린 눈망울”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벽면에 “환한 해”가 떠오르고 있다. 그에게는 힘겨운 삶에 희망이 되는 가족이 있는 것이다.
이 시는 외줄을 타고 높은 고층 빌딩을 칠하고 있는 평범한 페인트공의 일상을 통해 소시민의 삶과 희망을 그리고 있다. 힘겨운 삶의 단면과 그 삶을 이겨낼 가족의 사랑의 대비를 통해 희망의 풍경을 담아냄으로써 힘겨운 삶을 이겨낼 희망은 결국 사랑임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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