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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소시집/소율/수박을 먹다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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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3
댓글 0건 조회 2,795회 작성일 15-07-08 14:38

본문

소시집
소율

수박을 먹다


아낙들이 모여 앉아 수박을 먹는다

오매 으짜까 거시기가 우짯다고야
푸르딩딩헌 청상과부로 산 지가 월맨디 이 복중에 
그 집 각시 배가 어쨌다고야 
그려 낯짝 유난히 빤질하드만 밤마다 숱한 머시기들 
번갈아 그 집 담장을 타 올라 넘었다고라 

푸르른 잎들 밤새 등을 돌려 불침번 섰소 
어둠 속에서만 넌출넌출 뻗쳐나던 넝쿨줄기엔 
간밤 밀애의 흔적 훈장처럼 새겨져 있고
아침이면 앞마당엔 붉은 모란잎 빛깔 더욱 붉어져왔소
덩달아 하늘 후끈 달아오르고 여름은 터질 듯이 부풀어왔소

아 글씨 고것이 은제까지 감춘다고 감춰질 일이더냐고
긍께 시방 지 뱃속에 든 얼라가 언넘 씬지는 안당가 모른당가

끝끝내 고창댁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나온 동네 아낙들 
만삭진 복부 한 가운데를 사정없이 가르고 있다 
 
오매 우짠다냐 요건 앞집 사는 박가 
흐미 으짜까 요건 건넌마을 숫총각 오가 
오매오매우짜야쓰까이 요건 이름도 성도 모르는 새까만, 것들

아낙들이 여전히 수박 속 살점들을 서걱서걱 헤집고 있다 
점점이 박혀있던 씨앗들이 당황하여 줄행랑친다

과즙이 달다 참 맛난 




달빛걷기⁕


잠깐사이 해무는 밀려왔다네 
소란했던 한낮은 입을 닫았고 
별들 졸음만 쫒고 있었네
밤바다를 끊임없이 충동질하던 달뜬 휘파람 소리 
내 집 담장을 넘어 
설익은 뒤뜰의 앵두나무 잎새를 흔들곤 사라져갔네 
그 밤 파도는 유난히 잘잘거렸네

고양이가 붉은색 장화를 목에 걸고서 바다로 들었다는 소문 돌았네
하필 그 밤, 안개는 어둠 속 바다를 안고 부표처럼 떠올랐다네
어울렁더울렁대던 가슴 한 쪽이 조금씩 더워져오고 있었네

하늘에서 별들 쏟자 바다가 해맑게 미소를 짓네
솔숲을 홀리던 밤의 향기는 공간을 끝도 없이 확장해갔네
그 밤 하얀 모래밭 위로 푸른 물 뚝뚝 흘리며 걷던 달빛 보았네  

자박자박 달그림자 발자욱 새기며 걷네 

이 밤 그렇게 임 마중 하네


⁕ “오설록”에서 생산되는 ‘차’ 이름




벚꽃축제


돈다돈다 상모가 돈다 순백의 꽃송이가 포담스런 벚꽃나무 아래
알록달록 붉은 상모가 원을 그리며 돈다 꽃향기 흩날리는 꽃길 따라 가면서 돈다 

징 장고 북
징 장고 북
징 북 장고장고 징 북 장고장고

돈다돈다 휘휘 돈다 알록달록 붉은 상모가 휘모리 장단에 맞춰
회오리바람처럼 휘돌아간다

사월이 꽃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네 
꽃망울들 팝콘 튀듯 입을 벌리자
꽃잎 속에 숨어있던 하얀 나비 떼 
한꺼번에 하늘 위로 솟구쳐 갔네 
하필 팽목항⁕이 급체를 했네

느닷없이 꽃눈 하얗게 나리고 있네
눈앞에서 예고 없이 벌어지는 황홀한 축제
착지를 찾지 못한 눈꽃송이가 허공에서 나풀나풀 떠돌고 있네
새파랗게 질려있는 꽃잎을 보네

가지 위에 매어달린 꽃송이들은 여전히 해맑게 웃고만 있어 
우네 우네 목놓아 우네 알록달록 붉은 상모들 끝끝내 만장기 휘날리며 
울면서 가네 훠어이훠어이 아주 천천히 

징, 치고 북, 치고 장고, 치고 
징, 치고 북, 치고 장고, 치고
징, 북, 징, 북, 징, 북 징 징 징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진도 앞바다 항구.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 어린 학생들을 포함 약 삼백여명의 승객들이 그곳에서 대량 희생되었다.






 이른 새벽 지척도 구분 못할 만큼의 안개 있었다
 표지판은 사라졌고 어디선가 소리로만 우는 지시방향등 따라 우리는 갔다
 나뭇가지 위에 걸쳐있던 숲이 더듬거리며 안개 속에서 떠도는 사이 
 길은 잃어버린 제 얼굴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버젓이 노상방뇨하는 후미진 철로변
 일그러진 현대인의 자화상처럼
 곳곳에서 불균형이 균형을 맞춰가는 새벽안개 속
 비누방울처럼 퐁, 퐁, 가벼워지는 
 너와 나의 길

 어차피 오늘 하루는
 쉿! 무채색 예감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커피 한 모금,

혓바닥을 데우다

커피 두 모금,

속내를 알아내는 건 시간 문제야 서로의 안부는 얼굴을 보지 않고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지 흑백논리가 굳건하게 이 땅을 지배하던 시절
에도 달콤한 농도에 따라 당신의 웃음은 모호했어, 커피 두 스푼에 설
탕은 하나, 프림은? 

다, 마시다

사랑이여 이제는 종말을 고하라 지난 여름 너의 목 줄기를 뜨겁게 달구
던 태양도 그 열기를 거두어갔다 곧 담담하게 식어버린 그대의 어깨를 
끌어안고 지난날을 추억하라 계절은 너의 이마를 향해 날카로운 화살촉
을 겨누고 있다 두 발이 얼어붙은 강가의 갈대처럼 지금 네 눈은 저으기
쓸쓸해온다 


*소율 : 월간 《예술세계》로 등단. 국민대 대학원 국문학박사. 죽란시 동인회장, 예술시대작가회 회장 역임. 국민대 강사 역임. 시집: 『브래지어가 작아서 생긴 일』 외 공저 다수. 현재 강남시문학회, 예술시대작가회 회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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